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평범해지는 데는 평범하지 않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잖아."
장례식장이었다. 관장님에게 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털어놓자 저리 말씀해 주셨다. 너무 흔한 말인데, 나는 머리털나고 처음 들어보는 말인 것처럼 말의 의미가 오롯이 느껴졌다. 그 말을 하는 관장님의 마음과 인생 여정도 물질처럼 내 두 손 위로 분명하게 건네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너무 무섭다. 너무너무너무 무섭고 두렵고 외롭고 괴롭고 고통스럽고 원망스럽고 억울하다. 그래서 다름을 그만두고 싶어, 모든 인간들에게 평범한 죽음을 바랐다. 꽤 오랫동안.
10년 지나서 정신 차리고 살펴보니 나의 다름은 사실 별 게 아니었다. 신체 일부에 결손이 있는 채로 태어나거나, 후천적으로 결손이 생긴 것도 아니다.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아버지의 파산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난 적도 없다. 아버지는 그냥 한결같이 가난했지. 병이 있지도, 학교 폭력을 당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꼴에 아프다고 무섭다고 징징거렸다. 그렇게 평생 묵히고 지녀온 기억들이 있다. 털자. 진작에 쓴다고 메모해 놓고 참 오래도 걸렸네.
내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되어서 두려움을 느낀 것의 시작은 기억상으로 초등학교 입학식 때부터다. 어머니가 신경 써서 멋있게 나를 단장해 준 날이었다. 6남매 중 다섯째이자 차남, 그리고 여섯 중에 엄마의 최애픽이 나라는 걸 이 때도 알았다. 그런 나의 입학을 위해 그루밍해 주던 엄마의 손길과 복잡한 마음 담긴 눈길이 기억난다.
형이 입던 정장 재킷을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었던 것 같다. 이 날은 집에서 아빠 원목 책상 아래에 들어가 스티커를 붙이면서 놀거나, 여동생과 디즈니 비디오를 보거나 하면서 인생을 때우던 나의 어린 시절을 끝내고,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날이었다. 그 정확한 의미는 몰랐지만 나에게도 뭔가 굉장히 새롭고 특별한 시대가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느꼈던 아침이었다.
그랬었다. 그리고 안 좋은 기억은 입학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면서부터 시작된다. 입학식을 준비하던 아침의 집 안에서의 기억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기억이 선명하다. 30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갈색 운동장 위에 서있다. 그리고 나는 짙은 남색의 빳빳해서 불편한 재킷을 입고 바르게 서서 줄 어디쯤에 들어가 있다.
"다음은 애국가를 제창하겠습니다."
수백 명의 7살, 8살들이 노래를 부른다. 내 앞 아이도, 뒷 아이도, 옆 아이들도 부르고 있는 것 같다. 목소리들은 운동장 위로 모여서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고 있는데 내 목소리는 거기에 없었다. 속하지 못했다.
'너네는 어떻게 이 걸 아는 거야?', '왜 나만 모르는 거야?', '찬송가는 나도 많이 불러봤는데 이건 몰라.'
어디를 둘러봐도 다들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안타깝게도 어릴 때부터 총기가 없는 아이는 아니었기에, 내가 내 또래가 다 성공하는 무언가를 못한다는 것에서 큰 두려움을 느꼈다. 생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변이 멀게 느껴지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당황을 한 것이다. 지금의 내가 떠올리는 이 모습은 여느 어린아이들이 그렇듯이 그저 귀여운 여덟 살짜리의 당황으로 보이지만 당시에 나는 까만 것 속에 던져진 것 같이 정말 무서웠다. 얼굴은 차갑고, 마음은 불안하고 등은 식은땀을 내는 것 같았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입을 뻐끔뻐끔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척했다. 다들 부르고 있는 노래를 같이 부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내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그랬다. 당연히 뻐끔거린대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비참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냥 애국가가 얼른 끝이 났으면. 이 황망함이, 이 무서운 게 빨리 끝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