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송

고소와 고소한 굴튀김

by 반항녀

내 닉네임은 아시다시피 ‘반항녀’이다.


반항녀가 된 것은 한참 삶이 버거울 때 만났던 알베르 카뮈에 빠져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반항하는 인간(L’homme revolte)에서 옴므를 펨므로 바꿔서 지었다.

L’femme_revolte. 그렇게 쓰고 있는데 한 인친님께서 ‘반항녀’라고 불러주셨고 그것이 선명하고 마음에 들어서 반항녀가 되었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는 나름 순응과 예스우먼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세계에서라도 좀 반항하며 살아보자, 그리고 이걸 시작으로 나를 위한 반항을 해보자는 의미에서 반항녀가 되었다.


이렇게 제목과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먼저 시작한 것은 결코 내가 반항의 일환으로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운동(movement)을 위해서 소송을 진행한 것이 아님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번 글에서는 지금 내가 진행하고 있는 상황을 최대한 가볍고 즐겁게 적어보려고 한다.


왜냐하면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일을 조금 가볍게 적어본다면 그것도 치유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글쓰기는 배설이다. 배설이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미 X 놈, 저런 또 X이 들을 심심찮게 만나보게 되었다. 그래서 욕도 좀 늘긴 했다.

하지만 내가 고소한 상대방은 차원이 달랐다. 어떤 사건인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마음이 정리가 된다면 따로 엮어보려고 한다.


아무튼 다시 본 내용으로 돌아가자.


정신없는 상황에서 고소를 진행했다. 내가 정말 내 정신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고소를 진행할 상황까지 가려면 진짜 바닥을 쳐야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뭐 물론 내 기준이지만.


그리고 내가 고소를 한 상대방은 지인이다. 그렇기에 분명히 내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덜 힘들고 빠르게 끊어낼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데 그게 어려웠다.


내 인생이 망가진 다음에야 고소를 진행할 수 있었다.


고소미.


고소를 하려면 우선 경찰서로 가야 했다.

경찰서로 갔다.

두근두근.


가는 길에도 이게 최선일까.


그 사람은 꼭 내가 이렇게까지 하도록 만들어야 했을까.


이때 들었던 노래는

‘르세라핌-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였다.

뭔가 나한테 힘을 주는 것 같았다.

‘I’m mess, mess, mess, mess, mess... Fearless, say yes, we don’t dress to impress.‘

공감이 안되실 수도 있지만 그 비트와 음악을 따라 부르고 있으면 힘이 난다. 악을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은 힘


뭔가 큰 일을 해야 하는데 두려움이 앞선다면 한번 들어보시라.





경찰서에 가서 담당 수사실에 들어갔다.

종이 한 장을 주면서 고소장을 작성하라고 하더라.

간단히 쓰면 된다고 해서 정말 간단히 썼다.


’ 저는 ***을 ***, ***으로 고소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뒤늦게 알고 보니 고소장은 중요한 것이었다. 이때 약간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무지가 죄인걸 어쩌겠나. 배워가며 하는 거지. 허허

아무튼 나는 원래도 주장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수사관께서 ’ 이건 왜 이랬습니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해가 안 됩니다.‘라고 말을 하면 나는 ’아.. 그러게요.. 저도 제삼자였으면 이해를 못 했을 것 같긴 합니다..‘라고 오히려 경찰수사관님께 공감을 해주고 있었다. 차차 기가 죽어갔다..


여긴 어디.. 난.. 누구..

그리고 내 기준 증거자료로 중요하다 싶은 걸 20장을 뽑아갔는데 3장만 남기고 폐기를 하신다고 한다..

왜애..

자책이 +1, 자신감이 –3 되었다.


나는 분명 피해자로 진술을 하러 갔는데.. 왜 취조를 받는 기분일까..


자료가 부족해서 2차 진술을 하러 가게 되었는데 그때는 내가 정말 존경해 마지않는 직장동료 분께서 동행해 주셨다. 하지만 변호사만 취조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또 하나를 배웠다.


그래서 함께 동행해 주신 동료분께서는 무려 3시간을 차 안에서 대기해 주셨다.

(여러분 나 이렇게 사랑받아요.. 그리고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


그렇게 동료분께서 동행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사관님의 기에 눌려 쭈구리가 됐다.

내가 하는 말마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문제일까 그가 문제일까.

하지만 공감능력이 뛰어난 나는 ’ 그래, 수사는 공정하게 해야 하니까.‘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수사관님을 이해함에도 불구하고 침울한 기분, 패배의 기분, 자책의 오라는 지울 수 없었다.


아무래도 혼자서는 사건을 진행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변호사님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다.


나는 증거는 넘치고 넘쳤다. 다만 그것을 정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뿐..


변호사님과 만나 사건에 대해 말씀드리고 증거자료를 왕창 넘겨드렸다.


이때 정말 변호사님이 극한직업이라는 것과 작문의 천재라는 것을 느꼈다.

내가 드린 말씀과 증거를 조합해 내가 주장하고 싶은 피해사실을 무려 55장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주신 것이다.


기세가 +5 됐다. 그래! 이거야! 내가 이렇게 피해를 입었다고!!

내가 그 피해로 정신과 약을 그렇게나 먹고 지냈다고!!


그리고 변호사님과 담당 수사관님과 일정을 조율해서 진술을 하러 갔다.

말재주가 없는 내 옆에서 변호사님이 든든한 힘이 돼주셨다.. 감격..


나의 줏대(?)가 휘청거릴 때마다 옆에서 변호사님이 그 줏대를 다시 빳빳이 세워주셨다.


한번 조사를 하면 최소 3~4시간은 했던 것 같다.


