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돼지 잡는 날
가을걷이가 끝나자 사랑방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해질 무렵이면 빨랫줄에 앉아 한바탕 신나게 노래하고는 처마 밑에 있는 보금자리로 날아들던 제비들도 이젠 보이지 않는다. 먼저 먹겠다고 입을 크게 벌리고 목을 쭉 뽑은 제비 새끼들이 금방 나올 것 같은 제비집은 이제 온기도 사라졌다.
마을 뒷산 '구봉산'은 온갖 색으로 도배를 한 듯하더니 어느 순간 황량하고 메마른 산으로 변했다. 새벽이면 서리가 내리고 바람이 싸늘해지자 사랑방 손님들도 옷깃을 세우게 몸을 움츠리고는 동동걸음으로 드나들었다. 방안에서는 봄부터 시작된 농사일과 여문 곡식들을 수확하느라 녹초가 된 몸을 뉘이거나, 그러다 좀이 쑤셔오면 화투장을 만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세월 위에 앉아 갓 수확하여 떼깔 좋은 짚으로 새끼를 꼬기도 했다. 매일 사랑방은 어른 남자들의 굵고 거친 말소리와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햇살 좋은 날. 사랑방 손님들이 마당에 모여 있었다. 할아버지와 칠우 할아버지 그리고 낯선 동네 남자들이 마당에 모여 앉아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다. 타작을 하고 쌓아둔 짚단을 풀어 이엉을 엮고 있었다. 묵은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새 단장을 하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웃집에 작은 일이라도 생시면 언제나 힘을 모아주었다. 첫 번 째 집 지붕 단장이 끝나면 다음 집 또 그다음 집 지붕을 단장했다. 농사일이나 집안의 큰 일은 서로 품앗이가 되어 일손을 도왔다.
요 며칠 사이에 기온이 툭 떨어져 차가워진 대기는 사람들을 움츠려 들게 만들었다. 아이들로 북적이던 골목길도 한산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랑방은 점점 더 분주해지고 활기가 일어났다. 사랑방 뜰에는 검정 고무신과 흰 고무신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뭔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나는 할아버지께 묻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도 평소와 같이 사랑방에서 새끼꼬기나 가마니를 짰다.
마침내 '그날이 온 것인가?'
아침 일찍 사랑방 뜰 앞에서 어른들이 웅성거리며 들락날락거렸다. 나는 대충 옷을 주섬주섬 입고 마당으로 나왔다. 어른들의 말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한바탕 크게 웃고 떠들어대는 것을 보면 재미있는 일이 곧 일어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해마다 사랑방 손님들은 이 맘 때가 되면 돼지를 잡았다. 돼지를 키우는 집 중에서 적당한 놈을 물색하여 두었다가 때가 되면 주인장과 거래를 털고 돼지 잡는 날을 잡았다.
사랑방 손님들이 원하는 돼지는 무게가 150근 정도로 마을 돼지 중에서 꼼꼼하게 살펴보고 결정했다. 그동안 사랑방에서 은밀하게 꾸민 일이 드러났다. 돼지 잡는 날은 전체를 주관하는 총책임자와 칼잡이가 결정했다. 특히 칼잡이는 신중하게 날을 골랐다. 어른 들은 '손 없는 날'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손損은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활동을 방해하면서 해코지하는 나쁜 신을 말한다고 했다. 그래서 돼지를 잡는 날도 '고사'를 지내는 날처럼 손 없는 날로 정한다고 했다.
곧 돼지가 네 발이 묶인 채 사랑방 앞뜰에 놓이게 되고 이어서 돼지의 여러 부위를 맛볼 수 있는 잔치가 시작될 것을 기대하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마당에 모인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잦아들자 골목길에서 에서 '쾍쾍'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입에 거품을 물고 버둥되는 검은 털이 난 돼지가 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리어카에 실려있는 돼지는 네 발이 꽁꽁 묶여 있었다. 구경꾼들이 주위로 몰려들기도 전에 덩치 큰 두 남자가 긴 장대를 가지고 왔다. 돼지다리 사이로 들어간 장대는 두 남자의 어깨에 올려졌다. 돼지는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돼지는 사랑방 뜰에 내려졌다. 돼지는 이제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아는지 쉴 새 없이 발버둥 치며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돼지 소리에 동네사람들이 하나둘씩 더 모여들었다. 코 흘리개 아이들부터 이웃집 노인들까지 큰 구경이나 난 것처럼 꾸역꾸역 골목길을 돌아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이제 어른 들 중에 칼잡이가 나섰다. 덩치 큰 어른 넷은 돼지 위에 가마니를 덮고 올라앉았다. 돼지는 용을 썼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칼잡이의 지시에 따라 양동이를 돼지목 아래 두었다. 칼잡이는 부드럽게 정확한 위치를 찾아서 능숙하면서도 거침없이 한 순간에 일을 끝냈다. '퍼럭 퍼럭'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이내 숨이 멎어왔다. 양동이는 검붉은 피로 차 올랐다.
한쪽에서는 벌써 가마솥에 물을 끓이고 있었다. 돼지가 숨을 멎자 기다리고 있던 남자들이 가마솥에 끓인 물을 드럼통에 부었다. 돼지는 통째로 푹 담가졌다. 잠시 후 털을 제거했다. 검은 털을 벗은 돼지는 허연 몸뚱이를 드러냈다.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돼지는 짚 위로 옮겨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칼 잡이가 재빠르게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구경꾼들이 가까이 모였다. 부엌 강아지같이 때가 꾀죄죄하고 검버섯이 핀 동네 조무래기 남자아이들과 나는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입을 헤 벌리고 호기심에 찬 눈으로 지켜보았다. 아무도 한 눈을 팔지 않았다. 모두 이 광경을 놓치면 영영 보지 못할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돼지 배가 갈라지고 부풀어 오른 내장이 드러났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마을 친구들이 접근해 왔다.
