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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Apr 06. 2024

바다에서 노니는 돌고래를 보다

제주도 시골 살기 1

바다에서 노니는 돌고래를 보다

얼마 전, 제주도 시골에 생애 첫 집을 마련했다. 하늘과 바다와 땅이 만나는 아름다운 곳으로, 제주 남서쪽에 위치한 유명한 돌고래 출몰 지역과도 가깝다. 운 좋게도 낚시를 좋아하는 남편의 최애 장소가 될 낚시 스폿도 근처에 있다. 


지난 일요일, 오일장이 열리는 때라 샐러드 만들 채소거리와 바다낚시 용품을 구매하러 장에 갔었다. 남편의 낚시 용품은 유럽 시부모님 댁에 있고 그동안 많이 바쁘기도 했지만, 가끔 낚시를 하면 낚시터에서 대여받곤 했다. 장에서 낚싯대와 줄을 샀지만 미끼는 팔지 않아 다시 근처의 낚시 가게에 가서 얼린 새우를 샀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낚시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색이 맞춰졌고, 날씨도 괜찮아서 남편과 나는 입소문으로 유명한 바다 낚시터로 향했다. 


개인적으로 낚시라는 활동보다는 낚시터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즐기려고 남편을 따라다니는 편이다. 유럽에서 자란 남편이 데려갔던 유럽의 낚시터는 한국의 비좁은 낚시터와는 달리 넓은 호숫가에, 낚시할 수 있는 공간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어 프라이버시도 지켜진다. 그때부터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고요함이 흐르는 낚시터를 좋아했던 것 같다. 


곧 도착한 바닷가에는 벌써 여럿 낚시꾼이 포진해 있었고, 몇몇의 낚시 바구니가 묵직한 것을 보니 고기가 많이 잡힌 듯했다. 주둥아리가 빨간 학꽁치가 많이 잡히는 시즌이라고 지인한테 들었다. 바람이 잔잔히 불었고 갯바위로 미미하게 은색의 파도가 치고 있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조금 거리를 두고 남편을 따라 물가와 떨어진 화강암 갯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한껏 기대하며 낚싯바늘에  미끼를 끼워서 새 푸른 바다 위로 낚싯줄을 던졌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가 들렸다. 남편은 낚싯대 끝을 나는 바다 끝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서  뭔가 점프하는 검은 물체가 보였다. 좀 떨어진 곳에서는 유람선이 운항 중이었다. 아, 돌고래인가 보다!


자세히 보니 무리를 지어 헤엄치는 돌고래들이었다. 이런 행운이 나에게 오다니! 남들은 돈 주고 유람선에서 본다는 그 돌고래! 물이 무서워 거리를 두고 있던 나는 남편한테 소리쳤지만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빨리 핸드폰을 들고 그 장면을 영상에 담고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육지에 사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뿌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부러워하는 멘트! 이런 신기한 광경을 나 혼자 보기에는 너무나 아까웠다. 수족관이나 놀이공원에서만 볼 수 있는 돌고래를 직접 보다니, 그것도 자유롭게 바다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니 더없이 기뻤다. 그러다 깊은 상념에 빠졌다. 


몇 년 전에 오키나와에 여행 갔을 때, 세계 최대 규모라는 츄라우미 수족관에서 고래상어를 봤던 기억이 났다. 아주 큰 수족관이었고 분명 다른 수족관에 비해 고래나 가오리들이 좀 더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옆에 바다를 두고 그렇게 갇혀 있던 고래, 가오리, 여러 물고기들과 쇼를 위해 훈련받는 돌고래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그 후로는 돌고래 쇼나 아쿠아리움에 가지 말자고 다짐하고 다시는 가지 않았다.


동물해방 운동으로 유명한 호주 철학자, 피어 싱어는 그의 저서 <<동물 해방>>에서 “인간이 느끼는 정도의 쾌락과 고통을 동물도 느낀다면, 동물의 고통을 인간의 고통과 평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반려묘 두 마리를 키우는 입장에서 요즘은 예전보다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대해 관심도 높아지고 직접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년 전 마지막 남방 돌고래였던 '비봉이'가 마침내 고향인 제주 바다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당연한 일이라 기쁘기도 했지만, 17년 만에 돌아가는 바다 생활에 잘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그 넓은 바다에서 좁은 수족관으로 옮겨졌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후, 인간은 자유를 준답시고 잠깐의 적응생활을 거쳐 비봉이를 망망대해에 놓아주었다. 하지만, 비봉이의 생사여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죽었을 거라는 추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비봉이의 고통을 인간의 고통과 평등하게 고려했다면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을까?


혹자는 돌고래 걱정을 하면서 낚시하는 남편을 따라다닌다고 위선적이라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남편의 오래되고 거의 유일한 취미활동인 낚시를 막을 수는 없다. 항상 그렇듯이 모든 것이 완벽할 수만은 없고 또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 약간의 모순은 있더라도 내가 지향하는 삶에 대해 갇힌 목소리가 아닌 자유롭게 공기 속을 유영하는 목소리를 내고 싶을 뿐이다. 


갑자기 남편이 소리쳤다. "저것 봐, 돌고래야!" 남편은 그제야 낚싯대 끝이 아닌 바다 끝을 본 모양이었다. 돌고래들은 바다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더니 한 시간은 족히 놀다 간 것 같았다. 비봉이가 누렸어야 할 저 자유! 비봉이가 어딘가에 간절히 살아있기를 바라면서 그 마음을 바다로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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