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일차 -1 @ 속초 갯배
여행 4일차, 양양 옆이지만, 속초에서의 첫 아침.
오늘도 아침을 깨우는 소리는 와이프.
"또또야, 오빠! 일어나세요, 이제!"
오늘 와이프의 목소리를 기분이 꽤 좋아보였다.
안 그래도 아침잠이 맛있는 나와 딸은
여행 숙소의 선선한 에어컨 공기와
빳빳한 침대 이불의 촉감이 오늘도 너무 달았다.
깨우는 소리까지 기분이 좋으니,
또또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눈을 떴다.
"또또, 깼어? 이리 와, 이거 봐봐.
엄마가 오늘 아침에 일출을 보고 왔어."
어제 “밤에는 시티뷰지..”라는 말의 영향인가,
오션뷰의 본전을 뽑겠다는 듯이
나는 어제 새벽 바다를, 와이프는 오늘 아침 바다를
보고왔다. 이러면 본전 뽑았지 뭐.
와이프는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가
일출을 보고, 사진을 찍고, 커피를 내려
모닝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고 했다.
아직 침대에서 눈을 부비는 딸에게
일출사진을 보여주면서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또또야, 속초 일출 제대로 찍었지?
어제 또또가 가르쳐준 날짜, 시간 딱 넣었어?
어때? 어때, 어때?"
"오오~~ 시간대별로 나오네...
이쁘다!"
한여름 새벽, 동해 바다에서 뜨는 아침해가
저 멀리에서부터 정확하게 시선을 잡아끌었다.
대단한 등장감, 등장만으로 부여되는 수많은 의미.
정말 태양, 해만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거기에 날짜의 의미까지 붙으면 상징이 된다.
나도 누워서 사진을 보며 슬쩍 미안해졌다.
그래도 여행 와서 한번쯤 일어나서 같이 나가줬으면
와이프도 좋아했을텐데... 아닌가, 혼자만의 시간이
오히려 더 좋았으려나?...
"아고 잘 했어. 아침에 산책도 하고, 일출도 보고...
알차게 보냈네..."
와이프를 토닥토닥 칭찬했다.
"그리고, 오빠, 내가 하나 결심했어"
"뭐?"
"오빠, 또또야, 우리 속초에서 1박을 더 하자!
하루 더 놀고, 내일 가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그래서 회사에 내일까지 휴가 하루 더 낸다고 했고,
숙소도 보니까 아무 데나 잡으면 될 거 같아.
아버지 병원도 엄마에게 전화해봤더니
오늘 안 가봐도 될 거 같고..."
"ㅎㅎㅎ 또..."
잠든새 결정해버린 와이프의 즉흥성과 추진력에
나와 딸은 익숙한 듯 또 웃었다. 이번에는 시트콤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실현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대비했던 티가 났다. 그리고는 춘천 사시는
우리 부모님을 속초로 오시라고 해서 하루 같이 보내면
어떨까? 등등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있다. 이럴 때는
거의 100% 와이프 텐션의 폭주를 자제시켜줘야한다.
"워~ 워~"
누운 채 우영우의 제스쳐를 취하는 아빠의 뉘앙스를
눈치챈 또또는 아침부터 한 방 가득 웃음소리를 채워주었다.
"암튼, 자 오늘 속초여행 시작, 시작~
그리고 엄마가 산책을 하면서 오늘 동선을 좀 짜봤거든.
오빠, 여기 옆에가 바로 갯배 타는 데야.
우리 오늘 아바이 마을 가려고 했잖아.
봤더니 여기가 갯배 타는 데야."
"어? 그래? 왜, 여기가?"
오늘의 첫 동선은 갯배 체험과 아바이 마을 순대.
와이프 말대로 숙소 바로 옆이 갯배 타는 곳이었다.
매번 반대편에서 이쪽편으로 건너왔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길로 들어와 새로운 숙소를 얻었더니
이쪽편이었던 것, 방향감각을 상실한 것.
패키지 여행 가면 가이드 깃발만 따라가다가
나중에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
그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갯배를 타러 가는 길은 말 그대로 낯설었다.
'여기가 원래 이랬나?'
아니, 예전에 갯배 탈 때는 시내에서 배 타고
외진 곳에 들러 생선구이를 먹는 느낌이었는데,
알고보니 그건 그냥 시야 좁은 선입견이었다.
배 타고 내리면 무조건 섬인 줄 아는 선입견 ㅠㅠ
시내냐 외지냐 기준으로만 보면 시청, 시장이
이 쪽이 더 가까우니 오히려 거꾸로였던 셈.
여행을 겉핥기로만 한 것이 들킨 느낌이었다.
하지만 매표소는 저쪽인데… 쩝...
위치 뿐만 아니라, 갯배 주변의 뷰가 예전과 달랐다.
속초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예전에 느꼈던
바닷가로 여행왔다는 느낌을 주는 뷰가 아니었다.
'우와, 정말 이렇게 바뀌었구나' 느낌이 들 정도로
세련되고 웅장한 시내 뷰를 보여주고 있었다.
속초가 이렇게 바뀔 정도로 우리가 안 왔었나 싶었다.
예전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당연히 불가능하고, 속초에 살지도 않으면서
그러길 바란다면 그건 이기적이기까지 하다. 오히려
속초의 모습이 하나 둘 바뀌고 변해가는 모습이
나의 시간과 함께 맞춰가다가 잠시 놓친 사이가
느껴져서 어색한 거리감이 잠시 들었을 뿐.
아무튼, 나와 딸에게 갯배는 처음 아닌 처음 느낌.
속초 곳곳에 대한 정확한 기억이 없었던 딸도
갯배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도 예전에
왔을 때 스스로 한번 해봤던 기억이 나는 듯 했다.
갯배를 타는 시간은 아주 짧지만,
이렇게 아이들에게 강렬한 기억을 준다.
몸소 채를 잡고 쇠줄을 끌어본 경험이 만드는 임팩트.
눈으로 보는 것과 몸으로 하는 것은
기억의 차이를 크게 만든다.
“또또야, 오늘도 한 번 해봐.”
내가 시작부터 조르기 시작했다.
"아니이~~ 오늘은 안 할래. 넘 더워… "
"근데, 저게 아저씨가 힘을 줘야 움직이는 거야?"
"음… 그런 셈이지.
양쪽에 줄을 잡아두고 왔다 갔다 하니까.
당기고 밀어서 움직이니까."
"아… "
"아참 그럼 또또야,
이 갯배는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배 아냐?"
"우리가 생각하는 배는 물 위에 떠서 목적지까지
가는 거잖아. 버스나 차도 서있기만 하면 차가 아니고,
바퀴를 굴려서 목적지까지 가야지 차라고 하잖아?
그러면 갯배는 배에 뜨기만 하고,
스스로 움직이지는 못하잖아.
자 그러면 우리 또또 생각에,
이 갯배는 배라고 부를 수 있을까, 없을까?"
사실, 나도 생각해본 적 별로 없는 질문을
여행내내 계속 던지고 있다.
착착 받아먹는 딸의 기특함 덕분에…
이 질문에 대한 또또의 대답은….?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