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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해 온 생각

눈, 물

by 온호 Feb 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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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눈이 나빴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경을 맞췄었다. 엄마는 당시에 우리 남매들이 TV를 역광에서 봐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말하곤 했지만 아무래도 유전의 영향이 더 크지 않겠나 싶다. 여섯 명이 편차가 꽤 있긴 해도 모두 시력이 기본적으로 8 디옵터에서 시작인 걸 보면.


어떤 사람들에겐 당연한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내 책상에는 물건들을 두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 근데 그게 내가 정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안경을 끼고 있지 않을 때 물건 찾느라 짜증 나지 않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이 두 달 정도 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언가 없어진 물건을 찾아야 할 때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나는 남매들과 비교해 보고 알게 된 것이 보통보다는 좀 더 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건 찾는 상황 자체를 못 견뎌하는 데다가 안경도 렌즈도 끼고 있지 않을 때 얼굴을 책상에 들이박고 손으로 더듬더듬 짚으며 물건을 확인하는 게 너무 싫으니까 약간의 자동화처럼 그렇게 해놓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원래 정리의 기능일 것이다. 효율성. 물건을 둔 자리로 손만 뻗으면 찾아지는 것.




오늘의 요일을 불러볼 때 그 이름이 목이면 생각한다. 화분에 물 주는 날. 일주일 정도 주기로 화분의 흙이 마르면 물을 흠뻑 주라는 오렌지레몬나무는 그래서 물 주기가 쉽다. 화분이 처음 배송 온 작년 3월 25일부터 얼마간은 별생각 없이 물을 줬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수요일이니까 물 수, 목요일이니까 나무 목 하며 수요일이나 목요일 중 하루를 정해서 물을 주면 헷갈릴 일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작년 말부터 생각보다 화분을 키우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했던 생각이다. 그리고 난 목요일에 물을 준다. "물"을 주는 것이냐 "나무"를 먹이는 것이냐 하는 뭔가 주체와 객체의 느낌인지, 대상을 무엇으로 보는 것인지 하는 느낌 속에서 나는 주인공으로 "나무"를 선택했다. 나한테는 그게 더 와닿는다. 수요일이든 목요일이든 물 양에 따라서도, 온도, 습도, 일조량에 따라서도 물 주는 주기는 달라질 수 있는 건데 별 걸 다 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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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잘 보면 시계로 내 출근 시간을 알 수 있다.


처음 글을 써보자고 작가 신청을 할 때 "장기간 은둔고립했던 사람의 회복 일상을 이야기하겠다."는 식으로 썼을 것이다. 아마.


그랬던 포부와 다르게 요즘은 예전 같은 생활을 하고, 예전 같은 생각을 하고 사는데 그런 이야기들을 글을 통해서 너무 많이 배출하면 혹시라도 나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혹시라도 '저러고 애써봤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까 봐 조심스럽다. 그게 자의식 과잉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리고 나 스스로도 삶에 감사하고 삶을 사랑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매일 죽상에 궁상을 떠는 나만 남았는지 싶기도 하다.


그래도 글은 쓰자 싶어 어제 미리 포스트잇에다가 오늘 아침에 쓸 글에 대한 키워드를 적어놓았다. '눈과 정리/화분에 물 주는 요일'이다. 어쩌다 보니 절묘하게 소제목에다가 눈, 물로 줄일 있었는데 눈물 대신 글을 흘리는 것이 쉬워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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