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어느 날 밤
비가 '쏴아아' 내린다.
난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갔다.
백열등 스위치를 '딸깍' 돌렸다.
수명을 다해가는 전구의 흐린 불빛이 '간당간당'하다.
난 바지를 '스르륵' 내리고 쪼그려 앉았다.
난 있는 힘껏 힘을 줬다.
'으으으으으으'
'우르르 쾅' 천둥이 쳤다.
전구도 나처럼 놀랐나 보다. 갑자기 '꺼졌다 켜졌다'
그 리듬에 맞춰 바닥에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작은 세상이 쉴 새 없이 '깜박깜박'인다
집에 서있는 나의 존재처럼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 같다
심장이 떨린다.
'덜덜덜'
똥도 무서운지, 덜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 어떤 이야기 하나가
저 깊은 화장실 바닥에서 '부우웅' 떠오르고
이 공간을 공포로 '쓱싹쓱싹' 색칠하며 물들인다.
내 마음 바닥부터 색을 칠하며 떠오르는 이 소리...
[공포 1_귀신]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들을 땐, 하나도 안 무서웠었는데
'우웅~우웅~'
마치 깊은 동굴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같다.
'우르르~쾅'
그 순간,
귀신 손이 엉덩이 바로 밑까지
'쑤~욱' 올라온 것 같았다.
진짜 겨우 나오던 똥이었는데
'쏘~옥' 들어갔다.
난 대충 '쓰윽' 닦고, 화장실을 '쾅' 박차고 나왔다.
그대로 집으로 '후다다닥닥' 뛰어갔다.
[비밀 1_나]
그 후로 난 무서워서, 밤에 화장실을 못 간다.
이 마음이 들키면 놀림당할 것만 같다.
행여나 누가 알면 날 비웃을 것만 같다.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당하기 싫다.
겁쟁이 같은 내 모습을 숨기고 싶다.
이제 고학년인데 아직 어린아이 같아 보이는 게 너무 창피하다.
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은데, 두렵고 무섭다.
[오래된 아이템]
어느 날 밤
배가 아파 잠을 깼다.
오래된 아이템을 꺼냈다.
꽤 오랜만에 사용하게 되었다.
요강에 응가를 했다가 형에게 혼났다.
비밀을 담기에, 요강만으로는 부족했다.
이미 이 안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생각의 반대편에 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집 안에 화장실을 만들자!'
그래, 그러면 밖으로 안 가도 된다.
난 뒤뜰에 있는 연탄광에 몰래 숨었다.
신문지를 깔고 바지를 내렸다.
그러나 이 냄새를 오래 숨길 수는 없었다.
엄마, 형에게 들켰다. 창피했다.
이 일이 더 알려지기 전에,
다른 방법을 생각하다가 귀신을 무찌를 용기를 냈다.
'그래, 당당히 화장실에 가자!'
나 혼자 힘으로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일단 아이템을 제작하기로 했다.
[아이템 제작소_연탄광]
낮에 연탄광에서 똥을 '뿌직'
신문지로 '착착' 접어 쌌다.
'따라라~딴따따'
똥폭탄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사용방법은 이렇습니다.
1. 똥폭탄을 투척하라!
인근 집 지붕에 '슈우웅', 하수구 구멍에 '풍덩'
2. 똥지뢰를 설치하라!
뒤뜰에 묻고, 화장실 계단 옆에 설치
*주의: 이미 도중은 위험단계입니다. 당장 멈춰야 합니다.
난 주의사항을 무시하고, 집 주변에 은밀하게 이 작업을 마쳤다.
서서히, 집 부근에 생화학 무기의 악취가 퍼진다.
짙은 독가스지대를 형성 완료.
'으하하.'
이제 귀신도,
한동안 이 지역엔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난,
오늘 밤에 화장실을 편히 갈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움을 이겨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어떤 아이템에 의지해도 되지 않았다.
[비밀 2_형]
그런데 왜 형은 나를 안 혼냈을까?
요강사건 때와 다르게
연탄광에 대해서 이렇다 할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 끝에, 짐작하는 답을 구했다.
'아뿔싸!'
내 냄새만이 아니었다.
너무 지독한 냄새가 난 날,
구역질이 나는 날.
내 것이라 하기엔 너무 '우웩'한 날들이었다.
혹시...?
혹시...? 형도...
'크크크.'
그래, 형이 바지를 '수르륵' 내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다.
'하하하.'
그래서 안 혼내던 거라고? 천하의 형도 귀신이 무서운 거라고?
[뺏고 싶은 형의 아이템_인간 방패]
그런데 풀리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과연 형이 무서운 게 있을까?
그래, 그럴 리가 없다.
그래, 형은 tv도 발가락에 끼고 '드드득' 돌린다.
그냥 화장실까지 가기가 귀찮은 거다.
그리고 형은 이런 상황에 쓸 강력한 아이템도 있다.
자신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나를 방패로 삼은 거다.
나는 형의 똥냄새도 다 뒤집어쓰고 있었다.
형에게 나는 언제든 꺼내들 수 있는 아이템 같은 거니까.
난 인간 방패였던 것이다.
그런 내가 연탄광에서 똥을 계속 싸면,
형은 자신의 비밀을 지킬 수 있어 좋은 거였다.
그래서 형은 이 아이템을... 나를... 절대 놓질 않는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한 가지가 있다.
비 오는 날마다 형은 무언가 참는 듯한 얼굴 표정이었다.
꼭 그날은 잘 먹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 무언가가 혹시... 똥이었던 걸까?
형도 진짜 나와 같은 비밀을 갖고 있는 것인가?
그도 두려운 게 있었던 걸까?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철커덩'
비밀의 방을 나왔다.
생각을 하는 사이 옆집 사람들이 하나둘 나가고 있다. 조금만 더 버티자. 다들 빨리 이 집에서 나가라.
나도 이 화장실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
그때, 엄마와 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상황이 다급해 보인다.
그때, 누군가 화장실로 뛰어온다.
'후다닥닥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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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리는 차에서 과거 내가 똥 싸지른 날들을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