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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누파파 Sep 22. 2023

ESFP의 연애 그리고 결혼

EP. 0 아빠가 사랑도 해봤다?

뭐 연애라는 것이 쉽다고만 느꼈던 때가 있었다.

누구를 만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안되면 말지 뭐' 하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그렇게 연애를 많이 해보지도 않았는데 잘난 척하는 거다. 쉽다는 것은 상대적인 거니까 말이다.


내게는 시간적 상대성이 있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차이.

직장을 들어가기 전에 나는 누구를 만나든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흠이 있든 없든 일단 만나보는 것이 하나의 경험이자 양분이 될 거라는 주의였다.

그러다 보니 극단적인 성향도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30대가 되었다.


사실 29살부터 '연애는 정말 쉽지 않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연애는 1년 넘도록 안 그리고 못했다.)

이것은 내 외향적인 면도 있었겠지만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생기는 필터링이 매우 강하게 작용한 듯하다.

여자분들은 처음 만날 때부터 나의 재력과 자식을 낳고자 하는 정도를 물어 왔고

나 역시도 이 사람의 성격보다는 씀씀이와 종교관 그리고 가진 것을 확인하는데 급급했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굳이 이렇게 하면서 연애를, 결혼을 해야 되나? 하는 회의감도 들었다.


'아 저는 결혼을 되도록 빨리 하고 싶고요, 애는 둘은 낳고 싶어요.

저랑 소주 한 잔 같이 먹으면서 국밥으로 해장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부모님이 잘 사시면 더 좋고요!'


라는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건 너무 "결혼"이 목적 아닌가?




그러던 와중 만나게 된 한 사람은 좀 달랐다.

(지금 와서 보면 달랐는지 비슷한데 뭐가 씐 건지는 알 수 없다.)

처음 만나서 자기가 좋은지 먼저 물어보는 사람.

처음 만나서 소주 한 잔 먹으러 가자는 사람.

뭔가 이 사람은 다르게 느껴졌고,

특히나 "옥수수 수염 소주"라는 생전 처음 듣는 술을 먹여주겠다고,

추운 한 겨울에 편의점에 팔랑팔랑 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술이 맛이 있든 없든 맛있다 해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갔던 곳은 유명한 국밥집으로, 소고기 국밥과 육사시미가 맛있는 집이었다.

와.. 아니 여자분은 소주를 한 잔씩 따르고, 

그 공간에 옥수수수염차를 섞어 일명 옥수수 수염 소주라는 것을 만들어 줬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꼭 술을 좋아하시는 독자 분들은 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국밥에 소주를 좋아한다고 했던 내게 이 국밥집의 분위기와 상황은

꿈에 자유롭게 그리라고 해도 잘 안 그려지는 상황이었다.


뭐지 이 사람?

그렇게 소주 2병? 3병?을 먹고 아쉬움 끝에 헤어졌다.

(그땐 코로나로 9시 이후에 모임이 금지(?)된 시기였다.)

처음 만난 사람과 낮부터 6시간 넘는 첫 만남을 가졌다.

내겐 그녀와 이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녀와 만난 이후 집에 오고 나서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뭐지? 왜지? 첫날부터 너무 들이대는 거 아닌가?

아니 내가 좋다는 거 왜 다 해주지? 내가 좋아하는 티가 났나?

솔직히 나이 서른 먹고 무슨 불타는 연애냐

그 여자는 너만큼 관심 없을 거고 그냥 놀고 싶어 하는 애다.

여자애가 첫눈에 반했네.

같이 놀고 싶었나 보다.

온갖 고민들과 몸속에 연애 세포들이

자기 의견을 얘기하는 것을 듣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벽 5시에 카톡을 했고, 바로 다음 날(월요일) 시간이 되냐고 물어봤다.

(와잎.. 아니 여자분은 그때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미친놈 or 금사빠로)

당시 그녀와 나는 1시간 30분 정도 거리였는데

나 스스로도 이 거리를 매일 갈 수 있을지, 술에 취해 그녀가 좋았던 것이 아닌지

그리고 그녀가 내가 회사일을 마치고 후줄근한 모습으로 갔을 때에도 반겨줄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내 세상 제일 후진 패딩과(지금도 와이프는 싫어한다.)

땀으로 떡진 머리를 가지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7시 즈음 만난 우리는 9시까지 밥 먹고 근처를 걷다가 헤어졌는데,

가게도 소개팅 장소로는 부적절(?)한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작은 태국 음식점이었다.

J였다면 좀 더 나은 장소를 찾았을 텐데.. P인 나는 평점만으로 골라 후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때도 여자분은 여전히 밝은 모습이었고 이번엔 음식 취향도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내 음식 취향은 모든 것을 다 먹어보자는 주의에 대부분의 것을 싫어하지 않는데

여자분 역시도 중국에서 잠깐 파견근무를 했어서 베트남 음식이나 강한 중국 음식을 잘 먹었다.


글이 길어서 다들 아시겠지만 이 사람이 지금의 내 아내이고,

후에 물어보니 두 번째 만남에서 본 내 모습은 진짜 별로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틀 연속 한 시간 반 거리를 찾아오는 열정적인(?) 모습에 믿음이 갔는데

지금 그 남자는 온데간데없고, 안일함만 남았다고 한탄을 하는 중이다.


그럼 국밥이 아니라 스테이크 써는 남자 만났어야지?




이런 이야기 자체가 오글거리고 웃기는 이야기긴 한데,

결국 사람을 만나는 기준이라는 것은 맞추기도 어렵고 맞출 수도 없다.

요즘 결혼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22년 기준 남자 33.72세, 여자 31.26세이다.

처음 직장을 가는 나이가 남자는 군대 2년 제대 후 26세, 여자는 24세라고 본다면

이후 7년 이상 돈을 벌고 결혼을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기준은 더 깐깐해지며 눈높이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평균 초혼 연령 (출처: KOSIS)


내가 1억을 모았으면 상대도 1억을 모아야 하는 게 공평한 것 아닌가? 

남들과 비교하는 문화, 특히 SNS에서 올리는 모든 피드가 내가 아직 준비가 안되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하는 마음에 더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과

나도 이 정도까진 요구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공존하는데 결혼은 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그래서 나는 더 허례허식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국밥 먹고도 잘 살 수 있다'를 떳떳하게 외치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고 싶다.

사실 명품 가방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데, 국밥은 없으면 못살지 않나?

비싼 음식, 좋은 차가 아니더라도 함께 있는 사람과 먹는 음식 그리고 이곳저곳 다니는 여행이 나에겐 더 값어치가 있는 듯하다. 이게 ENFP의 마인드고, 지금의 아내와 나의 생각이다.


인생의 가치는 자기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찾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것이 정말 맛있는 음식일 수도 있고, 세상의 모든 곳을 다녀보는 여행일 수도 있고,

스스로 만든 물건들을 감상하는 것에, 힘겹게 끝낸 과제나 게임에 있을 수 있다.

나에겐 아내와 마트를 갔다 오는 시간이, 아이와 함께하는 목욕이,

아이가 잠잔 뒤에 먹는 아내와의 달콤한 맥주 한 잔이 행복인 것 같다.

그 속에 돈은 없고, 사람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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