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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라 Nov 02. 2024

명절 뿌시기

고된(?) 며느리의 삶이란?

명절이  되었다.

언제나 그랬듯 명절 스켸줄은 정해져 있다.

전일에는 아이들 친가에 가서 명절음식을 간단히 준비하고 저녁을 챙겨 먹고 나온다.

당일은 아침부터 조금 바쁘다.

제사가 없는 시댁이라 예배라는 것을 보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숟가락 놓기 무섭게 발걸음을 친정으로  옮긴다.

그래야 10시쯤 지내는 친정제사에 참석할 수가 있다.

이사오기 전에는 동선이 완벽했다.

시댁 옆에 살았기 때문에 명절 전날 시댁에 가고, 당일은 볼일을 마치고 약간은 이른 감 있는 아침 시간이지만 친정집으로 향하면 됐었다.

그런데 이사를 하고 나니  

당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시댁 갔다가 1시간여 만에 친정으로 다시 와야 하는 문제가 생겼다.

(참고로 친정집은 우리 옆단지이다.)


그래서 아버님은 우리에게

전날만 오고 당일은 그냥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었다.

우리를 배려해 주시는 것이라 마음은 감사했지만

나는 단박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한다면 당장 몸은 편할지 몰라도 명절첫날 예배로 시작하는 의식(?)을 하지 않으면 뭔가 할 일을 안 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최소한의 며느리로서 할 수 있는 기본은 지키고 싶었다.

마음 깊은 곳에는 나중에 혹시나 이일로 인해 할 말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은 싫었다.

그런 걸로 뭐라고 하실 분들도 아닌데 나는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에도 맞벌이 가정이라

아침은 늘 분주한 편인데 명절까지도 메뚜기 뛰듯이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결혼초에는 사실 명절 당일 친정제사에 가겠다고

선언한 일이 조금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15년 전 상식적으로는 일반적이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얼굴도 모르는 시댁 할아버지를 기리는 제사보다 나를 낳아주신 우리 아빠 제사를 지내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말씀드렸고 안된다는 시댁어른 앞에서 소주 한잔을 더 먹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사실 허락을 맡는 게 아니라 통보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대로 이어온 15번째 명절이다.

우리 작은 아빠들이  매년 명절에 두 번씩 차례를 지내러  오시기에 내가 가서 도와야 한다.

그러나  사실 난 제사에 가도 하는 일은 별로 없다.

제사 지내고 난 후 과일을 깎고 전, 약과, 밤등을 그릇에 옮겨 담고 다과를 먹는 정도를 준비한다.

그것도 엄마랑 같이.....

난 메뚜기라서 엄마도 나에게는 큰 기대를 안 한다.

누군가 나에게 기대하지 않을 때 나는 완벽함과는 멀어지지만 훨씬 편안한 삶이 보장된다는 걸 알아버렸다.


배려를 많이 해 주시는 시댁어른들께는 항상 감사하다.

중간에 한 번은 이제 일찍 안 갔으면 하시는 아버님이 속마음을 살짝 내비치셨지만

나는 모른 척했다.

우리 아빠 제사가 더 중요하기에.....


시댁이 아들형제가 둘만 됐어도 아버님이 덜 서운하실 텐데 우리가 빠져나간 명절 아침은

조금은 썰렁할 것도 같다.

그 마음도 헤아려야 하기에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고민해보려고 한다.


나를 둘로 나눴으면 좋겠다.

그런데 시댁에도 친정에서도 별로 일하지 않는

며느리와 딸의 포지션이라 (시댁도 제사가 없어

먹고 싶은  음식 한두 개만 하고, 주로 고기 구워 먹음. 친정은 엄마가 전날 고생해서 만드신 음식 다음날 다과 수준으로 차리기만 하는) 굳이 필요 없는(?)

고급 인력!

아 고급은 빼야지.....


그리고 명절 아침이 지나면 금방 점심쯤 시누이가 오겠지!

(언제 오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올 때 되면 오겠지

시누이 가족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면 되지......)


우리 가족도 크게 말이 많은 사람이 없기에 조용하지만 시누이 가족도 말이 없다면 뒤지지 않는 사람들이기에 분위기는 대충 알만하다.

어머님 아버님도 말씀이 많이 없으시다.


명절 전날 자고 오면 명절 분위기도 나고 훨씬 좋을까? 생각해 보지만

아이들도 이제 마냥 어리지만은 않고

자기 스케줄도 있으며 이대로 2~3년만 지나면

우리 부부를 쫓아다니지 않을 것 같다.

자기는커녕 당일에도 안 간다고 할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삼시 세끼를 차려내는 것만으로 답답하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어머님이 힘드실 예정.

가족인데 아무거나 먹음 어떠하냐 싶지만 그래도

매 끼니마다 먹을 것은 있어야 하니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이번 명절에는 점심 이후에 가서 간단하게 동태 전을 딱 한팩만 부치고 미리 사놓은 송편을 먹으며 해리포터를 봤다.

두어 시간 후에 저녁으로 야외 숯불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러나 예년보다는 훨씬 더웠던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양꼬치와 소고기를 먹었다.

그릇은 장례식에 쓰다 남았던 일회용을 썼기에 너무 편했다.

일회용을 쓴다는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모든 가정이 이렇게 일회용을 쓰면 어떻게 될까 싶은 마음이 컸으나 잠시 외면했다.


명절이 또 이렇게 지나갔다.

해마다 찾아오는 명절이지만 늘 똑같은 패턴으로 움직이며 최선을 다해 지내본다.

늘 똑같기에 따분하고 지루한 패턴이지만 익숙함 속에 묻어나는 평온함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연로해지는 부모님을 보며 이처럼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감사한다.

우리가 가면 항상 그 자리에 계시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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