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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두 마리씩 키워야 해."

by 새벽별

시아버지, 해닝은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던 해에,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해닝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작은 목장을 물려받아 크게 확장하며, 일생을 낙농업에 헌신했다. 그런데, 1990년대에 '유럽연합(EU)'이라는 거대한 골리앗이 공식 등장하면서, 해닝의 얼굴에는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농장은 대규모 농장에 밀려 싸워보지도 못한 채,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해닝은 한창 일할 나이인 50대에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고된 노동으로 가족을 부양한 시아버지는 마음 편히 쉬어도 되었을 텐데, 은퇴 후에 자주 우울감을 보였다. 정원과 늙은 말 두 마리를 돌보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지만, 예전의 활력을 되찾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남편은, 적은 액수지만 송아지를 살 수 있도록 돈을 드렸다. 소를 살 돈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시아버지는 아들의 따뜻한 마음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해닝은 그 돈으로 수송아지 두 마리를 사 와 정성껏 키우기 시작했다. 다시 그의 자리로 되돌아간 것 같이, 시아버지의 얼굴에는 자주 미소가 번졌고 점차 예전의 활력을 되찾아갔다.


시아버지의 하나뿐인 손녀딸은 두 송아지에게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갈색 송아지는 '카인디(Kindy), 검은색 송아지는 '프리티(Pretty)'라 불렸다. 몸집이 큰 동물을 두려워하는 나와 달리, 동물을 좋아하는 딸은 어려서부터 큰 개나 소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시아버지 손에서 귀하게 자란 카인디와 프리티는, 어느덧 늠름한 황소들이 되었다. 우리는 덴마크에 전화할 때마다, 소들의 안부도 잊지 않는다.




어느 날, 두 녀석들이 넓은 들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고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두 마리 사시길 잘하셨어요. 한 마리였으면 외로웠을 거예요."

"소는 두 마리씩 키워야 해. 법으로 정해져 있거든."

"네, 법으로요?"



처음엔 세상에 이런 희한한 법이 다 있나 싶었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는 덴마크에서는, 동물도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도무지 그런 법규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동물을 두 마리씩 키워야 한다는 것은 권장사항이었을 뿐, 법으로 엄격히 규정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이웃 사람들 말만 듣고 법이라고 한 것 같은데, 가끔 그러실 때가 있으셔."


실제로 덴마크는 동물 복지에 대한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특히 사회성이 높은 토끼나 기니피그, 앵무새는 혼자 두면 면역력이 급감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기 쉬워, 두 마리 이상 함께 키우는 것이 권장된다. 기니피그의 경우, 덴마크에서는 두 마리 이상 입양해야 하며, 이웃나라 스웨덴에서는 이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 소나 말, 돼지 같은 농장 동물들도 여럿이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개나 고양이처럼 집안에서 사람과 같이 지내는 반려동물은 한 마리씩 키우는 집이 대부분이다.


<시아버지의 농장 동물들 좌로부터, 고양이 닉스, 프리티, 카인디, 레가. 레가는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


덴마크의 동물복지 가이드라인은 동물을 키우는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심리적 환경까지 세심히 고려한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한국에서도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법규도 점차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동물의 본능적 행동과 심리적 안정감을 헤아린 정책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앞으로는 그런 점도 감안되었으면 좋겠다.


결국, 법의 유무를 떠나서, 들판의 카인디와 프리티처럼 무리 지어 살아야 행복한 동물은 함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우리 가족도 고양이 한 마리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두 마리를 키운다. 첫째에게 친구가 필요할 것 같아 둘째를 데려왔는데,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양이는 독립적인 동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이 둘은 우리 가족에게 '함께하는 즐거움'의 의미를 일깨워준다.


<우리 집 벤지와 보리>


"소는 두 마리씩 키워야 해. 법으로 정해져 있거든."


시어머니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상하게도 그 말은 내게 '진실'처럼 들려 미소 짓게 만든다. 혼자 사는 삶도 존중하지만, 대가족 속에서 자라온 나는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https://www.expatfocus.com/denmark/guide/denmark-animal-welfare-and-cultural-iss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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