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만나다
1탄을 읽은 사람들은 느꼈을 것이다. 영업사원에게 고객은 정말 다양한 유형의 대하기 힘든 신이지만 그 신들 조차도 명확히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고 그 스타일을 물어보면 의외로 잘 답해 준다는 거. 만약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중복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분명 영업사원들이 품어야 할 자질과 태도가 나름 정리될 수 있겠다는 것을 말이다.
전편에서 만난 고객은 영업사원이 가져야 할 자질이 크게 네 가지라고 얘기했다. 진정성, 사전준비, 역지사지, 그리고 세련된 어휘와 말투. 영업사원이라면 다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영업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고루한 얘기이고 영업조직에서는 한 번쯤 선배를 통해서 혹은 강사를 통해서 요구받았을 내용이지만 고객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은 다른 느낌이었다. 또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업스킬 지침서의 수많은 항목보다 신선했음도 부인하기 어려웠다.
이제 두 번째로 만나볼 고객을 소개한다. 현재 '한국투자증권 부동산 PF2본부 부동산 투자부' 부서장인 박철수 상무. 오랜 기간 은행에 근무하다 은행합병도 경험하고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부동산 투자전문가로, 그리고 한 부서를 책임지는 투자회사 임원으로 오래 재직한, 한마디로 수없이 많은 영업사원을 상대했던 베테랑 고객이다. 올림푸스로 치면 제우스나 오딘정도라고 보면 될 텐데 이 분이 얘기하는 호감 가는 영업사원의 스타일과 자질이 못내 궁금해진다. 그리고 오랜만에 가보는 여의도도 반갑다.
기대만발 영업사원(이하 영업사원) : 상무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착한 미소를 가진 고객(이하 고객)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오래 영업을 하다 보면 첫인사를 나눌 때부터 카리스마가 넘치거나 기에 눌려 마음을 다잡고 각오를 해야 하는 고객의 유형이 있는가 하면 무언가 기분 좋게 하는 미소와 인상으로 영업사원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스타일의 고객도 있다. 박철수 상무는 너무나 후자의 유형이라 질문도 가볍게 시작할 수 있었다.
영업사원 : 드라마, 영화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이 사람이라면 영업으로 떼돈 벌겠다 싶으신 캐릭터가 있으셨나요? 혹은 초능력?
고객 : 하하하. 영업이 뭐 액션영화처럼 몸으로 승부 보는 건 아닐 테니 피지컬적인 초능력은 크게 필요 없겠지요. 다만 예지력이나 독심술 등 미래를 예측하거나 내 생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엄청나게 효과적일 테고요. 개인적으로는 재벌집 막내아들에 나오는 송중기정도라면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요? 미래를 보는 혜안도 있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논리와 심지어 추진력도 있잖아요. 근데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죠.ㅎㅎ
영업사원 : ㅎㅎ 그렇긴 하죠. 무빙도 보셨어요? 거기서는 어떨까요?
고객 : 그냥 재밌게만 봤죠. 특별히 영업과 관련된 게.. 흠. 사실 악역이긴 하지만 수탐을 잘한다고 나오는 사람 있잖아요. 무언가를 잘 찾는 사람. 사실 영업에서 제일 힘든 게 어디에 팔 것인가 찾는 일 테니까 그런 능력이 있으면 좋을 듯싶네요.
영업사원 : 이왕 초능력얘기가 나왔으니까 한번 여쭤볼게요. 만약 영업사원이 상무님의 마음을 하나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상무님의 어떤 걸 알게 되면 도움이 될까요?
고객 : 음. 재밌는 질문이네요. 근데 답은 확실하게 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만약 영업사원이 제 마음 중 하나를 알 수 있다면 저의 정치적 성향을 알고 대하는 게 효과적일 거 같아요. 비즈니스를 같이 하는 사람이 정치색이 비슷하거나 같을 경우 왠지 호감도가 엄청나게 상승할 거 같네요.
