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3일차 -4 @ 속초 장사항
"나는 음…"
"모여있으면 사람들이 몰려와…"
와이프가 또또에게 속삭였다.
"아, 엄마~악!
내가 말할 건데 엄마가 먼저 하고 그래?"
도와주려던 와이프가 구박받았다.
"에이 정말... 또또는 튀김가게 많은 데.
엄마가 말하기 전에도 거기 할라 그랬어.
거기 가서 제일 좋은 자리 맡는 거!"
"ㅎㅎㅎ 왜?"
"사람들이 많이 올 거 같아."
"그렇지. 그게 무슨무슨 골목이 생기는 이유야.
여기 속초 튀김골목, 춘천 가면 닭갈비 골목...
아빠 회사 있는 가로수길, 경주 갔을 때 경리단길..
다 비슷비슷한 거야."
"근데 왜 속초에 튀김골목이 유명해졌어?"
"그건 아빠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아마 속초에 해산물이 좋아서 튀김까지 맛있으니까
사람들이 찾으니까 옆에 또 튀김가게 생기고,
그래서 튀김골목까지 만들어지고, 유명해지고,
유명해지니까 또 여기 놀러 와서 튀김 먹고...
우리도 왕새우튀김 먹은 적 있잖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오게 되는지 알아?
알 수 있어?"
"ㅎㅎㅎ 그건 모르지. 사람 수까지는 몰라.
근데 쉽게 예를 들면, 동네에 100명이 사는데
그중에 튀김 좋아하는 사람 10명이 1년 동안
10번 먹고 싶으면 100개 파는 거잖아?
근데 튀김골목으로 유명해지면 튀김이 생각나면
찾아오거든. 그게 중요해. 그러면 1년 내내
10명씩 매일 올 수 있어. 그럼 돈 더 많이 벌지.
튀김이 생각날 때 올 수 있는 곳,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야 움직이지 않을까?"
계산을 해주려다가 어려워진다 싶었고, 나조차도
계산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을 먼저 이야기하게 된다.
아마도 광고쟁이 특유의 계산법, 직업병인가 보다.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 '00 골목' 경제학의 기초는
딸이 이해한 거 같았다. 국내 여행을 다니면 요즘
자연스레 00길, 00 골목, 00촌을 다니게 되니까,
매번 그 지역의 테마를 이야기했었는데, 이제
얼추 경제 비스무리한 이야기까지 나올 만큼 컸다.
의도한 동선은 아니었지만, 또또가 '00 골목'을 체감할
수 있는 코스가 바로 이어졌다. 바로 횟집골목.
동명항의 횟집과 대게집이 줄지어 있는 골목을 돌았다.
하지만, 저마다 '맞는 동네'가 있고, '아닌 동네'가
따로 있나... 이번에도 동명항에서 횟집 고르기 실패.
"오빠, 우리 장사항 쪽으로 가볼까?"
"ㅎㅎ 그래, 그쪽으로 함 가보자."
우리가 동명항에서 횟집을 못 찾는 건
아마도 가장 먼저 가기 때문이지 않나 싶었다.
누가 봐도 외지인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면서,
누가 봐도 현지인들이 인정한 횟집을 찾겠다는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는데,
그 고민을 금방 포기하게 되지는 않기 때문에...
그래서 한 군데 더 보고 나서야 '별 수 없구나'
포기하고, 최종 선택을 하는 것 아닐까.. 싶었다.
동명항에서 좁은 해안도로를 타고 장사항으로 향했다.
오른쪽으로 바다가 트여있고, 사람들이 놀고 있었다.
왼쪽으로는 작고 예쁜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파랗고, 하얗고, 알록달록하고, 쨍했다.
길이 좁아 운전은 힘들었지만, 작은 동네를 걷는 느낌.
장사항에 가까워올수록 많은 횟집들이 늘어서있었다.
다가오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바구니를 흔들고,
말붙이는 호객행위 속으로 들락날락하기를 몇 번째.
장사항 도로 끝까지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는 길.
주차하기 편하고 수족관도 커 보인다는,
사실 특별한 기준도 아니고,
그 기준대로 고른 것도 아닌
횟집 앞에 차를 세웠다.
