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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Oct 22. 2023

가시 같은 사람이 있거든

The rose that from the concrete




나는 손톱과 손가락 틈에서 거스러미가 자주 생긴다.

보통 날이 추워질 때쯤 나는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다. 그냥 어릴 적부터 시시때때로 났으니까.

늘 있는 일이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아무 생각 없이 뜯어냈다.


나는 인간관계가 넓은 편이 아니다. 마음을 열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한두 명. 그 관계가 깨지면 또 다른 한두 명과 함께. 성별은 상관없이 편안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한다.










손톱과 손가락 틈에 생기는 거스르미라는 게 있다.

그것은 일종의 굳은살 같은 건데 아주 작고 쓸모없는 것이다.

밖에 있다가 나중에 집에 들어가서 손톱 깎기로 잘라내면 그만인 것을 희한하게 신경 쓰여 계속 만지작거린다.

그 작은 것에 내 주의가 집중되고, 만지다가 슬슬 뜯어내다가 살이 찢기고 피까지 보일 때가 있다.

왜 가만 두지 못하는 걸까? 손이 왜 자꾸 그리로 갈까? 그러는 심리가 대체 뭘까?


이 글을 쓰는 동안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초록창에 올라온 한 기자분의 글을 읽었다.

'거스러미를 참지 못하고 뜯는 이유는 불안감의 표출이거나 해방감, 또는 문제를 해결했다는 통쾌감이 들기 때문'이라고 쓰여있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수긍이 절로 되었다. 내 경우를 보자면 해방감과 통쾌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나는 I이다. MBTI에 국한시키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내향형인 사람이다. 인사치레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못 한다. 이번주 당장 시간을 내어 같이 식사 한 끼 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연락하는 그런 인간이다. 소수의 사람과 친밀함을 유지하며 진정성 있는 관계를 선호하는 스스로를 높이 사던 내가 사실은 함정에 빠져있었다.


윷놀이를 할 때 '모 아니면 도!'를 외치며 던진 적은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인간관계에서는 항상 이 방식을 택했던 게 아닌가 싶다. 마음을 열면 한없이 좋아지기도 하는 반면 아니다 싶으면 관계 매듭짓기로 넘어가 버렸다.

문제를 풀고자 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끝내는 게(quit) 답인 줄로만 알았다.

더 큰 함정은, 상대 쪽에서 먼저 정리한 경우다. 내가 그 사람에게서 갑작스럽게 왜 정리를 당했는지 모르면 그 일을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장시간 버스를 타고 갈 때, 혼자 있을 때 등등.

거스르미를 가만두지 않으면 속이 후련할 순 있지만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지만 나는 마치 손가시를 만지듯 이미 지나간 것을 오래오래 떠올렸다.


기사를 마저 읽으며 나의 문제 많았던 인간관계 정리법에 도움이 될 말한 문구를 발견했다.


'가시 같은 거스러미가 자꾸 신경 쓰인다면 뜯지 않으려고 일부러 참는 대신, 손이 닿지 않게 반창고를 붙이거나 주위를 환기시키는 장치를 마련하세요.'








오늘의 포인트 단어 '환기'.


상처의 고통을 참아내려 하는 것보다 자신의 주위를 다른 것에 돌림으로서 상처가 절로 잊히게끔 내버려 두는 것이다. 주변에선 이미 이 방법을 사용해 빠른 시일에 회복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아프지만 자꾸 만지고 싶은 거스러미 다루는 법을 검색하다 도를 깨닫게 된 지경이다.

그러니 누군가 말과 표정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그 상처를 되새기며 건드리지 말고 다른 것으로 주의를 돌려보자. 흔히 독서와 운동을 추천하는데 나의 경우 종이에 쓰는 행위야말로 치료과정에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이야기 즉 일기의 일종일 텐데 그것을 쓴다는 건 스트레칭과 같다. 어느 날 갑자기 운동을 하면 인대가 늘어나거나 어딘가 삐끗할 가능성이 높은데 스트레칭을 해오면 그런 운동사고를 줄일 수 있다. 글을 쓴다고 모든 감정이 해소되거나 분이 삭히진 않는다. 열받고 답답하다고? 글을 써도 마찬가지이다. 부정적 감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래도 써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큰 감정적 공격이 왔을 때 대응할 힘이 생긴다. 다른 사람의 못된 말, 못난 태도에 잠시 흔들릴 수는 있어도 자아가 뿌리를 깊게 내리는 과정이 된다. 그러니 나는 화가 날수록 노트를 펴고 펜을 든다. 각자 자신만의 일기장을 가져보자.








거스러미로 시작한 문장에서 과거 나의 문제점과 풀이공식까지 발견하며 끝맺음을 했으니

오늘의 글쓰기, 아주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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