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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May 01. 2024

제주도 최애 장소: 시골 오일장에 빠지다

제주도 시골 살기 3


제주도 최애 장소라고 하면, 보통 바닷가 옆, 제주를 닮은 작고 운치 있는 카페를 상상할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카페에서 바다를 보며 커피 맛을 음미하는 낭만을 좋아한다. '최애' 장소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장소가 가능하다면 그런 카페도 꼭 포함이 될 테고. 하지만, 오늘은 조금 색다른 최애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제주에 집을 구하려고 지난 1월부터 펜션생활을 시작했고, 집을 구한 지금까지 약 4개월간 제주살이를 하고 있다. 정말 많은 집을 보러 다녔는데, 가진 돈이 부족하니 선택지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 시골에 우리 조건에 맞는,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집이 튼튼하면서도 빈티지한 구석이 있어야 했고, 이웃집과 조금 거리를 둬  사생활 침해가 되지 않으며, 영화 <비바리움>에 나오는 '욘더'의 주택처럼 똑같은 집들이 숨 막힐 듯 모여있는 곳도 피하고 싶었다. 적당히 가꿀 수 있는 정원도 덤으로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가장 중요했던 건 운전실력이 미숙한 내가 아이를 통학시켜 줄 수 있는, 학교에서 비교적 짧은 거리에 위치한 집이어야 했다.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하고, 내부가 좀 낡아서 화장실, 주방, 도배 정도만 수리를 했는데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런 겨울이 지나면서 봄이 찾아오고 우리 가족도 슬슬 제주살이에 익숙해져 갔다. 이 집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돌고래가 나오는 푸르고 드넓은 바다가 있고, 집에서 그 바다를 볼 수 있게 전망이 탁 트여 있다. 아침엔 동트는 한라산을 보며 모닝커피를 하고, 맑은 날에는 멀리 쌀톨만한 마라도를 보면서 한국의 최남단쯤에 살고 있음을 체감한다. 해넘이가 그리는 서쪽 하늘은 어찌 그리 고운지... 봄이 되니, 동네에는 노랑 유채꽃이 피어났고 정원의 철쭉, 데이지, 가자니아도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네 탐방 겸, 주말에는 근처에 있는 바다, 카페, 맛집, 책방 등을 방문하면서 관광객 모드로 사진을 찍어 육지에 있는 친구들, 가족들에게 뿌려댔다. 사실 지금도 그러고 있긴 하다.


하지만, 여행과 현실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기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시골이라 음식 배달도 안 되니,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 먹는 수밖에 없어 마트에서 자주 장을 보게 되었는데, 지출이 기대보다 항상 많았다. 물가가 오르는 걸 나만 못 느끼고 있었나 했는데, 많은 식품과 상품들이 육지에서 바다 건너 오니 가격이 더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해가 됐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둘째 벤지가 날 따라다니듯, 추가 배송비가 따라붙으니까.


이 집은 시골에 있어서 주위만 둘러봐도, 채소밭이 무척 많다. 양파, 무, 배추, 감자, 양배추, 당근 등등.

한 달 전, 캐나다에서 온 친언니가 집 주위를 산책하다 양파를 수확하는 아주머니 아저씨를 보고 양파 좀 살 수 있겠냐 여쭈니, 상품화되지 못할 것들은 그냥 가져가도 좋다고 하셔서, 집으로 와 나랑 같이 큰 가방을 가지고 양파밭으로 갔던 적이 있었다. 시골의 후한 인심에 감사하면서 그때 주워온 햇양파를 정말 요긴하게 잘 먹었다. 시골길을 운전하다, 수확이 끝난 길 옆의 밭을 보면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양파, 무, 배추들이 그냥 저렇게 썩어가겠구나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주인을 모르니 차마 가져올 수가 없었다.



                                          <역시 제주라 귤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다>


채소나 과일은 제주에서 생산돼도 마트에 가면 금값으로 변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일장을 알게 된 후, '금사빠'가 돼 버렸다. 오일마다 열린다 해서 오일장! 처음엔 시골장을 구경하고파 관광객 마인드로 방문했다. 지금은 제주도민으로 방문하는데, 오일장에 가면 북적이는 사람들 틈을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닌다. 역시 시장에 가면 활력이 샘솟는다. 갓 수확한 신선한 채소와 과일,  싱싱한 생선이 주를 이루고, 옷, 신발 같은 생활용품도 판다. 많이 사면 에누리도 해준다. 점심 바로 전에 가면 맛이 일품인 떡볶이와 김밥으로 바다 옆 정자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전리품을 가득 획득한 로마제국의 개선장군처럼 기세등등하다. 가방은 무겁지만 기분만은 가볍다. 집에 와서 전리품을 한 아름 풀어놓는다. 샐러드감으로 할 채소와 과일, 구이로 할 생선, 그리고 채소를 키워보고 싶어 산 오이, 깻잎, 토마토 모종과 상추 씨앗. 전리품이 아닌 최애장소에서 받은 '선물'이라 해야 맞겠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역시 시골장의 '정'이 아닐까 싶다. 




모종을 사는데 파시는 아주머니가 너무 바쁘시다. 

"아주머니! 이거, 토마토 많이 열리나요?" 옆의 할아버지 왈, "아주 많이 열려, 좋은 거야."

떡볶이를 새로 만드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자 비싼 떡을 하나 더 얹어 주신다.

가자미 두 마리, 고등어 한 마리를 사는데 자주 온다면 에누리해 주신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간장게장을 2킬로 받아야 하는데, 2.5킬로를 주신다.


어찌 보면 사소한 에피소드겠지만, 정찰제로 판매되는 마트에서 이런 '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성비 좋고 요즘 흔하지 않은 '정'도 느끼니 오일장이 최애장소가 될 수밖에. 곧 오일장이 열린다. 이번에도 선물을 한 아름 받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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