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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Oct 30. 2024

호객 행위가 득일까, 실일까?

여행 4일차 -2 @ 속초 아바이마을

확 달라진 풍경에, 확 달라진 출발지점에서 

확 달라진 시선이 되어 질문을 던졌다. 

확 달라진 관점으로 답할 수 있을까? 


"아빠느~~은 갯배는 배지."

 

"왜?"

 

"이미 배라고 부르고 있잖아 ㅋㅋㅋ"

 

"ㅎㅎㅎ 아니 글치 글치... 

근데, 아빠 설명 들었잖아. 배의 조건? 뭐 이런 거지..."

 

"또또는… 배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 

목적지까지 가는 배도 사람이 조종하잖아. 

이것도 사람이 조종하는 거잖아?

조종법이 달라도, 똑같이 사람이 하잖아. 


아니 그리고 아빠!

내가 배가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이 다 배라고 부르는데 뭐...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


아... 한 방 제대로 먹었다. 

이쯤 되면 우문현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 위에 뜨는 것만으로 ‘배’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이 질문을 생각해냈다는 것만으로 스스로 우쭐했다가, 

조종 방법이 다를 뿐, 사람이 조정해서 가는 배라는, 

일종의 개념 정리는 머릿속에 담고 있지 않았던 대답. 

그것이 정답이든 아니든, 철학이든 개똥이든 

나름대로 제 생각을 대답하고 있다. 


"또또, 굿!!"

 

"우리 딸, 똑쟁이! 

너무 X 너무 X 너무 X 너무 똑똑한데…."


엄빠의 호들갑 쏟아지자, 또또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아빠 닮아서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는 스타일.

이를 아는 엄빠의 칭찬은 가끔씩 도가 지나치기도... 


익숙한 매표소의 낯선 건너편에서 갯배를 탔다. 

갯배를 끄는 아저씨의 모습을 관람(?)했다.  


"또또도 한 번 해 봐~"


또또는 우물쭈물, 몸을 반쯤 아빠 뒤에 숨긴 채 내렸다.

갯배의 추억을 노래하는 시화와 벽화들을 보았다.

‘가을 동화’를 알지 못하는 딸에게는 

'저게 뭔지, 왜 있는지' 몰라 의아한 동상도 지나쳤다. 


늦게 일어난 지라 바로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 

메뉴는 어제부터 이미 아바이마을 순대였다. 

'00 골목의 경제학'을 다시 떠오르게 만드는 골목.

아바이마을 역시 예전과는 많이 바뀌었다. 

건물 층수는 높아졌고, 마을은 넓어졌으며, 

오래된 가게와 새로 단장한 가게가 섞여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놀라면서도 가게를 고민했다. 


"드시고 가세요" 

"잘 해드려요"

"이 동네 다 똑같아요"


대부분의 식당은 한 분씩 나와서 지나가는 행인들을

손으로, 말로 부르고 있었다. 호객 행위 중. 

부담을 느끼는 나와 딸은 왔다 갔다 조차 힘들다. 

일단 부리나케 한 집을 택했다. 선택기준은 단 하나, 

‘호객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보고….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던 와이프가 배가 고파 

순대부터 허겁지겁 주문했다. 


"또또야, 여기 아바이마을 설명이 있네."


메뉴판 뒤에 아바이마을 설명문을 함께 읽었다. 


"이 곳 아바이마을은 이북에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게 되면서 붙은 이름으로, 

아저씨를 부르는 '아바이~' 소리가 많이 들린다 하여 

아바이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대...

또또야, 여기 모르는 단어 있어?"

 

"월남? 실향?"


"엇? 월남 몰라? 월남이 뭐야?"

 

"월남? 월남쌈?"

 

"ㅎㅎㅎㅎㅎ"


안생 2회차 같은 기특한 대답을 내놓다가도 

이럴 때 보면 영락없이 책 덜 읽는 어린아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또또가 책을 안 읽어서…’라고 

잔소리를 시작하려는 엄마. 경험삼, 이럴 때는 빨리 

화제를 돌려 기분 저하를 막아야 한다, 여행 중에는 더. 


"월은 뭘 넘어갈 때 월, 남은 남쪽 남… 

그러니까 남쪽으로 삼팔선을 넘어서 왔다는 거지. 

오다가 삼팔선 휴게소 봤지? 전쟁이 나니까 

북쪽에서 남쪽으로 넘어왔다는 거야. 


그리고, 실향민. 잃을 실, 고향 향. 

고향을 읽어버린 사람들이 된 거야. 

고향인 북쪽으로 못 가고, 속초에서 모여 살게 된 거지. 

북한 사투리가 배어있으니까 옆 집 아저씨들에게 

모두 '아바이~', '아바이 동무~' 하다 보니까 

저기는 "아버이~"소리가 많이 나는 마을, 

아바이들이 사는 마을, '아바이 마을'이 된 거겠지." 


월남쌈? 의 재미만 남기고, 엄마의 잔소리를 지우려는 

아빠의 속사포 설명. 다행히 잘 넘어갔다. 

식당 벽면을 가득 채운 순대 설명도 함께 읽고, 

오징어순대, 아바이 순대, 순댓국을 모두 싸악 비웠다.

전국 각지에 지역 명물 순대가 있지만, 

이렇게 꼬박꼬박 찾아가서 먹는 곳은 속초 뿐인 듯.

그럴 정도로 갯배-아바이마을-순대는 세트메뉴 같다. 


하이고... 소리가 절로 나오게 연일 배 터지게 먹는다. 

배를 두드리며 나오는 길에도 호객행위는 여전하다. 


"또또야, 또또도 여기저기서 오라 그러는 거 싫지?"

 

"응… 아니, 자꾸 들어오라고 그러면 못 쳐다봐"


"아이고 둘이 똑같아, 아주 그냥…." 


엄마의 타박에도 아빠와 딸은 그러려니... 했다. 

어쩔티비 ㅋㅋㅋ 같은 태세를 취할 수밖에... 


"또또야, 호객행위도 골목마다 규칙이 있대. 

선을 딱딱 그어서 자기 집 앞에서만 말을 건넬 수 있다,

다른 집 흉은 보면 안 된다, 

말만 할 수 있고 몸을 잡으면 안 된다 등

그런 거 없으면 어떤 데는 싸움 날지도 몰라 ㅋㅋㅋ"


"아 진짜? ㅎㅎㅎㅎ 학교 같애." 


학교 교칙과 비슷하게, 

아님 친구들끼리 약속 비슷하게

골목 규칙 같은 것이 있다는 게, 또또는 새로운가 보다. 


"그래서, 또또야, 우리는 ‘호객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적힌 집에 들어갔잖아. 거기 사람 많았잖아."


"응, 우리 나올 때 대기줄 있었어..."


"어떤 집은 가만히 있어도 대기줄을 서 있는데, 

어떤 집은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계속해도 

사람이 안 들어가잖아… 왜 그럴까? 

왜 그런 거 같아?"


또또가 답하기 어려운 문제일 수도, 

아니면 가게 선택에 또또만의 기준이 있을지도…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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