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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요 떨어지는 낙엽이. 안 예뻐요 떨어지는 내 마음은

by Wishbluee

2025년 11월 4일 오전 10시


둘째 아이의 경제 수업 신청을 위해 컴퓨터 앞에서 기다리다가, 재빠른 마우스질로 성공. 오늘은 화실에 가는 날이다. 화실은 10시까지인데, 수업 신청 덕택에 출발이 늦었다. 아무리 빨리 가도 30분은 늦을 것 같은데.요일을 미룰까. 잠시 고민하다가, 숨 한번 내쉬고 몸을 일으킨다.


'빨리 걷자'


집 밖을 나서니 햇살이 눈부시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씨가 서늘했는데 오늘은 조금 따스하다. 챙겨 입은 경량패딩이 살짝 답답하게 느껴진다. 몸이 무거우니 발걸음이 무거운 걸까. 아니, 이건 어제 딸아이와 끝끝내 풀지 못한 감정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종종 휴식시간에 서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며 시간의 틈도 메우고, 마음의 틈도 메운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남편에게 내 무게를 조금 덜어줄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를 품고.

자식 일이다 보니, 이야기 나눌 사람은 결국 애들 아빠뿐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나만이 풀 수 있다는 것을 대화 끝에 깨달았다.

그건 그냥 내가 들어야 하는 무게였다.

내 기분은 오로지 나만이 이해할 수가 있는 거였다.


외로움을 느꼈다.

서러움도 동시에 느꼈다.


하지만 남편과 나의 세상은 다른 차원이라서 서로 오갈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화실 앞에서 흐느껴 울고서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이런 마음으로는 캔버스 앞에 설 수 없었다.


돌아서서 걸어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 하늘이 선명했다. 알록달록한 나뭇잎들은 제 색깔을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한 잎 한 잎, 떨어져 내려앉아서 낙엽산을 이루었다. 바스락바스락 거리는 더미가 발에 걸린다. 발에 쓸린 나뭇잎들이 버걱거리며 흩어진다. 노랑 빨강 선명한 색도 시간이 지나자 보잘것없이 바래진다. 볼품없이 흩어져서 말라버려, 결국은 힘없이 바스러질 뿐. 마치 마지막 생명력을 뽐내고 져가는 것처럼 느껴져 어쩐지 조금 서글프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데, 주머니가 자꾸 부우웅 거린다. 남편이 거듭 전화를 건다. 울렁거리는 마음이 진정이 안 돼서 받기를 망설이다가 이내 통화버튼을 꾹 누른다.


전화기 너머의 남편이 차근차근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직 미숙한 아이의 마음을 어쩌겠냐며.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맞는 말이다. 다 맞는 말이다.


아마도 시간의 순기능은 모든 것이 지나가고 옅어진다는 데에 있겠지. 미움도 옅어지지만 사랑도 옅어질 수 있다. 예쁜 낙엽 같았던 알록달록한 내 마음도 이제는 저 바닥에 뒹구는 마른 낙엽처럼, 발길질 하나에 그저 먼지처럼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죽어가는 마음을 다시 살릴 길은 무얼까.


그냥 모른 척하고 예쁜 하늘이나 보면서 속이 아릴 만큼의 매운 음식을 먹고 털어내는 척을 하면, 가라앉은 마음이 다시 떠오를까.


다시 내 마음을 발갛고 노랗게 물들일 수 있을까.

어쩌면 내일은 달라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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