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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봄 Oct 28. 2024

새벽 출항, 어떻게 보이나요...

여행 3일차 -5 @ 속초 UH플랫

'무전여행'이라는 단어로

또또와의 이런 차이를 느끼게 될지 몰랐다. 


"자, 정답은?" 


"아…. 폰?" 

딸은 대답에 자신이 없다. 


"폰? 왜? 왜 폰이라 생각했어?" 


"무전여행이니까 폰은 전화기니까, 

옛날에는 무전여행이라 한 거 아냐?"


"ㅎㅎㅎ 전화기니까 무전여행?

그렇네, 근데 정답은 그게 아닌데... 

근데 그것도 정답이네, 아빠가 잘못했네 ㅋㅋ"


또또 입장에서는 중요한 걸 두고 온다고 하니까 

뭐가 중요한가를 기준으로 답을 골랐던 듯싶다. 

스마트폰으로 결재도 되니까 돈은 정답일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 차도 부를 수 있으니까 차도 아닌 거다. 

돈도, 차도 다 해결이 되니까 스마트폰이 정답인 셈.

딸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폰”이다. 

이걸 틀렸다고, 정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건 정답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차이다. 

무전여행의 취지가 '뭐든 되게 해 주는' 돈이 없이도 

혼자 힘으로 세상을 몸소 겪어보는 것이라 보면,

요즘 아이들에게는 ‘돈 없이 떠나는 무전여행’보다

‘전화기 없이 떠나는 무전여행’이 더 성격에 맞다.

돈 한 푼도 아무 노력 없이 벌 수 없다는 걸 알기 위해,

땀 흘려 번 돈이 값지다는 걸 알기 위해서라 해도,

'돈' 대신 '폰'이 들어가도 달라질 것이 없다. 

또또에게는 더 의미가 실감 나는 단어가 될 지도. 


어쩌면 스마트폰 없이 몇 박 며칠이든 보내보는 경험이 

아마 더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요즘 아이들에게는 돈 없고 폰 있는 경험보다, 

돈 있고 폰 없는 경험이 훨씬 더 낯설고 특별할 수도... 

식당에서 설거지를 약속하고 한 끼를 얻어먹는 낭만, 

히치하이킹을 해서 어느 트럭 기사분과 이동하며 

나누게 되는 잡담, 지방이 고향인 친구네 집에 가서 

부모님께 하룻밤 청하는 경험도, 형태는 비슷할지라도, 

요즘은 돈보다 폰이 없을 때 더 난이도가 높아질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이 없이 

내가 내 생각과 내 행동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면 더 의미 깊고 인상적인 장면들이 

더 만들어질 수도 있을 거 같다. 여행의 낯선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오고, 아무 정보 없이 내 직감으로 하는 

순간의 선택들에 좋든 싫든 감흥이 더 커지지 않을까.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딸 또또의 스마트폰까지 

함께 겹쳐서 옆에 두고, 여기 봐라 저기 봐봐 

이러면서 다닐 때가 더 많이 기억에 나지 않는가. 

'무전여행'을 '전화기 없는 여행'으로 해석해서, 

낯선 곳으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형태로 

누군가는 시도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 번졌다.

정작 나도 한 번쯤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아무튼, 만족스러운 속초 횟집 저녁식사와 

딸과의 세대차이를 새삼 느끼게 되는 대화를 

재미있게 마치고 다시 천천히 숙소로 돌아왔다.


여전히 후덥지근했지만, 가끔씩 맞는 바닷바람을

'쓰읍~' 눈 감고 음미하게 되는 속초의 여름밤, 

한 손에는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들고, 

한 손에는 딸의 손을 맞잡고 걸어 들어올 때는

마음을 툭! 하고 내려놓듯 걸음을 늦춰 버렸다. 

여행을 흐뭇하게 만들어주는 소소한 즐거움.

집에서도 가끔 이렇게 하면 되는데... 하는 깨달음. 

이내 다시 잊고 일상을 바쁘게 살게 되겠지만, 

그래도 한 번쯤 상기시켜 주는 간헐적 여행의 교훈.


바뀐 숙소에서 맞는 또 혼자만의 캔맥주 타임.

딸 또또의 재잘거림이 곤히 잠들도록 

올림픽 중계의 환호 대신 조용히 노트북을 열었다.