영업사원 : 굉장히 의외의 답이시네요. 신선하기도 하구요. 정치색이라..
고객 : 제 정치색을 여기서 말씀드릴 순 없지만 의외로 고객들 중에는 뚜렷한 정치색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테니까요. 정치, 종교 얘기는 잘 꺼내지 않으니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을 테고 그냥 크게 영업사원의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는 게 나을 듯싶어요. 플러스는 못돼도 마이너스는 되지 말아야죠.
영업사원 : 그렇겠네요. 그럼 내친김에 바로 여쭤볼게요. 본론을 빨리 듣고 다른 재밌는 질문도 드리고 싶어서요. 만약에 영업사원을 영업스킬 캠프에 보낸다면 어떤 프로그램으로 구성하고 싶으세요?
고객 : 세 가지죠. 본인이 팔고자 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 겸손하고 낮은 자세와 자신감, 그리고 대화의 기술.
영업사원 : 겸손하고 낮은 자세와 자신감은 알 것 같긴 한데 좀 상반되는 개념이네요?
고객 : 제가 좋아하는 말이어서 자주 직원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는데 '잘 나간다고 거만하지 말고 못 나간다고 비굴하지 마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갑이든 을이든 고객이든 영업사원이든 양쪽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영업을 새로 시작하는 영업사원들이 있다면 겸손하고 낮은 자세와 성실한 태도를 견지하되 비굴한 모습을 보이진 말라는 조언을 꼭 해주고 싶어요.
영업사원 : 사실 머릿속으로는 알지만 쉽지 않은 태도긴 해요.
고객 : 그래서 제품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필요한 거죠. 그거 없이는 저런 태도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그저 잘 팔리는 제품이니까 사세요라던지, 이거 안 사주시면 저 죽습니다라는 태도 모두 거부감을 줄 수 있죠. 그리고 대화의 기술은 아무래도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경우가 많은 거 같구요. 가끔 젊은 초보 영업사원들을 보면 배운 대로 연습한 대로 약간 기계적으로 대화를 풀어나가는 친구들이 있는데 뭐랄까 좀 짠한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응원하고 싶어 지죠.
영업사원 : 저도 가끔 영업하는 후배들 보면 성실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에게 오늘 상무님 조언이 엄청 큰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우선 워낙 많은 영업사원들과 비즈니스를 해 보셨을 테니 오늘은 좀 사례위주로 여쭤 보고 싶네요. 혹시 영업사원에게 받았던 선물 중에 인상 깊었던 게 있었을까요?
고객 : 실제로 받지는 않았지만 특이했던 선물로는 명품신발을 주시려고 했던 분이었어요. 저런 선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실제로 너무 좋았던 최고의 선물은 우리 가족수에 맞춰 호텔 식사권을 주셨던 분이셨습니다. 가족들이 좋아하니까 저도 너무 좋았죠. 그러고 보니 전에 어떤 분은 방문하시면서 부서원들 모두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챙겨 오신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영업사원 : 뭔가 일관된 맥락이 있네요. 상무님 본인보다는 주변분들을 신경 써 주는 영업사원의 호감도가 상승하는?
고객 : 드라마에서도 몇 번 본 거 같아요. 비즈니스 상대의 아내나 아이들에게 감동을 줘서 비즈니스가 잘 풀리는 장면들요. 그러고 보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얘기했던 건 다 맞는 건 아닌 듯싶어요.ㅎ
영업사원 : 그럼 혹시 이젠 좀 별로다 싶은 영업방식이나 선물 같은 것도 있을 까요?
고객 : 아까 말씀드린 명품신발처럼 부담스러운 선물은 사양이죠. 그리고 커피쿠폰 이런 것도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아요. 좀 심하게 말하자면 기억도 잘 나지 않고 별로 고맙지도 않탈까? ㅎㅎ 제 개인이 아니라 전체 고객들 대표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본부장님이 주시면 고맙게 받겠습니다.ㅎㅎ
영업사원 : ㅎㅎ 얼마든지 드려야죠.
