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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학이 Oct 22. 2023

청각장애인의 공무원 취업기

차별의 문턱을 넘고 넘어


더는 공부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 도서관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더운 여름날 펼친 조간신문 2면에 전면 중 반크기에 서울시 공무원 시험공고가 게시되었다. 모집 분야 중 장애인 공무원 9급 행정직이 눈에 들어왔다. 과목을 보니 국어, 영어, 수학, 국사 등 고등학교 때 공부한 것이라, 나 정도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공무원 직업은 인기 없는 직종이었다. 다른 업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정 안 돼서 마지막으로 하는 직업이 공무원으로 통하는 시대였다. 내가 입사할 때 동기들은 나보다 10살 이상 많은 30대가 대부분이었다. 동사무소에 가서 장애인등록 절차(병원 검사 포함)를 밟아 등록한 후 공무원 원서를 접수했다. 중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장애인이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터전이 없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고 공부할 수 있는 경제적 도움도 없었다. 만 19세의 어린 나이에 대학이나 아버님이 추천한 재단사 대신 공무원 취업을 선택했다. 재단사 쪽 일은 배우는 조건으로 돈도 주지 않고 착취당하기 쉬운 곳이라 가기 싫었다. 


1989년 6월경, 서울시 공무원 시험 응시원서 접수를 위해 G 구청을 방문했다. 외벽이 회색으로 칠해진 허름한, 너비가 긴 형태의 5층 청사였다. 건물 앞에는 공영 주차장이 있었는데, 50여 대가 빼곡히 주차된 광경이었다. 주차장 차단기 옆에는 7~8평 정도의 1층짜리 경비사무실이 있었고, 그 앞에는 '원서접수처'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직원 한 분이 신청받고 있었다. 나는 긴장한 채, 장애인 행정 9급 공무원 시험 응시원서를 접수하러 왔다는 말과 함께 주민등록증과 서류를 제출하였다. 서류를 검토하던 직원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 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청각장애인이 말을 하네” 그러면서 제출 서류에 장애인증명서가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등록증을 요구하였다. 장애인등록증을 주었더니, 그녀는 의심쩍은 표정으로“등록증이 있으니, 원서접수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장애인등록증을 꼭 소지하고 시험에 응시하세요”하는 당부의 말까지.


공무원 사회에서 장애인을 따로 구분하여 채용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한 것이 계기였다. 임용 인원의 2%를 장애인에게 할당하기 시작했고, 35년이 지난 현재는 그나마 3.4%까지 소폭 상승하였다. 그러나 장애인 공무원에 대한 인사나 업무 배치 면에서 권리가 무시되어 왔고, 특히 근무 성적이나 승진과 같은 보상 면에서도 차별은 여전하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성장하면서 일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반 여건 구축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법적 채용 숫자만 채우면 그만이었다. 기업들은 아예 장애인을 채용하지 않고 벌금으로 충당하는 곳이 상당하다. 인사 전반에 대한 정책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장애인이 참여하여,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구조가 전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장애인의 처우개선은 기대할 수 없고, 장애인에게 '마땅히' 가야 할 몫들이 비장애인이 가져가는 구조가 고착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같은 해 9월 1차 시험은 모 고등학교에서 응시하였다. 우수한 고등학교 성적을 갖추고 있었으니, 별 어려움 없이 합격하였다. 2차 면접시험은 한 달 후 S 인재개발원에서 실시되었다. 단독면접방식인데, 면접장을 입장하니 싸늘한 분위기가 감지 되었다. 50대 이상 되는 남자 3명이 면접관이었다. 돌아가면서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아예 안 들리냐, 들리면 어느 정도 들리냐?’,‘민원 상대도 많이 해야 하는데 일을 할 수나 있겠냐?’,‘수화는 가능하냐?’ 등 직무 관련이 아닌 장애 관련 질문이 주류였다. 면접관들은 장애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전혀 없었고, 시혜를 베푸는 사람처럼 무례한 질문만 쏟아냈다.


당시에는 1차 시험에서 채용인원 수만큼만 합격하므로, 2차 면접시험은 형식적인 통과의례였다. 현재는 채용인원 수의 1.5배 이상을 1차 시험합격자로 선정한 후, 2차 면접시험에서 탈락자를 선정하는데, 중증 장애인 중 시각 및 청각장애인 그리고 뇌병변 장애인 등이 가장 많이 탈락한다. 35년 전 내가 겪었던 장애 관련 질문이 지금까지도 면접장에서 서슴없이 행해지고 있다. 2020년 11월경에 면접시험에서 탈락했던 청각장애인이 면접 당시 당했던 장애 관련 질문들은 2007년 4월에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이라면서 소송을 통해 불합격 취소소송을 걸어 승소한 사례가 있었다. 나도 잠시 국가인권위원회에 내가 겪은 일을 제소할지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부랴부랴 소송을 피하고자 중증 장애인을 따로 공고하여 뽑는 지방자치단체가 생겨나고 있다.


나는 최종 합격 후 90년 1월 발령장을 받아 L 동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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