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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 그리고 잊지 못할 손님

by 새벽별

시아버지의 낙농업 은퇴 뒤, 시댁의 큰 농장 건물은 텅 비게 되었다. 하지만, 바지런한 시어머니는 그 공간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90년대 말, 농장 창고를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방 세 개와 거실, 주방으로 구성된 아담한 공간이다. 방에는 빈티지 감성의 가구들이 놓여 있어, 머무는 동안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소박한 외관이지만, 정감 있는 주인장의 따뜻한 환대로 나름 인기를 끌었다.


숙박료는 주변에 비해 매우 저렴하고, 시부모님은 손님들에게 인근 관광도 시켜주곤 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뉴질랜드 손님의 후기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덴마크식 풍성한 아침 식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해닝과 지트는 차가 없는 나를 데리고, 옛 성인 '루인(폐허)'이라는 곳을 보여 주었다... 정말 친절하고 좋은 분들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여행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장사해서 그들에게 남는 게 있을까 싶다."


시부모님은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생계를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덴마크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소일거리로 용돈벌이 하면서, 다양한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조용한 시골 일상을 소소한 즐거움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한 시어머니는 친화력도 뛰어나 손님들이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지금 게스트하우스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잠정 휴업 상태이다. 여든에 가까운 시부모님이 운영하기에는 무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간간이 찾아오는 단골손님을 외면할 수 없어, 방을 내주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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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 간이 거실과 주방 창문>


시댁이 있는 톤더(Tønder)시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근처에 둘러볼 만한 곳이 꽤 쏠쏠하다. 그래서 휴가철마다 인근의 유럽에서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특히 이 지역의 유명한 음악 축제(Tønder Festival) 기간에는, 집안의 사적인 공간과 선룸까지 내어줄 정도로 손님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비수기에도, 이 작은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독일에서 결혼이 어려운 국제 커플들이었다. 독일은 결혼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기간도 많이 걸리는 반면, 덴마크는 유럽에서 그 절차가 가장 간단하고 빠른 나라 중 하나이다. 이 지역은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국제 커플에게는 이상적인 결혼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 커플 중에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 손님들이 있다. 독일인 신랑과 당시엔 이름조차 생소했던 아이보리코스트 출신의 신부였다. 그들은 젊고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2000년대 초였지만, 그 지역에서 아프리카인을 만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남편과 나는 아시아인이지만, 당시에는 아시아 사람도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백인들만 거주하는 이 시골에서, 그녀는 내가 받던 '그 시선'을 한 몸에 받았을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일이 있으면, 독일인 신랑이 와서 이야기를 했다. 신부는 우연히 마주쳐도 눈인사만 했을 뿐이고 늘 조용했다. 이곳이 낯설어서였는지, 남편의 밝은 얼굴에 비해 그녀의 얼굴은 불안해 보였다. 동병상련이랄까? 같은 유색인종으로서, 그녀가 느꼈을 고립감과 차가운 시선들이 내 마음에 와닿는 것 같았다.


며칠 뒤, 외출에서 돌아온 우리는, 현관문 옆 협탁에서 작은 쪽지와 유로화를 발견했다. 그 커플이 우리를 기다릴 수 없어 떠나면서 메모를 남긴 것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잘 지내다 갑니다.' 그들은 머문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퇴실했고, 나는 그녀와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날 저녁, 우리는 식사하면서 그 커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주인이 없어도 돈을 놓고 갔네요. 참 정직한 사람들 같아요."


시어머니에게 그건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모든 투숙객들이 그랬을 테니.


"신부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어. 며칠 전에 싸우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신랑이 소리치고 여자는 울고. "


근심 어린 표정으로 시어머니가 말했을 때, 나는 놀랐다. 신랑이 참 선해 보였고, 그들이 이곳까지 결혼하러 온 만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국에서 국제결혼이 여의치 않아, 타국에서 혼인해야 하는 이들에게는 저마다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결혼 후 그 커플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신부는 낯선 나라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잘 살고 있을까? 그녀도 지금쯤 나처럼 중년이 되었을 것이다. 20여 년이 지났지만, 시부모님의 게스트하우스를 볼 때마다, 유독 그 신부가 기억난다. 그녀가 어디선가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빌어본다.


지금은 이 지역에서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우러져 생활한다. 그리고 이들을 향한 폐쇄적인 시선도 전보다 많이 열려 있음이 느껴진다.


한때 활활 타오르던 불꽃처럼, 이 작은 게스트하우스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를 담아내고 있었다. 이제 그 불꽃은 희미해졌지만, 이곳을 스치고 지나간 수많은 인연들이 더 행복해졌기를, 그리고 그들의 기억 속에 시부모님의 게스트하우스가 따뜻한 추억으로 빛나고 있기를 소망해 본다.



https://www.toender.dk/en/marriage

https://gutentagkorea.com/archives/91911#google_vign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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