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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새 Oct 22. 2023

우당탕탕 이사일지

종국에는 나비가 되어





왜 내겐 한 번에 처리되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하기!







그동안에는 집을 옮길 때 이삿짐이라 할 게 없이 무게가 좀 나가는 박스 몇 개가 있을 뿐이었기에 부모님의 도움을 받거나 용달기사님을 불러 짐을 옮겼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니까. 그냥 살면서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있을 뿐이니까 이사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때쯤이면 되겠지 싶어 이사 일주일 전에 몇 군데에 문의해 그중 한 업체를 선정했다. 집에 있는 큰 가구들은 무엇이며, 나머지 자잘한 짐은 박스에 넣어 준비해 놓겠다고 하고 당일을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되어 기사님이 전화가 오셨다. 집을 못 찾겠다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떤 내비게이션은 출입구가 없는 아랫동네길로 안내를 해준다. 간혹 그런 경우가 있었기에 나는 전화로 길 안내를 해드렸다. 길 찾는 게 힘드셨는지 기사님은 씩씩 화가 나셨다. 화가 나신 이유는 이해가 되었다. 부슬부슬 비는 오지, 뭔 동네가 내비에 길도 제대로 안 나오지, 계단은 많지..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문제는 집으로 들어오셔서 내가 쌓아놓은 짐을 보시더니 이건 안 하겠다고, 못하겠다고 하셨다. 이건 용달이 아니라 이삿짐센터를 불러야 한다고 그냥 가셨다. 나는 업체와 예약을 할 때 구체적인 목록이 없었기에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몰라 가진 짐의 종류를 대강 얘기했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계단이 있음도 설명을 했다. 업체는 다른 어떤 것을 더 알려고 하지 않고 바로 접수를 하겠다고 했다. 세탁기와 냉장고 같은 무거운 것들도 있으니 두 분이 오셔야 한다고도 했지만 개인 사정으로 다른 한분은 오시질 않았다. 이런 상황에 나이 지긋한 기사님 한분마저 되돌아가시니 그 업체와의 약속은 파투가 났다.

오늘 안에 짐을 빼야 하는데, 새 임대인에게서는 보증금 잔금을 언제 보낼 것인지 대한 연락이 오고 있는데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멘붕 직전이었던 나는 아예 오시지도 않던 기사님이 자신이 미리 낸 소개 수수료를 업체에선 돌려주지 않는다는 전화에 응대해야만 했다. 


부리나케 핸드폰으로 이사업체들을 살펴봤지만 바로 오겠다는 답변은 없었다.

이사가 이렇게 치밀하고 계획적이어야 하나. 별 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도 있는 일이 나 스스로를 애처롭게 느껴야 하는 일인가 싶었다. 난 나이를 먹으면서 채워가기보다 비워갔다. 물론 나의 의지는 아니었다. 여러 외부적 요인이 있었지만 내가 경제적 취약층임을 받아들이면서 지내왔다. 그렇기에 나름 미니멀리스트라고 자부했었는데 보헤미안의 삶을 꿈꾸는 내가 뭘 그렇게 갖추고 살았는지.. 무거워진 집을 둘러보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마음은 젖어갔다. 30만 원어치에 맘고생이었다. 처음부터 그 비용을 더했으면 오전 중에 이사를 완료하고 새 집에서 짐 정리를 하고 있었을 텐데.


겨우 연락이 닿은 업체와 우여곡절 끝에 여섯 시가 다 되어서야 이사를 마무리했다.

슬픈 하루였다.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두 번 세 번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건 유독 내게만 자주 일어나는 것 같아 오늘 하루가 참 무겁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액땜한 셈이다. 어째서 나에게만 안 좋은 일이 생기겠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을 보는 나의 시야가 아직 좁은 거겠지.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축하합니다. 이번 액땜을 통해 어려움을 이겨내는 근육 1그램을 획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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