고객 : 농담입니다.ㅎㅎ
영업사원 : 사례를 잘 말씀해 주시니 여쭤보는 재미가 있네요. 혹시 제품 자체로는 100% 만족하지 않았음에도, 단지 영업사원 때문에 물건을 구입한 적이 있으셨을까요? 이유도 듣고 싶네요.
고객 : 대개 그런 경우는 첫 거래보다는 몇 번 거래를 했던 영업사원과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전에 어떤 영업사원으로부터 첫 거래를 할 때 비즈니스 측면에서 나름의 빚을 진적이 있는데, 예를 들면 분명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알지만 우리가 요구하는 조건을 최대한 수용해 주는 걸 느끼는 경우죠. 그 후 다른 비즈니스를 할 때 비교 대상이나 대체 가능한 서비스가 있었음에도 그 영업사원과 거래를 한 적이 있어요. 비즈니스적으로 빚을 갚은 거죠. 상대방이 오십 보를 양보해 주면 내일 우리가 백보를 양보해 준다는 생각을 서로 가지고 믿음을 쌓는 마인드도 영업사원의 필수 자질인 거 같아요.
영업사원 : 제가 인터뷰를 해오면서 계속 느끼는 거지만 머릿속으로는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입니다. 실제 고객들은 진실로 이렇게 생각한다고 느끼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이제 마지막으로 여쭤볼게요. 이것도 왠지 예상이 가지만 새롭게 느끼게 될 대답을 해주실 거 같은데 만약 영업사원이 올림픽에 나간다면 어떤 종목에 출전하는 거라고 보면 될까요?
고객 : 마라톤이죠. 100미터 달리기와 같은 단기간 영업도 분명 있겠지만 일반적인 영업은 그런 100미터 달리기 + 200미터 달리기 + 1천 미터 달리기 + 1만 미터 달리기 등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과정이고 결국은 마라톤과 같은 긴 여정을 달려내야만 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영업과 가장 유사한 종목이 아닐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마라톤에서 제일 힘든 때가 40킬로를 뛰고 남은 2.195킬로라고 하잖아요. 한 스텝을 더 못 나가서 좌절하는 영업사원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오늘 인터뷰는 40킬로 이상 뛴 거 같은데 이제 그만 끝내고 소주나 한잔 하시죠.ㅎㅎ
늘 이분과의 대화는 유쾌하다. 원래 농담을 좋아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분이라 듣고 배우는 재밌는 얘기도 많다. 심지어 이분은 영업사원이 자기가 다른 곳에 써먹을 수도 있는 농담을 해주면 너무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꺼내놓으신 농담 하나. 드라이버 티샷과 아들의 공통점은? '살아만 있으면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베테랑 비즈니스맨의 내공이 강하게 느껴지는 인터뷰였다. 오래전에 이분과 이분의 부서 부하직원과 함께 라운딩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대리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박철수 상무님은 좋은 상사라는 말로 부족하죠. 그야말로 형님 같고 친구 같고(이건 혼나려나?) 그러셔요. 다들 좋아합니다.'
한 부서를 책임지면서 위에서 인정받고 아래로부터 존경을 받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난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 실사판에서 그런 분들이 계셔서 신기하기도 하고 괜히 내가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 하나 느끼는 것은 점점 합리적인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영업의 세계는 예전처럼 비상식적인 상황이 난무하는 아나키스트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박철수 상무님의 얘기처럼 고객의 니즈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문성과 태도(겸손과 자신감), 그리고 전체적으로 윤활유처럼 역할할 대화의 기술만 잘 갖춘다면 언제든 프로페셔널한 세일즈맨이 될 수 있다.
이제 두 분의 고객으로부터 추출해 낸 영업사원의 자질을 중복을 제외하고 정리해 보자.
진정성/사전준비/역지사지/전문성/겸손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대화의 기술
고객을 만나다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