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러진 이
누구를 위한 위문공연이던가. 달아오르는 술자리 흥을 깰 수는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슬며시 일어섰다. 부러진 이 조각을 손에 쥔 채 술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서는 안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걸리는 잠시 접어두고 부러진 이를 어찌 처리해야 좋을지, 나아가 어째서 한겨울에,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일월 중순에, 그것도 타지에서, 하필이면 벗들과의 술자리에서 이가 부러졌는지 따져봐야 했다.
그리고 이가 토막 난 까닭도 알아야 했다. 멀쩡한 생니가 부스러졌다는 사실을 곱씹을수록 뭐랄까, 일종의 서글픔이랄까, 씁쓰레함이랄까, 사람을 움츠리게 하는 우울한 감정에 잦아들었는데, 문득 손에 쥔 이 조각이 내 삶을 응축해서 보여주는 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오줌 누러 가는 것으로 알았는지 벗들은 누구 하나 내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가 부러져도 위문공연은 멈추지 말아야 했고, 술자리가 뿜어내는 열기가 식어서는 안 되었다. 벗들이 발산하는 흥이 내 등을 어루만졌기에 나는 침착할 수 있었고, 사태 파악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어둠이 감싼 바깥세상은 온통 눈이 뒤덮여있었다. 포근한 이불을 덮은 듯 논과 산등성이는 눈 천지였고 고요했다. 바람이 안 불었지만, 날은 몹시 추웠다. 나는 손바닥에 편 이 조각을 가운뎃손가락으로 문질러보았다. 혼자 밥 해 먹고 사느라 건강을 해친 탓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한 달쯤 전부터 빠진 이가 시큰거리기는 했다. 엄청난 통증을 동반하는 게 아니라 욱신욱신 쑤셔댔는데, 다른 데는 아무렇지도 않고 유독 빠진 윗니 하나만 그랬다. 그 이가 썩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스트레스가 이로 쏠렸구나, 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 원인이 뭔지도 나름 진단을 내리고 있었다.
잇몸이 갑자기 상할 리도 없고, 이가 썩지도 않았는데, 생니가 부러졌다니, 원인은 하나였다. 소설 쓰기였다. 시큰대던 이는 며칠 전부터 혀끝으로 밀어대면 흔들리는 느낌이었는데, 그 진폭은 어김없이 소설 쓰기와 맞물려 돌았다. 눈곱만큼 불안하기는 했다. 흔들리기는 해도, 고비를 넘기고 곱게 잇몸에 붙박여 튼실해지기를 빌었다. 설마 부실해진 몸을 반 토막 내고 어느 날 갑자기 부스러질 줄은 정말 몰랐다. 소설 행로가 걸림돌을 헤치고 죽죽 뻗어나간다면 이도 언제 그랬냐 싶게 얌전해지리라 여겼다.
삼 년 째 붙들고 있는 소설을 세 차례 고쳐 쓰느라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으려고 버둥대는 나날이었다. 초고 다음 원고는 아예 처음부터 새로 썼고, 그 원고를 다시 뜯어고치는 중이었다, 한해를 꼬박 바쳐서. 그 작업이 팔 부 능선을 넘는 중이었다. 천칠백오십 장에서 이튿날엔 천칠백오십팔 장 그다음 날에는 천칠백육십오 장 하는 식으로 원고지 산맥을 아등바등 기어올랐다. 완성 원고를 이천삼백 장쯤으로 예상했다. 하루에 열 장 때로는 다섯 장 그러다 열두 장을 꾹꾹 심어가면서 원고지 절벽을 헐떡이며 올랐다. 과연 이천삼백 장까지 도달하는 날이 올까, 그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라는 주문에 휩싸이면 숨이 턱턱 막혔다.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는 막막함이 밀려들면 암담했고, 머리가 지끈댔고, 속이 메슥거렸고, 이가 쑤셨다. 가슴이나 뱃속, 팔다리와 손목은 그럭저럭 버텨줬는데, 이가, 왼쪽 윗니가 감당을 못하고 나자빠진 거였다. 홀로 창문을 등진 채, 솔잎 사이로 내리는 눈을 보면서 나는 이가 부러진 사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차근차근 되짚어보았다. 여전히 이 조각을 손에 쥔 채. 삼 년에 걸쳐 세 차례 고치는 동안 완성도 못 하고 이가 부러졌음을 나는 한탄했다. 원고를 완성하고 이가 부러졌다면 충격파가 덜했을까.
그만한 스트레스도 견디지 못하고 이탈한 이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장편 한 편 쓸 때마다 이가 달아난다면 십 년 이십 년 후나, 쌓이는 작품 수에 맞춰 이가 몽땅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소설과 이를 맞바꾼 호물호물한 내 입을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고, 늙은이가 되도록 많은 작품을 써내고도 가지런한 이를 간직한 작가들을 떠올리고 적이 안심했다.
부러진 이를 엄지손가락으로 굴리면서 나는, 창문 안 불빛이 환한 위문공연장을 들여다보았다. 김과 송 두 시인과 추 목수는 막걸릿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분위기 살린다고 술상에 켠 촛불이 아니더라도 불꽃이 넘실대는 술자리는 한 폭 그림이 따로 없었다. 부서진 이를 어쩐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 조각이 소설과 맞바꾼 거라면 함부로 버리기에도 부담스러웠다.
나는 손을 펴고 눈으로 보았다, 금싸라기 같은 이 조각을! 손가락으로 더듬자 하나하나가 원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음과 모음으로 엮은 글자, 글자가 몸을 이뤄 생명을 불어넣은 문장, 문장과 문장이 켜켜이 쌓아 올린 소설의 한 장면, 그 무대에서 뒤엉킨 인간들이 이로 탈바꿈해 손에서 구르고 있고, 그것을 내가 만지고 있다고 나는 확신했다. 그랬다, 이는 글자요, 소설이 변신한 것이었다. 소설을 손으로 만지고 혀끝으로 맛볼 수 있다니!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랬다, 소설 문장이 환생한 이는 나의 일용할 양식이었다. 꼬막과 홍어를 안주로 먹었음에도 나는 배가 고팠다. 언제나 그렇듯 글자를 먹어 치워야 했다. 허기진 나는 서슴없이 이 조각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