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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4개 22만원

by 반항녀

나에게는 4개의 문신이 있다.


문신을 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데 나는 그 용기를 만들기 위해 많은 것을 모았다.


학창 시절 모범생으로 살았다고 생각하기

남들이 나를 약하게 본다고 착각하기

(앞의 글을 보면 나는 삥을 꽤 뜯겼기 때문에 강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

여태 내 마음대로 살지 못했다고 착각하기

인생은 한번뿐, 쾌락주의자로 살겠다고 다짐하기

착한 친구들을 우정이라는 명목하에 같이 우정문신하게 만들기


첫 문신의 시작은 친구들과의 우정문신이었다.

중학교 동창으로 구성된 5명의 무리, 중학교에서 나름(we칭, We + 자칭) 네임드 무리.. 그냥 모여 다니는 걸로 네임드.. 일진도 이진도 아니고 모여서 홍삼게임하고 살구놀이하는 그런 무리.. 를 몸에 새겨보자는 것으로 친구들을 꼬셨다.


’ 우리의 우정도 어느덧 10년이 넘어가는데 몸에 우리 우정 하나정도는 새겨봐야 하지 않겠니?‘


착한 나의 친구들은 머리를 맞대고 어떤 문신을 할까 의논을 했다. 그리고 나온 결과.


4/5

우리는 다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남은 4명이 같이 있자고 생각하자는 의미, 그리고 1을 만드는 것은 나 자신. 그래서 4/5.


4/5를 그 자체로 넣기는 좀 그래서 디자인도 해보았다.

아래 사진처럼.

나는 문신을 정말 하고 싶었지만 간이 생각보다 작아서 보이면서도 안 보이는 곳에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곳은 발 뒤꿈치. 뮬을 신으면 문신이 보이고 구두나 운동화, 양말을 신으면 안 보인다. 그렇게 소심하게 가리려면 가리겠다는 의지로 발 뒤꿈치에 새겼다.


가격은 5만 원. 사이즈별로 가격이 달라서 5만 원 선에서 가장 크게 할 수 있는 사이즈로 했다.

간이 작은 만큼 예산도 적었다.


그래도 몸에 새기는 거라 통증이 좀 두렵긴 했다.

내가 받자고 했으면서 긴장을 너무 해서 내가 친구들 중에 얼굴이 제일 하얗게 질렸다. 거의 혼절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5만 원짜리 문신은 시간이 짧은 만큼 큰 통증은 없었다..


다음 문신은 취업준비를 하면서 멘탈이 터져서 추진한 타투였다. 한참 힘들 때였는데 대학친구 중 한 명이 ’ 럭키벨라‘라고 불러주곤 했다. 나는 이 별명을 힘들 때마다 속으로 불러댔는데 그 별명이 생기고 나서 뭔갈 할 때마다 잘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마법주문 같은 별명을 새기기로 마음먹었다. 영어로 luckybella.


이번에는 조금 과감하게 허리에 새겨보자!! 해서 허리에 새겼다. 하지만 사람들이 바로 알아보는 건 싫기 때문에 필기체로.


이때도 5만 원.


타투이스트 언니가 재방문이라며 할인을 해줘서 아래 사진의 길이처럼 꽤 길게 할 수 있었다.


쭈그려 앉으면 허리에 새긴 문신이 공개가 되는데(바지가 조금 내려가기 때문에) 서면에서 기싸움을 하게 되면 등을 내어주며 쪼그려 앉으면 나름 기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밑위가 짧은 여름바지를 입고 간 상태에서 문신을 했는데 요즘 청바지는 밑위가 길다. 그리고 비키니를 입어도 뱃살 때문에 뱃살까지 올라오는 수영복을 입어야 해서 보여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쪼그려 앉아도 보이지 않고, 엉덩이에 주사 맞을 때 간호사님한테나 보여드릴 수 있었다.

초반에는 내 문신을 보고 간호사님이 쫄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생각을 한 내 자신이 수치스럽다.


최근에 유행했던 그 골반까지 오는 바지가 그때 유행이었다면 간이 작아서 엉덩이에다가 했을지도 모르겠긴 하다. 참 보여는 주고 싶고 맨날 보일 용기는 안 나고..


다음은 내 소울메이트와 서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생에는 ‘파랑새로 태어나자’라고 얘기를 하고선 충동적으로 한 파랑새타투다. 이건 칼라타투여서 돈을 조금 더 썼다. 6만 원.

이것 역시 내 간이 좀 작아서 보일 듯 말듯하게 팔꿈치 안쪽에 했다.

회사에서 가장 먼저 걸린 타투였는데 처음에는 누가 팔에 뭐냐고 물으면 ’ 파란 볼펜이 묻었네요!‘라며 어설픈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본사에 들어갈 때는 발뒤꿈치 타투와 팔꿈치타투에 밴드를 붙이고 들어갔다.


이럴 거면 타투 왜 했냐.


마지막 타투는 엉겁결에 했다. 다른 친구가 자기랑도 타투하러 가자고 했다. 거절을 하지 못했다. 도안을 생각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그걸 새겨보자 하고 생각하다가 ’ 바다!, 파도!!!‘가 되었다.

이것도 안 보이게 해야 지하 고는 어깨에 새겼다.

이것 역시 칼라타투여서 6만 원.


어깨에서 파도가 흘러내려오도록 하고 싶었으나 그러면 초과금이 있다고 해서 짧게 끊었다.


이때는 조금 하고 많이 걱정이 됐었다.


내가 만약 오프숄더로 돼있는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하객들한테 내 문신이 공개될 거라는 사실이 두려웠다.


아무튼 이렇게 4개의 타투를 하고 나니 마흔 살의 나에게 이런 그림들이 어울릴까 싶었다.


그 걱정은 40살 되면 문신 지울 돈이 생기겠지!! 하면서 지워버렸다.


타투를 한 당시에 나는 가족들과 살고 있었기 때문에 좀 많이 무서웠다. 하지만 그 유명한 ‘선타투 후뚜맞’이 있지 않은가!!


이런 말이 있다는 건 다들 그렇게 한다는 거니까~~


아빠는 생각보다 쿨했고 엄마는 왜 성인이 돼서 저러나 했다. 생각보다 부모님이 쿨하게 넘어가셨다. 말로 조금 맞았지만 어릴 때처럼 청소기로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참 그랬던 것이 회사에서 누가 나를 ‘문신충’으로 소문을 냈다..

할 일도 디게 없나 보다. 총 22만 원에 문신 4개를 한 나. 문신충까지는 좀 부담스러운데 뭐. 문신애벌레정도 되지 않을까? 문신번데기?


이렇게 나는 문신으로 일탈을 했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문신을 새길 때의 고통이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 준다.’

- 반항녀


다행히 서른이 된 나는 타투를 그다지 하고픈 마음이 없다. 하지만 주변에 한번 살다 갈 거 타투나 해보라고 꼬시기는 한다. 뭐 어때. (내 몸 아니니까)


살면서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데 몸에 특별한 문신이 한 개 정도 있다면 훨씬 쉽게 집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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