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일까, 찾은 것일까

by 반항녀

폴 오스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바움가트너>를 읽다 생각났다.


어느 순간부터, 비교적 최근부터 내가 그리는 미래상이 바뀌었다는 걸.


한 2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느끼는 완전한 어른의 나이에 들어서면 무조건 외제차, 좋은 집, 명품을 가진 사치스러운 노후를 꿈꿨다.


차는 벤츠 glc 쿠페 검은색. 집은 부산 용호동이나 광안리 부근.

나름 그려둔 그림이 있었는데 책을 통해 (진부하게 들릴 것도 같지만) 나를 찾아가면서 내가 그리는 미래가 바뀌었다.


일단 지난 사건 이후에 책을 마구잡이로 읽기 시작하고 치료를 받으면서는 먼 미래는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일시적으로 멈춰 서서 나를 챙겨야 했다.

먼 미래를 상상할수록 불안감이 커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당장의 나날들을 살아내는 것에 집중하니 행복도가 올라갔다.


여기서 사회가 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후나 미래 얘기를 하면서 불안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나는 성공 포르노가 너무 싫다! 불안감을 조장하는 시스템. 당장을 노후나 미래를 준비한다며 쫓기듯 산다 하더라도 우리의 미래가 행복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데. 그러니 나는 소소하게 가볍게 (방탕하게가 절대 아닌) 정말로 내 속의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그렇게 당장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큰 불안은 사라졌다. 그렇다고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면 그건 내 존재에 위협이 될 것 같으니 불안이라는 스위치 자체를 끈 것은 아니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조금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 멀리를 내다보니 예전에 내가 그리던 미래와 다른 모습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책을 자연이 주는 많은 것들을 느끼며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


그것이 전부라고 느껴졌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바움가트너>의 표지 같은 미래를 살고 싶다.

그러던 와중에 6천 원짜리 라떼를 한 모금 마셨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체념인가?”


현실에 부딪혀 체념한 걸, 내가 성장한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아름다운 순간에 초치는 생각 같지만, 어떤 생각이든(심지어 나 자신의 것도) 그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거니까. 의심할 수 있어야 한다. 하하.


그래도! 결국 나는 알 것 같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찾은’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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