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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CCTV를 달다

by 새벽별

몇 년 전, 시부모님은 결혼 50주년을 맞아 금혼식을 치렀다. 반 세기를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이 살아온 두 분을 축하하기 위해 가족과 친척, 이웃들이 모여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덴마크 금혼식에서는 꽃다발과 손편지, 십자수처럼 주로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준다. 하지만, 가까운 친척이나 가족은 한국처럼 축의금을 내기도 한다.


띠리링 띠리링~~


그로부터 두어 달이 흐른 어느 날, 덴마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시부모님은 생전 처음으로 집에 도둑이 들었다며, 몹시 충격에 빠져 전화한 것이었다. 금혼식 때 받은 축의금을 거실 서랍장에 보관해 두었는데, 도둑이 그 돈을 몽땅 가져갔다는 것이다. 소위 '범죄 없는 마을'로 알려진 이곳에서,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놀란 마음으로 우리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통화를 이어갔다.




<금혼식날 받은 선물과 파티장의 손님들, 낮은 울타리 너머로 차에 손을 흔들어 주는 딸>


덴마크 시골집은 낮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고 대문이 없는 경우도 많아, 누구나 쉽게 정원으로 들어갈 수 있다. 시부모님이 젊으셨을 때는 현관문도 열어놓고 다녔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간단히 잠그고 외출하게 되었다. 도둑은 오픈 차고에 차가 없고, 강아지가 짖어도 아무도 나오지 않자, 집이 비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고는 집 뒤편의 주방 창문을 깨고 침입했다.


외출했던 시부모님은 깨진 창문과 흐트러진 집안을 보고, 금혼식 때 받은 축의금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던 루나를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도둑은 짖어대는 강아지를 발로 찼거나, 때렸던 것 같다. 겉으로 드러난 외상은 없었지만, 이 사건은 강아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이후 루나는 비사교적으로 변했고, 시어머니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가족이라도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당시에 나는 반려동물과 살아 본 경험이 없었기에, 시어머니의 그 아픈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는 지금, 그 일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루나가 여전히 그런 행동을 보일 때면 마음이 아프다.


경찰은 이 사건을 조사했지만, 범인을 찾지 못했다. 평소에 현금을 소지하지 않는 시부모님이었기에, 누군가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짓을 한 것인지, 많은 추측이 오갔다. 그러나, 시부모님은 강아지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시부모님 집 앞을 차로 지나던 동네 지인이 동유럽인처럼 생긴 두 남자가 서성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특정 국가나 인종을 폄하할 의도는 없다. 예전보다 이 시골 마을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지만, 내국인인지 외국인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CCTV가 없는 시골이었으니, 그 동유럽인들이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고, 그들을 찾을 방법도 없어 결국 수사는 종결되었다.




<유리병이 작은 돈통으로 대체되었다>

덴마크는 강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사회이다. 시골 농가 앞을 지날 때면, 갓 수확한 농작물을 수레에 놓고 파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사람은 없고, 그 옆에 동전 넣을 작은 유리병만 놓여 있다. 누군가가 돈을 가져갈 수도 있지 않냐고, 오래전 남편에게 물었었다. 남편은 덴마크에서는 서로 믿기에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이전 글의 게스트하우스 손님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시부모님을 만나지 못하고 퇴실하면, 숙박료를 협탁에 놓고 갔다.


마치 CCTV 없는 무인 판매점이나 무인 숙박업소처럼, 사람의 양심을 믿고 그렇게 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덴마크 엄마들은 쇼핑하거나 카페에 갈 때, 아기가 탄 유모차를 밖에 둔다는 것이다. 나는 카페에 컴퓨터를 놔두고 화장실에 가는 한국인이지만,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덴마크의 이러한 관습으로, 가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서 갓 이민 온 사람이나, 방문객이 건물 밖에 세워진 유모차 속 아기를 보고, 경찰에 신고하는 경우가 있단다. 버려진 아기가 있으니 빨리 부모를 찾아줘야 한다면서. 이러한 전통은 공동체에 대한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변하면서 유모차 안에 아기 모니터를 설치하거나, 카페 외부처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만 유모차를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무인 매대의 유리병도 이제는 자물쇠가 달린 작은 돈통으로 바뀌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소중한 축의금을 도둑맞은 사건은 단순히 금전적인 손실 그 이상이었다. 시부모님의 부엌 창문이 깨지던 순간은 평생을 살아온 이곳의 신뢰 또한 깨지던 순간이었다. 그런 세태를 두 분은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그 사건 이후, 이 작은 마을도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 나갔다. 또 이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우리는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결국, 시부모님 집에 가정용 CCTV를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단지 물건이나 돈 때문만이 아니었고, 시부모님과 동물들의 안전이 제일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시댁을 방문했을 때, 카메라가 달린 모습이 생경하고 어색해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안도감을 주어 근심을 덜게 되었다.


"신뢰를 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라는 말이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사회에서 무너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배려심이 자리 잡도록 다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부모님이 앞으로도 평생의 추억이 담긴 집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지내길 기원한다. 그리고 몇 년 후, 60주년을 맞는 다이아몬드 결혼기념일에는 온 가족이 다시 모여 축하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시골집의 어색한 CCTV가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유모차 사진출처:https://honey.nine.com.au/parenting/mum-reveals-why-babies-sleep-outside-in-denmark/5 e169 dfc-696c-4cc3-b797-1e7 ac28 ad0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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