예전 직장을 다닐 때에도 여행 중 마지막에는 

노트북을 여는 일이 잦았다. 그 때는 무조건 메일함. 

사내 메일을 확인하며 프로젝트 진행상황이나 

팀원들에게 공유해야 할 사항 등을 체크하고, 

중요한 일은 여행지에서 컨펌을 하는 일도 다수였다. 


하지만, 퇴사 후 이직 시도를 잠시 보류하면서,

미래 FiRE족이 되기 위해 현재 할 수 있는 일들의 

진행사항을 점검하는 일이 주를 이루었다.  

FIRE족 자격증 같은 경제적 자유를 위한 주식 투자창, 

노년까지 내 삶을 풍성하게 해 줄 글쓰기, 강의 진행 등.

어느새 매일 밤 나의 루틴이 되어가고 있었다.

 

직장 생활에 있어서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여행과 업무를 분리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모두 나를 위해 쓰는 시간이자 

도구로 느껴져서 오히려 더 만족도가 높아졌다. 

퇴사 후 바뀌게 된 것들 중 하나. 


퇴사 후 진로에 대한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이 나이에 이런 걸 느낀다는 게 쪽팔리기도 하지만,

반면에, 내가 FIRE족의 최대 강점으로 꼽고 있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만족감도, 생활방식도 나름 큰 수확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 큰 성과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젯밤 마음처럼 내가 올라탄 레일 위에서 달리는 일.

퇴사에 대한 미련보다 현재에 대한 만족과 성실함이 

오늘 밤에도 세상과 나를 보는 눈을 바꾸어가길....


앉아서 보는 창 밖은 오션은 커녕 온통 검은색뿐.

밤에는 시티뷰지~를 다시 떠올리며,

굳이 창문 열고 테라스로 나가 바다를 보았다.

오션부의 최소한의 본전이라도 건지려는 듯이 ㅋㅋ 


바다 항구에 파도도 잠잠해 자고, 배들도 정박해 자고, 

세상 모두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었다 싶은 한가운데, 

배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때 시간 새벽 2시 반. 

배 몇 척이 항구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야근을 마치고 아파트 주차장으로 늦게 들어오는 

차 한 대 같은 느낌이 아니었다. 항구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듯. 이른 새벽 조업이라도 있는 걸까. 

매일 이런 걸까. 여행을 다녀도 이 시간에 볼 수 없던, 

그 배 몇 척의 움직임에 또 많은 생각이 스쳤다. 


새벽을 깨우는 움직임,

평생 근면을 배워온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좋은 의미로만 해석되는 그 단어들. 

하지만, 성실하고 근면하게 몇십 년 직장생활을 한 

나에게는 ‘고단함’으로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새벽 출항에 나선 이들은 

정말 TV 애국가 배경화면처럼 희망에 찬 눈빛일까? 

지금 나에게는 고단한 몸짓에, 원망 섞인 눈빛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왜일까? 나만 그럴까?

직장생활에 지쳤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이 투영된 걸까?

모두 잠든 새벽에 홀로 깨어나, 

무더운 열대야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출항에 나서는 씩씩하고 희망한 얼굴을 떠올리도록 

또 내 생각을 다 잡아야 하는 걸까? 


Song : 좀비 – Day6 

(작곡: Jae홍지상/ 작사 : Young K(DAY6)원필(DAY6))


어제는 어떤 날이었나
특별한 게 있었던가
떠올려 보려 하지만
별다를 건 없었던 것 같아


오늘도 똑같이 흘러가
나만 이렇게 힘들까
어떻게 견뎌야 할까
마음껏 소리쳐 울면 나아질까


Yeah we live a life
낮과 밤을 반복하면서
Yeah we live a life
뭔가 바꾸려 해도
할 수 있는 것도
가진 것도 없어 보여


I feel like I became a zombie
머리와 심장이 텅 빈
생각 없는 허수아비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Oh why


I became a zombie
난 또 걸어 정처 없이
내일도 다를 것 없이
그저 잠에 들기만을 기다리며 살아


Yeah we live a life
어둠 속에서 눈을 뜬 채로
This meaningless life
편히 쉬고 싶어도
꿈꾸고 싶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해


다 털어놓고 Wanna cry
다 내려놓고 Can I cry
마른 내 눈물을 돌려줘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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