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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베 Aug 08. 2024

쓰는 인간

3 소설로 지은 집

아무리 밤이라지만 십 미터 앞에 있어야 할 집이 안 보였다. 지붕이라든지, 아니면 바깥채 창고나 시멘트를 바른 블록담 윤곽이라도 보여야 할 게 아닌가. 먹물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듯 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깜깜했다. 어둠이 집을 빨아먹기라도 한 걸까. 폐가에서 옮겨온 기왓장 더미가 어느 구석에 처박혔는지, 발 디딜 손바닥만 한 샛길이 어디로 뻗었는지, 복숭아나무가 어디에 서 있는지 가늠할 길이 없었다. 산도 집도 마을도 가뭇없이 사라진 허공에 홀로 붕 뜬 느낌이랄까. 검은 장막을 두른 밤을 헤집고 내가 선 자리를 확인해보려고 눈을 껌벅거렸지만, 기왓장 하나 돌무더기 하나 잡히지 않았다. 


인공불빛이라곤 마을 한복판에 있는 버스정류장 가로등, 저만치 산 아래 요양원 불빛 그리고 강 건너 지방도로에 점점이 흩어진 주홍빛 가로등 빛이 아스라할 따름이었다. 집에 들어가야 했다. 발 옆에 부려놓은 짐이라고 해봐야 배낭과 노트북 가방, 생수와 비상식량이 든 비닐봉지가 전부였다. 먼 길 떠났다 돌아온 나로서는 그것들을 챙겨 들고 집으로 기어들어야 했다. 집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집이 있기라도 한 거냐?” 

곁에 서 있던 김이 불쑥 말했다. 아, 김이 있었지. 그가 입을 열고 나서야 나는 동행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차로 지리산에서 나를 이곳 남한강까지 데려다준 친구 김이 아닌가. 집이 있어야 할 어둠 저 너머에 망연한 눈을 던지고 있던 나는 그제야 김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난감했다. 집의 부재란, 친구 김의 삶의 방식 범위를 넘어서는 영역일 터였다. 김이 내가 살아온 집의 존재를 의심했어도 나는 서운하지 않았다. 김은 진작 서너 차례 와본 터라 집 꼴이 어떤지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내 처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워둔 넉 달 사이에 혹시 집이 없어지기라도 한 건가? 어둠이 집을 삼키지 않더라도 오래 묵은 강변 집은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었다. 바람이 양철지붕을 뜯어가거나 폭우가 블록담을 허물어뜨리거나 쥐새끼들이 기둥을 쏠거나 벌레들이 문틀을 갉아 먹을 수도 있었다. 강변  집이 감당하기엔 하나같이 벅찬 상대들이었다. 그 침입자들에게 집이 쓰러졌다 하더라도 나는 한 치도 의심하지 않을 거였다. 



“그러게, 집이 온전히 있을까?” 

나는 심드렁하니 중얼거렸고, 일단 집 안으로 들어가 보리라 작정했다. 두 눈으로 집이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암흑천지에 언제까지나 멀뚱멀뚱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나도 나지만 김은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남한강에서 김의 집이 있는 이천 설성면까지는 차를 타고 사십 분은 가야 했다. 나를 데리고 지리산을 돌고 종일 운전해서 올라온 김이었다. 그는 몹시 피곤할 터였다. 나는 잠시 기다리라고 김에게 당부한 뒤 휴대 전화 불빛에 의지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서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했다. 


집이 안 보이는 기막힌 현실을 김에게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누구에게나 몸 하나 뉠 집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월세든, 전세든, 기와집이든, 열세 평짜리 작은 아파트든, 쪽방이든, 원룸이든, 사람이 밥을 해 먹고 잠자야 할 집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있는 게 아니던가.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물음에 매달렸다. 개나 고라니처럼 산이나 들에서 잘 수는 없지 않나. 어엿한 인간인 바에야! 집에 욕심을 냈던가. 나는 단지 읽고 쓸 수 있는 단출한 공간을 원했다. 나는 강변 집에 만족했다. 변변한 화장실도 없고, 연탄 아궁이나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할 수 없을지라도 홀로 집에서 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화장실이 나온 김에 말해보자. 판자때기로 얼기설기 지은, 지붕은 마당에 나뒹굴던 양철 조각을 얹었고, 커다란 도마 같은 목판으로 차곡차곡 계단을 해 넣은,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이 층인, 들녘이 훤히 보이고 그 너머 굽이치는 남한강이 시원스레 뻗은 전망만으로도 시름을 잊게 하는, 널빤지로 삼면을 가린 일 층에는 왕겨를 담은 양은 함지박이 놓인, 발판에 앉아 볼일을 본 뒤에는 재를 그 위에 슬슬 뿌려주면 그만인, 내 몸에서 나온 그 부산물을 섞은 밭에서 오이와 고추를 따 먹을 수 있는, 먹고 싸는 행위가 한통속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화장실은, 그래서 뒷간이라 불러야 마땅했다. 이쯤 되면 왜 내가 양철지붕을 한 뒷간이 있는 그 집을 오래 묵은 집이라고 부르는지 짐작할 터이다. 


귀신 나올 집이나 백 년 집이라 불러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 실제로 이웃 노인 말로는 육십 년은 넉넉히 됐다고 했고, 군불 때던 아궁이와 부엌, 좁은 방들과 다락만으로 낡은 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옛 주인이었던 할머니가 죽고, 할아버지도 성남 아들네 곁으로 갔다니, 사람이 안 산 지 오 년도 넘었다. 그러니 허술한 집이라 부를 수밖에. 



집 입구까지는 고작 십 미터 남짓하다. 대문이랄 것도 없이 창고와 빈방으로 이어진 바깥채는 가운데가 휑하니 뚫렸고, 그리로 곧장 들어서서 마당을 몇 걸음 내디뎌 댓돌에 오르면, 오른쪽은 부엌문이요, 왼쪽은 냉장고가 돌아가는 거실(마루가 어울리건만 널빤지를 걷어내고 진작 시멘트를 바르고 비닐 장판을 깔았다. 덧붙여 겨울에 작은 방에 있다가 부엌으로 가려면 징검다리처럼 거실 바닥에 신문지라도 몇 장 깔아두고, 그곳을 밟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간 양말 신은 발바닥이 시려 발을 내디딜 수 없다) 유리문이었다. 문짝이 벽체 하나만 한 유리문은 지금쯤 비닐로 덮였을 거였다. 


지난겨울을 나느라 방한용으로 싸 발랐던 비닐을 집은 여전히 두르고 있을 터였다. 나는 눈을 감고도 집 꼬락서니를 그려낼 수 있다. 어둠이 잡아먹은 지금이야 눈을 감으나 뜨나 매한가지지만. 아홉 시에 집에 도착해서 십여 분이 흘렀건만 여전히 눈은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복숭아나무를 오른쪽에 끼고 내리막을 서너 걸음 내디디면, 빗물 빠지라고 삽으로 파놓은 좁다란 물길이 나올 것이고, 곧장 걸으면 대문에 다다를 거였다. 


나는 휴대 전화 불빛을 앞세워 더듬더듬 걸었다. 사람 두어 명 지나갈 수 있는 폭만큼은 잡풀이 못 자라게 손을 봐두었음에도 발목에 풀이 잡혔다. 그것만으로도 집 모양새가 어떠할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비바람에 무너지지 않았더라도 잡풀이 숲을 이루었을 거였다. 유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넉 달 만에 돌아온 집이 온전하다면 그게 이상할 터. 과연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아니 하룻밤 묵을 수 있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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