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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기를 쓰나요. 누가 본다고.

내가 보려고 씁니다.

by Wishbluee

2025년 11월 3일 월요일 오후 8시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을 예정이었다. 두 번이나 반납을 연기한 책이라, 다시 빌릴 면목이 없다.

딸이 “같이 영화 봐주면 안 돼?” 하고 물었다. 정중히 거절했지만, 결국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기분이 상해서 책을 펼치기가 싫어졌다.


멍하니 컴퓨터에 앉아있다. 유튜브를 켰다 껐다 한다.


딸아이는 냉장고문을 쾅쾅 소리 내서 닫다가, 우유 없냐고 물어본다.


"없어"


건조하고 날카롭게 대답했다.

그러자 구시렁, 구시렁거리더니 제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다시 컴퓨터를 마주한다.


브런치에 글을 쓴 지 또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하얀 화면만 보면 글자가 하나둘씩 떠올랐었는데. 이제는 도무지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브런치작가가 된 초반, 샘솟듯이 떠오르던 아이디어들은 이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내가 쓴 글들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쉬웠다. 그렇지만 내 안에서는 더 이상 퍼 올릴 게 없었다. 이미 바닥까지 바싹 말라버린 우물이었다. 기적처럼 다시 샘이 솟아오를 수 있을까.


목이 말라, 따듯한 물을 한 잔 마신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 것 같다.


글을 쓰며 사람들과 소통을 할 때를 떠올려 본다.

나만의 공간에서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작가님들, 독자님들과 도란도란 나누던 그때를.

그때는 글이 무언가 나를 답답한 현실에서 꺼내어 주기도 했었지.

지금처럼 먹먹한 시간도 조금 더 쉽게 흘러가곤 했었는데.


우유 없냐고 물어보던 딸의 말을 못 들은 척, 매몰차게 무시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밉고, 속상해도 나는 그게 왜 그렇게 안 되는 건지.

내 안의 깊은 곳에 어린아이는 참, 사랑 많이 받고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그리도 모자란 지, '미움받음'을 많이도 두려워한다.


어쨌든 소통은 놓지 않는다.


아, 그게 무슨 소용이려나.


주르륵 적어놓으니 이것도 글이라고 할 수 있나. 마른 웃음이 새어 나온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이유 중의 하나는, 관심이 고파서 일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다시 브런치에 돌아오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게 과연 글 쓰는 재주가 있는가.

-내가 쓰는 글이 가치가 있을까.


갈 곳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매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그냥 써보기로 한다.

무작정 써보기를 한 번 더.


어쩌면, 지금은 알 수 없는 어떤 의미 같은 걸 더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11월의 일기를 시작해 본다.


왜, 하필이면 일기를 쓰냐고? 누가 본다고.

나.

내가 보려고 쓴다.




sunpreet-singh-seRbhuE3jsI-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Sunpreet Sin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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