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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터부에 도전한 피자

27 [피자헛 : 피자 한 판 주세요] 편

by 그레봄 김석용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Be the Reds!" 붉은색 티셔츠 사이로,

태극기 문양의 티셔츠가 종종 눈에 띄었다.

"아니, 국기인 태극기를 티셔츠로 만들어도 돼?"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SK텔레콤 월드컵 광고 캠페인을 담당했다.

2002년 레전드급 광고 효과를 이어가기 위해

찾아낸 파격은 "애국가 응원가"였다. 역시나

"아니, 국가인 애국가를 응원가로 써도 돼?"

"원래 응원가였다고? 그래도 국가를 편곡해?..."

광고가 온에어된 날, 9시 TV 뉴스에

'애국가 응원가 논란'이라는 꼭지가 다루어졌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마다 관습적으로 꺼리는

소위 '터부'라고 하는 금기 사항이 있다.

태극기 티셔츠도, 애국가 응원가도 그랬듯이.


광고계도 역시 한국 사회의 터부를 반영할 수밖에.

유독 광고에서만 통용되는 터부도 있었다. 있었었다.


그 중 하나가, "돈"이라는 단어였다.

광고에서 '돈'이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한 금융회사 광고에서 '돈'이라는 단어가 쓰였을 때,

광고인들끼리 '와~~!' '이걸 깨네~!' 하던 기억이 난다.

그 후에도 "돈"보다는 '자금' '비용' 등을 선호한다.


정확한 가격 금액도 마찬가지.

외국에선 "120달러" 등 가격을 중심으로 기획해

내레이션이나 자막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가격을 웬만하면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500원입니다"라는 옛날 광고가 그래서 파격.


새롭고 강렬한 자극을 추구하는 광고 제작진 입장에선

이런 터부의 금기선을 살짝살짝 넘고 싶을 때가 있다.

파격이다, 반응 올 거다, 쇼크(Shock)가 생길 거다...

하지만, 자체 검열에 의해서든, 광고주에 의해서든,

파격적인 아이디어도 결국 두리뭉실해지곤 하는데,

끝까지 밀어붙인 광고를 만나게 되면... 놀랍고 부럽다!


[피자헛 : 피자 한 판 주세요] 편

만든 이 : 돌고래 유괴단/ 이성헌 외 AE/ 최민영 감독


터부를 깬 쇼크, 그 용감함에 박수를!!


카피만 자세히 살펴보면, 메뉴판을 옮겨 놓은 듯

가격 프로모션성, 정보성 메시지일 뿐인데...

피자헛. 싱글사이즈 피자를 5000원에.
미디엄 사이즈의 피자를 10000원에.
라지 사이즈의 피자를 15000원에.

지금 가까운 피자헛 매장에서 만나보세요.
"피자 한 판 주세요"/ "네."

피자 한 판이 5000원부터.
♪: 함께 즐겨요 피자헛.


광고를 본 후에는 보는 재미를 느끼면서도,

안 외워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심플하고 명확하다.

원동력은 터부와 전형성을 모조리 깨는 파격,

그 파격이 주는 쇼크 때문이지 않을까.


우선, '가격'과 '금액'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카피는 가격을 읽어주고, 비주얼은 지폐를 보여준다.

돈 욕심, 물욕은 없는 듯 점잔 빼면서,

'가치' 이야기를 해야지... 하는 터부를 깬다.


그리고, 지폐 속 '위인'을 꺼냈다.

역사적 위인을 희화화한다는 비난받기 좋은데,

과감하게 영상화했고, 피자 주문까지 하게 만든다.


결정적으로, 이 모든 주체가 '피자'다.

한국적인 것이 아니고, 대표적 외국 음식.

물론 음식만 보면 피자가 이제 외국 거냐 싶지만,

한국 지폐, 위인과 대비하면 딴지 걸기 좋은 소재.

마지막 징글까지도 글로벌 브랜드 피자헛을

국악풍의 사운드로 표현하고 있다.


광고인의 눈에만 보일지도 모르는 또 하나는,

음식의 '시즐(Sizzle)'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음식 광고에서 먹음직스럽게 보이도록

원료, 제품, 시식샷은 필수이자 핵심 요소인데,

이 부분을 대부분 배제하는 결정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터부를 깨고,

식품 광고의 전형성을 깬다는 것이다.

그러니 비주얼 쇼크가 오고, 눈길이 머물고,

기억에 오래 남고, 입소문을 낼 공산이 커진다.

브랜드라면 이렇게 "파격을 허하라!" 말하듯.

이런 용감함에는 박수를 보내야 한다.


파격을 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좋은 건 아니다.

왜 굳이 저렇게까지 논란을 만드나 싶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과거의 경직성을 벗어나

어떤 것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보고,

그 경계의 '선'을 살짝 넘는 것이 중요하다.

광고가 문화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앞선 제안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것을 MAYA 법칙이라 부른다.

(Most Advanced, Yet Acceptable).


본 광고의 인용이 불편하시다면,
누구든, 언제든 연락 주세요. (출처: tvc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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