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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학이 Oct 22. 2023

죽은 청인들의 사회

학교라는 사회생활

유년 시절 동네 친구들과 노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름이면 마당에 큰 대야에 또래들끼리 같이 물에 몸을 담그고, 서로 물장구를 튀기기. 소꿉놀이 때는 서로 아빠 역할, 엄마 역할을 맡으면서 밥을 퍼주는 흉내 내기(“아~ 해봐”, “맛있다”와 같은 말은 입모양으로 시늉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기. 술래잡기 하면서 누가 어디에 숨었는지 찾아다니고, 붙잡기.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눈짓, 손짓, 발짓으로 즐겁게 놀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1977년,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이는 교과서뿐 아니라 학교의 규범을 배우는 사회생활의 시작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기는 본격적으로 내가 잘 안들린다는 걸 인지한 때이기도 했다. 국민학교 입학 이전 동네 친구들과 어르신들과 지낼 때에는 따로 규범을 배우지 않고도 큰 무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국어 읽기 시간.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교과서를 읽어야 했는데, 선생님이 나를 지정하면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읽어 할 위치를 찾지 못해 짝꿍에게 알려달라고 할 차에, 선생님이 “뭐 하는 짓이냐”며 책으로 내 머리를 여러번 치면서 엄청나게 욕을 했다. 내가 딴짓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국어 받아쓰기는 당연히 100점 만점에 10~20점 받았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쓰는 것인데, 나는 짐작으로 써서 1~2개만 걸려 맞혔다. 당연히 벌은 덤이었다. 그 이후에는 선생님은 나를 보고 체념했다는 듯 그럼 그렇지, 하며 벌을 생략했다.


음악 시간에는 나무 피리 부는 수행이 있었다. 개인별 평가 시간, 내 차례가 와서 피리로 소리를 내지 못하자,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집중 안 하고 뭐했냐”면서 몽둥이로 나의 손바닥에 10대를 때렸다. 소리가 들고 나는 원리를 알고 불어야 하는 피리를, 그저 다른 학생의 부는 모습만 보고 눈대중으로 익힌 게 화근이었다.


한 번은 선생님이 나에게 분필을 가지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킨 적이 있다. 내가 그 지시를 잘 알아듣지 못하여 짝꿍에게 물어봤는데, 손으로 지우개를 가리키길래 지우개를 선생님께 갖다 드렸다.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것은 분필이 아니라 지우개란다” 하면서 본인이 직접 분필을 가지고 와서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이게 바로 분필이야” 라고 했다.


미술 시간에는 항상 준비물이 필요한 과목이라 곤욕이었다. 그 준비물 목록은 선생님이 칠판에 글씨로 적어주었기에 알아들을 수는 있었지만, 가정 형편 때문에 거의 준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을 알아듣는 것과 그것을 행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한번은 데칼코마니 수업으로 비싼 물감을 가지고 와야 했지만 당연히 준비하지 못한 나는 다른 학생들의 실습을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다가와 갑자기 옆 학생의 물감을 가지고 내 스케치북에다가 시연하였다. 필요 이상으로 물감을 과하게 짜냈다. 이를 앙다무는 그 선생의 표정이, 마치 내가 제대로 준비 안 한 벌이라는 감정도 같이 짜내는 느낌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그 물감 주인이 나를 불러 “네가 뭔데 비싼 내 물감을 다 썼냐?”며 물어내라고 마구마구 소리 질렀다.


기술 시간에는 컴퍼스와 같은 도구를 친구들에게 눈치를 보며 빌려 가면서 사용했고, 친구들이 못마땅해했다. 과학 실험은 두려움이 엄습하는 과목이었다, 내가 잘 못 들어서 실험실을 망칠까 봐. 다행히 실험은 그룹별로 하는 것이라 다른 과목에 비해 망칠 부담이 적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실험 도구를 만져보라고 해도 티끌만큼도 건들지 않고, 지켜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이외에도 개인 활동이 필요한 과목은 나에게는 항상 땀이 비 오듯 난감한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단체 행동이 필요하거나 행동이 필요 없는 과목은 맘은 편했다. 체육 시간은 단체로 움직이는 체조나 축구, 달리기 등은 눈대중으로 읽어 그대로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조금 늦게 반응하여 행동해도 표가 나지 않았기에 잘 넘어갔다.


암기과목인 사회, 역사, 지구과학 등은 선생님이 질문과 답변이 오가지 않는 일방통행 과목이었기에 편안한 과목이었다. 보통 인식과 달리 나에게는 암기과목이 교육상 가장 좋은 과목이었던 것이다. 산수 시간은 설명이 필요 없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쓰는 공식대로 외우고 쓰면 그만이었으니까. 선생님이 칠판에 문제를 내고 나를 지정해서 나가서 풀어라 해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나가 풀어쓴 유일한 과목이었다.


한편으로 나에게는 국어시간 말고 ‘비국어시간’이 존재했다고 볼 수 있겠다. 표정, 손짓과 같은 ‘비언어적 소통’이라고 불리는 영역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 과목에서 항상 전교 1등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올 때 얼굴 표정으로 곧바로 나는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들의 운명을 알았다. 특히 단체기합을 기가막히게 알아들었다. 교장선생님을 통해서든 혹은 다른 반 선생님을 통해 “이 반 시끄럽다”라고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어 우리를 혼내게 될 상황 말이다. 그러면 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미래를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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