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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Oct 22. 2023

나의 뿌리 깊은 치아

The rose that from the concrete

사랑니를 발치했다.












왼쪽 이를 뽑고 10년이 된 해에 오른쪽을 마저 끝냈다.

어금니를 대신해 쓸 수도 있다는 말에 사랑니를 잘 보관해오고 싶었지만 이미 충치가 생긴 터라 다른 치아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어 뽑는 편이 낫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데 왜 한 번에 뽑지 못하고 십 년 만에야 마음을 먹었을까.

마취하면 눈 깜짝할 사이 뽑기도 하는 게 사랑니인데.




나의 것은 좌우 위아래로 4개가 나 있다.  

첫 발치 때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이가 누워 나 있다고 했다. 고생 좀 하겠다는 말과 함께 수술에 들어갔지만 웬걸, 치아의 뿌리가 J형으로 아주 깊숙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엄마 따라 종종 봄나물을 캐러 간 적이 있는데 그 작은 나물도 여러 겹의 뿌리를 내려 뽑히지 않으려 얼마나 애쓰는지. 내 뿌리도 그랬나 보다. 내 몸에 오랫동안 붙어있고 싶었나 보다.

치과의사 선생님이 입 속 저 끝에 있는 작은 치아를 펜치로 잡고 흔들어대니 골이 다 흔들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안 되겠는지 치아를 망치로 부숴야겠다고 했다.

‘저기요... 선생님?!....’


선생님, 나 그리고 뿌리는 각자의 사투를 벌였다. 입을 두 시간가량 벌리고 있으면서 과연 이게 맞는 일인지 싶었다. 마취는 했지만 고통은 동일했다. 턱은 아프지, 혹여 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무서운 생각도 들지 그런 첫 경험 덕에 왼쪽 사랑니 발치 후 미루고 미루다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발치를 하기에 앞서 잔뜩 겁먹고 있던 내게 병원 직원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더니 이번엔 어렵지 않은 수술이 될 거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긍정언어에 용기를 얻어 바로 다음날로 예약을 했다(분명 이전 병원에서는 나머지 두 개도 힘들거라 했지만 세월만큼 기술도 좋아졌을 테니 믿어보기로!). 

의사 선생님은 내 이를 톡톡 쳐보더니 지금 나이에는 그리 딱딱하지 않을 테니 금방 끝날 거라는 자신감 있는 말과 함께 잇몸에 주사를 가볍게 놓았다. 마취가 퍼지고 본격적 수술에 들어가자, 

연거푸 ‘어휴, 엄청 딱딱하네’ 혼잣말을 했다. 힘겹다는 듯 내는 끙끙 거리는 소리가 십 년 전 그때를 떠오르게 했다. 선생님 이마에 송글 맺힌 땀이 떨어져 입 속으로 닿을 것만 같았다.

안 뽑히는 이를 잡고 흔드는 만큼 뿌리로 연결된 턱과 잇몸, 코, 뇌까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온몸이 경직이 되어있었지만 계속해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며 누워있을 순 없었다.

나는 신께 도움을 구하고 그분께 맡겨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다름 아닌 감정 다스리기. 두려움은 부정적인 생각만을 몰고 오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선수 쳤다.





나는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랑니야 아쉽지만 이제 우리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야. 네가 이만큼 딱딱하다는 건 다른 치아들도 그렇다는 뜻인 걸 알게 해 줘서 고마워. 난 그동안 충치가 많은 게 치아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사랑니 너로 인해 내가 강한 치아를 갖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어. 앞으로 내 치아들을 더 사랑할 거야.”


사랑니는 내 말을 듣고 있는 걸까.


“지금은 헤어져야 하니 이 순간만은 부드러워져야 할 것 같아. 그동안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줘서 고마워.”


의사 선생님은 여전히 끙끙거리며 이를 쪼개고 있었지만 사랑니는 뇌에서 보내는 명령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랫니 뿌리까지 뽑히고 나니 윗니는 훨씬 수월하게 끝났다. 드. 디. 어.

사실 무서웠다. 선생님 앞에서 입을 벌리며 누워있는 동안에는 이 정도는 참을만하다는 척했지만 수술 후 의자에서 내려온 나는 의자와 접촉된 신체 부분이 전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수십 년간 내 몸의 일부로 함께한 치아와 대면 인사는 하지 못했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의자 위에서 잘 견뎌준 나 자신과 수술을 무사히 마쳐준 의료진께 감사하다.

숙원의 숙제였던 사랑니 2차 발치를 ‘몸과의 대화’로 지혜롭게 해낸 내가 자랑스럽다.

용기 내줘서 고마워,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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