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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Oct 22. 2023

아픈 것도 때로는 약이다

The rose that from the concrete

밤이 길다. 너무 길다. 평소 같으면 11시경 머리를 대고 눈을 감으면 즉시 새로운 해가 뜨는 마법을 경험해야 하지만 오늘같이 몸이 아픈 날에는 빨리 아침이 왔으면 하는데도 새벽 제자리이다. 


온몸을 덮은 근육통과 열은 기나긴 새벽동안 목과 귀로 옮겨왔다. 이런 몸살이 낯선 것도 아니다. 체질이 약한 건지 1년에 한 번꼴로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 없는 병세를 겪어왔는데 오히려 혼자 살면서부터 그 주기가 늦춰졌다. 어떤 사람에겐 비염이나 아토피가 있듯이 나에겐 양쪽팔 언저리가 아픈듯한 근육통이 있었다. 

통증강도가 확실히 아픈 게 아니고, 아픈 듯했기에 병원 대신 몇 군데 한의원을 찾았지만 이 애매함에 효과가 있는 한약은 없었다. 그 상태 그대로 버텨 살다 보니 지금은 만성 근육통이 많이 사라졌다.

이런 내가 명절이라 본가에 가 있는 동안 가족구성원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좁은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하던 동료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PCR 검사 때마다 음성으로 나왔다. 

내 안의 면역세포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바이러스들을 상대로 싸워 건강을 지켜준 것이다. 무려 3년 6개월간. 

코로나 미확진자로 역사에 남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했는데 기록은 아쉽게도 깨져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역사에 남길 수 있는 것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 혹독한 증상을 기록으로 남겨보자.

평소 두통이 잦은 편이라 머리가 아팠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게 첫 번째 증상이었다. 

근무 중에 어느 분이 체리를 갖다 주셔서 감사히 받아먹었는데 속이 안 좋더니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설마 체리 때문일까 싶기도 했지만 내 이성은 이 과일의 효능과 부작용을 알고자 했다. 검색해 보니 많이 먹으면 설사를 한다는 내용이 나와있었다. 앞으로 체리는 먹지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속상해졌다.

화장실을 두세 번 가고 나니 기운이 빠지고 몸이 영 쳐졌지만 구내식당 점심메뉴가 삼계탕이라 하여 먹고 기운 내보자 뚝딱 챙겨 먹었다. 분명 맛있게 먹었는데... 몸보신 음식이니 힘이 나야 하는데...

오후부터 컨디션이 가라앉고 불멸의 근육통이 오셨다. 당시 나는 직장에서 집까지 걸어서 오분거리인 완벽한 직주근접이었다. 넘어지면 코 닿을 가까운 길을 천리길처럼 여기며 갔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잠을 청했는데 깨어보니 아직 한밤중이었다. 다음날은 연차를 냈다. 집에는 먹을 게 없었다. 천근만근의 몸으로 또다시 천리길을 나가 먹고 싶은 대로 메뉴를 고르다 보니 손에는 동태탕과 낙지비빔밥, 물냉면이 포장된 봉투가 들려 있었다. 배가 얼마나 고팠는지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먹다 보니 물냉면 몇 젓가락뿐이었다. 약을 먹고 다시 잤지만 저하된 체력은 회복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낙지 비빔밥을 먹었다. 내 입맛이 없다는 것도 모르고 음식 탓을 했다. 어떻게 이렇게 맛이 없을 수가 있냐고. 누구라도 이 음식은 맛있게 먹지 못하겠다고.

앉아서 밥 먹는 것도 힘들었던 나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코로나 위기상황 해제 선언이 된 지도 한참 되었고 감염자 수도 줄어들던 추세라 그때까지 의심을 못했었다. 근데 그냥 너무 아프니까. 감기가 왜 이렇게까지 아픈가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기 전에 자가키트를 해보았다.

그때 처음 보았다. C와 T 두줄에 분홍선이 분명한 것은.


자다가 새벽에 배가 너무 아파서 일어났다. 변기에 앉아마자 변이 물처럼 나왔다. 거기에는 내가 사 와서 먹은 음식의 빨간 양념들이 둥둥 떠있었다. 식은땀과 격동의 트라우마 시간을 보내며 무사히 잘 지나갔다.

나는 배가 아프면 실신단계까지 간다. 경험한 바가 있어서 실신 직전이면 트라우마가 경고음처럼 울린다.

1인 가구로 살고 있는 내가 쓰러지는 경우를 생각해 봤다. 이미 쓰러진 상태에서는 119에 셀프신고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쯤 쓰러질 예정이라고 예약을 해둘 수도 없는 노릇이라 아플 때 혼자인 건 여러모로 난감하다.

아침이 되어 병원에서 정식 검사를 하고 나는 본가로 갔다. 그곳에 가면 더 편안하게 쉬거나 간호를 받을 수 있어서가 아니다. 119를 어느 시점에, 어떻게 불러야 하냐는 고민을 방지하기 위해서 간 것이다.

셋째 날이 되자 목구멍이 많이 부었다. 침을 삼킬 때 아주 좁은 구멍을 지나쳐 가야 하는 빡빡함이 느껴졌다. 건강할 때는 침을 삼킨다는 인식도, 건강하다는 인식도 없이 지나간다. 고통이 왔을 때에야 그동안 무탈했음을 알게 된다. 평생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따끔하다면 어떨까 하는 아찔한 생각 해보았다. 

예전에는 내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야 감사함을 느꼈다. 그런데 어디 인생이 바라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가. 그러다 보니 감사한 순간은 겨우 몇 번에 지나지 않았다.


난 요새 감사한 것들이 많다. 죽을 때가 와서 그러는 건 아니고 살면서 당연히 감사해야 할 것들을 그동안 감사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감사한 것들이 눈에 더 사소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에. '잘 나가는 나'가 아니라 '살아있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남들과 다른 점을 비교하고 속상해한 적이 있다. 아니 그래왔었다. 롭무어의 <확신>이라는 책에 보면 그 다른 점이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른 독특한 존재로 만든다는 문장이 있다. 그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나를 남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비록 타고난 체력은 약하지만 더 건강한 내가 되기 위해 꾸준히 운동도 하고 영양 관리도 하고 배우고 공부하는 내 모습이 좋다. 내가 나의 주체가 되어 날마다 투쟁하고 감사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내 모습. 좋다.

사랑은 자기 확장으로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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