지금 경찰조사는 시간이 꽤 흘러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와중에 경찰서 내에 인사할 수 있는 다른 경찰관님이 생겨서 약간 자랑스러움도 느낄 수 있었다.


최종 조사 이후 3개월 정도 흘렀던가.


집으로 경찰서 조사결과가 날아왔다.


고소내용 8건 중 3건 송치, 5건 불송치.


이런 결과가 나왔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화가 나려다가 식었다. 너무 힘들어서.

왜냐하면 다른 곳과도 조사를 하느라 남은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님은 이런 결과를 보시곤 이의신청을 하면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피의자로부터 합의 요청이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이와 함께 자필반성문을 제출하고 싶단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벌써 합의? 개뿔!!


변호사님도 지금은 합의해 줄 때가 아니라며 두라고 했다.


그리고 또 3개월.. 검찰로 송치되고는 검찰청에서도 연락이 없었다.

그래도 사건이 진행 중이라는 건 ’ 형사사법포털‘에 내 이름과 사건번호를 검색하며 인지할 수 있었다.


많이 답답했지만 이렇게 어플에서 내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좀 놓였다..


그러다 어느 날 드디어.. 검찰에 추가진술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드디어 티비에서만 보던 ’ 검찰출두(?)‘인가.


출두룩은 올블랙이지.


그리고 얼굴은 최대한 창백하게.

(사실 너무 힘들어서 창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옷을 고를 힘도 없었다.)


과연 검찰청은 어떤 곳일까 하며 기대반, 두려움반으로 찾아갔다.


티비에서 보던 삐까뻔쩍한 곳이 나올 줄 알았는데..

우리 회사보다 오래된 건물은 처음 봤다.

화장실은 철문에 하얀 페인트.

대단하신 검사님들이 이런 곳에서 일하신다니..

내가 회사로 불평할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렇게 긴장하며 검사실로 들어갔다.

수사관님은 매우 예리한 눈빛을 소지하고 계셨다.

검사님은 처음에 얼굴도 못 봤다.

하지만 듣고 계신다고 하셔서 티비에서처럼 유리벽 뒤에서 보고 있으려나 싶었는데 사무실이 너무 그냥 사무실이어서 책상 밑에 마이크라도 달린 줄 알았다.

호기심 많은 나는 이 비밀을 끝까지 몰랐더라면 나갈 때 주책맞게 질문을 했을 것이다.


'저..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마이크는 어디 달렸어요?'

그렇게 수사관님, 변호사님과 사실관계를 맞춰가며 진술을 했다.

솔직히 소송을 진행할 정도의 일이면 꺼내고 싶지 않을 수밖에 없다. 기억하기도 싫다.

그런데 그 모든 증거와 사건의 흐름을 다시 다 꺼내야 했다.

좀 많이 괴로웠다. 이게 시간이 꽤 흐른뒤라 더 괴로운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물어가는 상처를 다시 후벼 파기!!!!!!!!!!!!!!!!!!!!!!!!!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려나?’ 하는 중에 머리끄댕이를 붙잡혀 다시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찌저찌 몇 시간 동안 끔찍한 기억들을 랩 하듯 쏟아놓고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내 딜리버리의 문제인지 수사관님은 변호사님과 다시 정리를 하시곤 했다.


그리고 자료작성이 끝나고 검사님 하고 이야기를 하란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하나? 했는데 알고 보니 옆자리에 앉아계셨던 분이셨다.


Real Analog.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로 사건을 듣고 계셨다. 맨귀로. 좀 충격적이었다.

많이 충격이었다 사실.


그리고 운 좋게도 수사관님이 매우 꼼꼼하신 분이셔서 한번 더 진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운 좋게.. 도.. 그래서 날을 잡고 하루종일 하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진술하는 날. 바로 오늘 01.29.. (따끈따끈한 이야기다.)

오늘도 출두룩으로 올블랙을 입고 갔다. 가방도 까만색. 그리고 머리는 단정히 묶어주었다.

수사내용보다도 체력소진이 더 무서웠다. 진술을 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오래된 기억의 퍼즐을 맞춰가며 필요한 증거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하며, 또 말을 조리 있게 해야 빨리 끝난다는 사실과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시켜줘야 하는 일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으-악

2시간의 오전 진술을 마치고 변호사님과 검찰청 주변 식당으로 갔다.

변호사님이 그래도 법조계 사람이시니 검찰청 주변 맛집을 알고 계시지 않을까 기대를 했건만..

이런 내 기대를 느끼셨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변명부터 하셨다.


변호사들은 A지역과 B지역에 모여있어서 검찰청 주변에서 밥 먹을 일이 별로 없어서 식당을 잘 모른다고..


그래도 우리 대단하신 변호사님께 좋은 밥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 메뉴 고르기 토쓰‘를 시전 했다.


다행히 변호사님은 결정장애가 없으셨다.


’ 굴국밥과 굴튀김‘

하. 정말 맛있었다. 적당한 감칠맛과 추운 날의 뜨끈함. 그리고 굴튀김은 겉바속촉에 고소하기까지..


역시 고소한 게 최고야!


변호사님은 호리호리하셔서 많이 안 드실 줄 알았는데 뚝배기를 세워서까지, 내가 숟가락을 내려놓은 뒤에도 끝까지 드셨다.

괜히 뿌듯했다.

소식좌 같았는데 이렇게 맛있게 드시구나..


나와서도 맛있다고 한 말씀하셨다.

평소에 사담을 많이 안 나눴는데 굴하나로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오후에도 몇 시간의 진술을 했지만 나는 소송의 마무리를 뜨끈한 굴국밥과 굴튀김으로 하려고 한다.


부산 사시는 분이 검찰청 가실 일이 있다면 검찰청에서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나오는 굴국밥집을 꼭 가셔주셔라.


최. 고. 다.

keyword
이전 04화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