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4일차 -3 @ 속초 아야진해변
"아빠, 우리는 뒷문으로 들어가서 잘 못 봤지만, ,
나는 들어가서 사람이 많이 없으면 나오려고 했거든.
근데 사람이 많았어. 옆집은 사람이 별로 없고...
사람이 많은 집은 들어오라고 안 하는 거 같은데…"
"또또는 사람이 많은 가게를 가는 거야?"
"응. 아빠, 내가 마라탕을 좋아하잖아?
근데 마라탕집을 가는 데만 가잖아, 알지?
처음 갈 때 손님 많은 데만 가서 그래."
"오오~ 그런 기준이 있었던 거야?"
딸은 예전부터 손님이 많은 가게만 선택해 왔단다.
"우와, 우리 또또, 일리 있어, 잘했어, 굿!!"
"아니, 어쩜 그런 거까지 다 알아?"
엄마아빠의 또 칭찬 호들갑이 벌어졌다.
그 이후 따라붙는 아빠의 설명.
"또또 말대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인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이네, 진짜루.
관광객들은 여기 여러 번 와서 이 집 저 집 비교해서
먹을 수 없으니까, 어느 집이 맛있는지를 몰라.
그런데, 여기 와서 실패하고 싶지는 않잖아?
그래서 요즘은 모두 인터넷으로 알아보는 거 같아,
그러니까, 호객행위가 필요 없지. 오히려 인터넷에
후기를 열심히 쌓아두는 거지. 이게 요즘 방법 같아.
저기 봐봐, 호객행위 하는 건 대부분 아저씨 아줌마지?
어르신들은 아직 그런 데 익숙하지 못해서 그런가 봐..."
광고쟁이 아빠가 설명하는 방식이지만, 딸은 익숙하다.
그래서 잘 알아듣는다. 또 까먹어서 그렇지만 ㅋㅋㅋ
우리는 대화를 이어가며 다시 갯배로 돌아왔다.
'선장님', 갯배도 배니까 ‘선장님’이 바뀌어 계셨다.
좀 더 유쾌하고 여유롭게 승객들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건네며 ‘운전’을 하셨다. 또또 또래의 남자애가
채를 들고 두세 번 같이 줄을 끌어당겨 주었다.
승객들이 모두 흐뭇하게 바라보는 정겨운 풍경.
"아고 잘하네, 내리지 말고 남아~잉,
이따 또 계속 배 몰아야 하니까~~"
선장님의 칭찬 어린 농담에 아이는 부끄러워했고,
부모님은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저 웃음 지었다.
정겨움에 화룡정점을 찍는 선장님의 촌철살인 농담.
노하우라는 것은 이렇게 자연스럽게 빛을 낸다.
많은 관광객 승객들 마음을 오랫동안 대해온 노하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아등바등 일을 해온 나는
저런 여유와 노하우가 사실 너무 부럽다.
"점심도 잘 먹었겠다, 우리, 해안도로 타고
동해안 일주를 쭈욱 한번 해볼까?"
어제부터는 계획에 없던 즉흥 여행이었기 때문에
올라가고 싶은 만큼 올라가다, 내리고 싶으면 내리고,
마음 가는 대로 하다가 숙소를 잡아보기로 했다.
내비게이션은 북쪽의 ‘DMZ 평화공원’으로 잡아두고,
네비 말은 무시하고, 해안도로만 고집하며 운전했다.
뜨거운 햇살이 세상 모든 색을 한 겹씩 덧씌운 듯
바다도, 산도 모두 짙은 색으로 쪄내고 있었다.
해수욕장은 이름과 모습을 바꿔가며 계속 등장했고,
인기도가 다른 듯 사람들의 북적임도 달랐다.
아야진 해수욕장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이름이 예뻐서인지, 도로가 잘 빠져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오빠, 그런 게 아니라, 여기가 원래 군사시설이라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오픈한대. 그래서 그런가 봐"
"아 그래? 그럼 지금 아니면 못 들어가나 보네?"
오늘 해수욕을 할 준비를 안 한 우리는
아야진 해수욕장 왼쪽 끝에 자리 잡은 카페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지대도 높아 뷰가 좋지 않을까.
요즘 번잡한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센스 있는 작명의 베이커리와 카페가 어찌나 많은지...
카페 이름도, 건물 구조도, 카페 컨셉도 독특했다.
먼저, 복도를 따라 올라간 좌석은 배치가 독특했다.
마치 야구장 관람석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한 곳을
바라보도록, 마치 '불멍'하듯, '바다멍'을 하게끔...
혹 어느 한적한 시간에 방문할 수 있다면,
귀에 이어폰 꽂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겠지,
마주 보지 않아도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하는 대화도
커피 향과 더불어 운치 있겠지...
그리고, 통유리로 훤히 보이는 뷰가 역시나 좋았다.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야진 해수욕장은 예뻤다.
마치 누가 일부러 나눠놓은 듯이 오른쪽은 모래밭,
왼쪽은 넓은 바위였다. 파도가 바위 위를 넘나들며
많이 깎인 바위는 마치 풀장 옆 썬배드처럼
해수욕장 옆 편의시설 같아 보였다.
저 멀리 수평선부터 한참 동안 시선을 내려야만
해안에 닿을 정도로 바다는 넓었고, 길었다. 반면에,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해안가는 좁았고, 짧았다.
'아... 바다는 드넓고, 사람의 땅은 코딱지만 하구나...'
여행을 나오면 느끼게 되는 사람의 ‘좁음’이란…
세상이 넓다는 걸 알고 살 법도 한데,
좁게 살면 더 부딪히고 더 예민해지는 걸 알면서도,
여행만 끝나면 세상 넓은 거 한 번도 못 본 것처럼
부리나케 또 그 좁아터진 공간에서 아등바등거린다.
"아빠, 근데 우리 어디까지 갈 거야?"
또또가 다음 행선지를 물었다.
"그러게, 또또는 어디까지 가고 싶어?"
"아니, 난 잘 모르는데…
더 위로 올라가는 건 재미없을 거 같아."
DMZ, 통일전망대, 김일성 별장 등 지명이 찍힌 지도를
차에서 보고 와서였나 보다. 학교 수업시간 같은 느낌.
"그쪽으로 가면 통일, 북한 뭐
이런 것들 봐야 될 거 같아서 그렇지? "
"웅…"
"맞아, 그쪽으로 가면 또또는 그런 거 한번 봐야지.
학교에서도 배울 텐데… "
"지루해."
"지루해? 학교에서 남북통일 뭐 이런 거 많이 배워?
아참, 근데 또또는 통일 찬성파야? 반대파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아무도 거부하지 못할,
반박이 금기시되는 민족의 염원을 되뇌고 있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 농도가 짙지 않다는 점을
기사를 통해 접한 바가 있었어서 문득 딸에게 물었다.
설명을 준비하지도 않고 무심코 뱉은, 설문조사 같은...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순간 또또의 생각이,
기사의 리얼한 증언이 몹시 궁금해지는 그런 것이었다.
"또또는… 음..."
여행은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