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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나의 소소한 건강염려증

by 반항녀

나는 몸에 좋다는 음식을 잘 먹는 편인데 한 가지에 꽂히면 질릴 때 까지 먹는 스타일이다. 내가 꽂혔던 음식 역사에 대해 읊어보자면 먼저 양배추가 있다. 한때 업무상(?) 스트레스로 위장이 아파 유튜브로 검색을 하다가 양배추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먹을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이것저것 해먹기 시작했다.


양배추 채 썬 걸 아침에 퍼먹다가 생 양배추가 먹기가 조금 힘이 들어서 양배추 채를 썰고 옛날 토스트에 들어가는 양배추 패티처럼 계란하고 같이 구워서 먹었다. 그리고 양배추랑 계란을 같이 스크램블에그처럼 만들어서 점심 때 쌀밥대신 먹었다. 그러다가 양배추 냄새만 맡아도 되려 속이 거북한 상태가 되어 양배추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는 가지였다. 어릴 때 손도 대지 않고 실수로라도 입에 들어오면 뱉어냈던 가지에 빠지게 된 계기는 ‘가지딤섬’때문이었다. 가지로 만든 딤섬을 사회생활을 하며 먹게 되었는데 (혼자였다면 먹어볼 일이 없었을 것 같다.)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 맛이 좋았다. 그래서 집에서도 먹고 싶어서 쿠팡에서 가지를 한번에 10개씩 주문해서 먹곤 했다. 집에서 가지딤섬을 만들기에는 무리가 있어 가지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찾아보았고 그 중에 ‘가지 스테이크’가 있었는다.


가지에 칼집을 고르게 내고 버터를 두른 후라이팬에 굽는데 그 위에 간장과 굴소스로 만든 중국식 소스를 얹는다. 땡초는 필수. 그렇게 구워서 먹으면 다른 고급 요리가 필요가 없다. 가족들은 내가 만든 가지스테이크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내 입에는 너무나 잘 맞아 그걸 또 회사에 싸다니며 수시로 먹었다.


그러다 소스에 질리고 소스와 함께한 가지도 결국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가지나물은 여전히 좋아한다. 왜냐하면 주로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와 내가 질릴만큼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지를 지나 찾은 것은 병아리콩이었다. 다이어트를 생각하다 유튜브에서 ‘병아리콩 후무스’를 보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맛있다고 난리를 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쿠팡으로 주문을 했다. 병아리콩은 많이 딱딱해서 전처리가 필요한데 잘 씻어서 하루 정도 불려야한다. 이걸 만약에 전날 저녁에 까먹으면 다음날 먹기가 어렵다. 그렇게 해서 후무스를 만들어보려다가 후무스는 많은 정성이 필요한 것 같아서 (의욕은 넘치나 끈기가 없다.) 포기하고 삶아서 땅콩처럼 먹었다. 병아리콩도 밥대신 퍼먹었는데 맛이 일단 없었다. 밤맛이라고 하지만 나에겐 그냥 퍼석퍼석한 콩에 가까웠다. 양배추랑 가지랑 다르게 병아리콩은 더 맛있게 먹을 방법을 찾지 못하고 한 3일 정도 먹고 포기를 했다.

먹기 편한걸 찾아보자 해서 찾은 다음 타자는 두부였다. 순두부, 연두부, 손두부 다양한 종류의 두부를 볶음밥처럼 계란이랑 같이 으깨 후라이팬에 볶아서 먹었는데 좀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 치킨스톡을 꼭 넣었다. 흠. 지금 생각해도 속이 조금 불편한데 두부와 치킨스톡은 궁합이 그렇게 좋지는 않은 것 같다. 뭔가 밍밍하면서 인공적인 맛이 강했다. 그리고 두부는 가격이 다른 것에 비해서 조금 더 비쌌다. 이런 저런 이유로 내가 요리해 먹는 두부는 포기하게 되었다.

한동안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 아침에 누구보다 빠르게 출근해 회사 컵라면을 먹거나, 굳이 경로에 없는 맥도날드를 찾아가 유턴까지 해가며 맥모닝을 먹곤 했다. 규칙적이지 않은 아침식사로 허기만 커지고 위만 커졌다.


그러다 지인의 추천으로 당근사과주스를 먹어보게 되었다. 지인의 피부가 좋아졌다는 간증에 혹해 당근 3kg과 사과 5알을 바로 주문했다. 이왕 먹는 거 제대로 먹어보자는 생각에 또 유튜브를 켰다. 당근은 비타민을 파괴하는 성분이 있어서 사과와 당근의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데쳐서 먹어야한다고 했다. 그리고 당근에는 지용성 비타민이 많아 흡수를 시키기 위해서는 올리브유 한 숟갈도 같이 먹어야한단다. (올리브유도 바로 주문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당근을 데치고 식히고 사과를 잘라서 넣고 주스를 만들어먹기 시작했다. 지인이 당근주스를 추천해주며 달팽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해줬는데 그것을 실제로 느꼈다. 당근을 쌌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뭔가 나도 효과(?)를 보는 것 같아 당근을 더 먹고자 당근을 잘라서 회사에 싸갔다. 그냥 생 당근이라서 사무실에서 씹어먹기에는 조금 부담감이 있었는데 배고플 때 쯤 하나씩 입에 넣어서 ‘딱, 딱’ 하는 소리가 덜나기 위해 천천히 씹어먹으면 배고픔도 가시고 천천히 먹을 수 밖에 없어서 과식을 하지 않았다.


당근은 오늘 아침에도 먹었는데, 지금 내가 있는 도피처에는 믹서기가 없어서 생 당근이라도 먹어야지 하고 일어나자마자 좀 잘라서 씹어먹었다. 단맛이 나서는 안될 음식에 단맛이 나는 것을 나는 극히 혐오하는데 (익은 양파, 익은 무 등) 당근의 단맛은 내가 좋아하는 단맛에 식감도 좋다. 일단 지금 도피처 냉장고에 당근이 당장 10개 정도 있다. 매일 아침마다 먹고 또 먹어야지. 당근은 쫌 오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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