"빨리 너네 할아버지께 말씀드려. 돼지 오줌통 달라고 해!"
돼지 오줌통에 바람을 넣어 축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도 순간 친구들을 보면서 입을 벌려 웃었다. 할아버지 옆으로 가서 살짝 오줌통을 부탁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해서 칼잡이에게 귀속말로 뜻을 전했다. 칼잡이는 허연 이를 드러내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바람을 넣어서 동네아이들과 공차기를 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는 모두 한 번도 축구공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금방 터질지도 모르지만 동네 아이들에게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내장을 정리하는 아저씨가 손이 바삐 움직이다가 내 눈과 마주쳤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는지 안다는 눈빛을 보냈다. 나는 일종의 알았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드디어 오줌통을 꺼내어 물로 대충 헹구어 내게 내밀었다.
오줌통을 가져다 지린내를 참으며 보릿짚대로 바람을 탱탱하게 불어넣었다. 오줌통이 잠시 축구공이 되었다. 마을 앞 논으로 달려갔다. 내 뒤에는 마을 아이들이 우르르 뒤따라 달려왔다. 동네 앞 큰길에서 오줌통은 높이 올랐다. 와! 아이들은 서로 차 보려고 몸을 밀치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오줌통은 금세 바람이 빠지고 쭈그라 들어서 쓸모없게 되었다. 아이들은 하나둘 흩어져 사라졌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돼지 잔치가 열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피는 선짓국이 되고, 순대로 만들어졌다. 내장들은 삶아서 술안주가 되었다. 고기는 분리하여 원하는 집에 팔았다. 고기는 면 소재지에 있는 푸줏간보다 아주 싼 값에 팔았다. 돈을 남기자고 하는 일이 아니었다. 구입한 금액만큼만 팔면 된다. 그래도 사랑방 손님들에게 먹을 것은 차고 넘쳤다. 내장과 머리, 발통만으로도 며칠 포식을 하게 된다. 막걸리라도 추렴하여 붙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마을의 많은 사람들도 가까운 곳에서 아주 싼 값에 돼지고기를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일 년에 한 두 번밖에 없는 기회였기 때문에 돼지고기는 금방 팔려 나갔다.
이제 우리끼리의 잔치만 남았다. 사랑방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고기를 한 접시 담아 주었다. 뜨끈뜨끈한 국물과 함께 주었다. 접시에는 삶은 내장이 종류별로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굵은소금에 쿡 찍어서 한 입 물면 입안은 즐거움에 혀가 요동을 쳤다.
사랑방 뜰 앞마당과 사랑방 안에는 어른들의 이야기와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사랑방의 잔치는 저녁때가 되어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막걸리도 빠지지 않았다. 사랑방도 안정을 찾아 방에 모두 들어앉았다. 돼지를 잡았다는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버릴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방 손님들 중에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돼지 잡는 칼잡이, 돼지꼬리를 잡고 한 번에 자빠트리는 사람, 특히 칼잡이 아저씨는 뜨거운 물 한 주전자만 있어도 돼지를 털을 뽑고 해체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아저씨가 괜히 허풍을 떠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기름이 번들번들하고 검은 수염이 멋대로 자란 억센 어깨를 가진 아저씨였다. 그동안 동네잔치나 초상집에서 돼지를 수없이 많이 잡아보았기 때문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사랑방 손님들은 모두 그에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최고의 고수라고 치켜세웠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쳤다. 그는 크게 웃으며 쑥스러워했지만 눈빛은 자부심에 차 있었다. 그리고 내장을 잘 씻어서 순대를 만들고 냄새가 안 나게 삶는 기술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사랑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할머니를 비롯하여 여자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부엌에 있는 칼이나 그릇을 사용하는 일도 없었다. 사랑방에는 어느 정도의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우선 고기를 삶을 가마솥이 외양간에 있었고 칼, 대형 도마, 소금 정도는 공용으로 구비하고 있었다.
오늘 일을 주관한 사랑방 손님들은 주로 돼지 내장 종류를 먹었다. 간, 염통(심장), 허파, 콩팥, 오소리감투(위) 등을 즐겨 먹었다. 오소리감투는 '작은 인기척에도 몸을 숨기는 오소리처럼 이 부위는 맛은 좋은데 양이 적기 때문에 경쟁이 심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어른들이 주고받는 말을 들었다. 또 어떤 어른은 감투를 쓰려고 경쟁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내장 중에서 그만큼 맛있다는 이야기이다.
돼지 선짓국을 비롯하여 내장을 곁들인 고기는 며칠 동안 계속 사랑방으로 옮겨져 막걸리와 함께 잔치를 이어갔다. 매일 사랑방은 풍성하고 흥겨움이 넘쳐났다. 사랑방 손님들 덕분에 온 동네가 고기 잔치를 하게 되었다. 집집마다 조금씩 나누어 가져간 고기는 그날 저녁 오랜만에 기름진 밥상이 되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나도 삶은 내장과 뒷고기로 배를 채웠다.
그날 이후 나는 할아버지와 사랑방 손님들이 큰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어떤 일이라도 해낼 것 같아 보였다. 나도 어른이 되면 사랑방 손님들 같이 농사일, 가마니 짜기, 소쿠리 만들기, 집짓기 등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지만 빨리 어른이 되어 모든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할머니께서 대견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떠 올라 나도 모르게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