“여기 잘해주시죠?”
뻔한 대답을 부르는, 뻔한 질문에
그런 질문을 한 와이프도 웃고,
횟집 아주머니도 슬며시 웃었다.
우리의 선택은 “장군횟집”이었다.
우리 가족은 '맛집'의 문턱이 낮은 편이다.
그만큼 어디서든 뭐든 잘 먹고, 또 만족해한다.
우리 가족에게 기억에 남는 맛집, 식당은
음식 맛이 아니라 아마도 얽혀있는 추억인 듯싶다.
'그 집 그 메뉴 맛있었는데...'라고 말하거나,
그걸 같이 기억해 주는 가족이 별로 없다. 다만,
'우리 그 때 그 집에 무슨 일로 갔었는데...',
'또또가 몇 살 때 가서 그 집에서 먹었잖아'
이런 경험에 대한 기억은 곧잘 해내는 걸 보면...
"잘 골랐네, 그래도."
그래서 우리 가족의 맛집 추천에 신뢰도는 낮겠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날 저녁식사에 꽤 만족했다.
다 먹기 힘들 정도로 푸짐한 양의 회,
그리고 해산물 중심의 밑반찬,
계속 이어지는 매운탕, 튀김 등등등...
딸이 좋아하는 광어뱃살의 식감도,
엄마 회사 사람 이름과 똑같은 생선 ‘삼식이’도
음식과 곁들여 수다 떠는 재미까지 주었다.
'저희 사장님이 모자란 것보다 그래도 더 드리자는
주의셔서 양이 많아요'라고 홍보멘트를 친절하게
이어주는 아주머니까지... 아참, 2층 오션뷰 자리에
앉으면 더 좋았을 텐데, 거기는 이미 다 차 있었다.
식사가 무르익을 즈음, 횟집에 들어오기 전에 봤던
한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피어 나왔다.
두 대학생(으로 보이는)이 큰 가방을 메고,
지도인지 여행안내 책자인지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둘이 함께 뭔가를 찾는 느낌,
씩씩해 보였고 또 한편 더위에 지쳐 보였다.
"아까 그 친구들, 옛날 무전여행 분위기 아니었어?
요즘도 무전여행 하나 싶더라... 자기는 했었지?"
"유럽. 무전여행은 아니고, 배낭여행이지"
유럽을 배경으로 큰 가방을 메고 있던 와이프 사진이
떠올라서 배낭여행을 무전여행으로 착각한 질문.
"아 그렇지, 유럽은 무전여행을 못 하지 ㅋㅋㅋ
오빠도 대학 때 전국일주를 저렇게 했어야 되는데...
우리 과에도 그런 친구들 있었거든.
전국에서 친구들이 서울로 올라오니까
방학 때 그 친구들 집에만 한 번씩 돌아다녀도
전국 일주가 된다고. 그 때 다니면 참 좋았을 텐데...
또또는 무전여행 나중에 해보고 그럴 수 있겠어?"
"무전여행이 뭐야?"
"아, 무전여행을 모르는구나…"
또또가 무전여행을 모를 줄 몰랐다.
"무전여행은 아주 중요한 거 하나 없이,
여행을 다니는 거야. 없을 무 알지? 이것 전...
자, 그러면 무엇이 없이 여행을 다닐까요?"
쉬운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딸은 처음 듣는 단어였나 보다, 무전여행.
"음... 뭐가 없어? 가는 차?"
이동수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 일부러 내가 평소에 중요하던 거 하나를 빼놓고
여행을 해보는 거야. 그러면 그 소중함을 알기도 하고,
그거 없이 가능한지 시험도 해보고 뭐 그런 목적으로...
자 그럼 보기를 드리겠습니다.
… 1번 차, 내 자동차, 버스 같은 교통수단 말고...
2번 돈, 3번 폰."
이 역시 쉬운 질문이라 금방 맞추리라 생각하고
대충 설명했는데, 의외로 딸은 선뜻 답을 못 한다.
곰곰이 생각하며 갸우뚱해한다.
"자, 정답은?"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