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놀았던 여자
23살이 되고 여름 즈음에 나는 거의 매주 클럽을 갔던 것 같다.
그때는 이제 클럽복장이 정해졌다.
하늘하늘한 긴팔 티에 짧은 흰 반바지.
그래도 좀 성장했다.
당시 서면에 살고 있었고 집 10분 내외 거리에 ‘블로썸’이라는 클럽이 있었다.
그래서 이 친구 저 친구와 묶여서 클럽을 가곤 했다.
클럽에 가면 스테이지에 사람이 꽉 차있다.
그럼 그 사이로 삐집고 들어가서 스피커 쪽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 옆에는 에어컨도 있고 스피커 앞이라 노랫소리에 맞춰 심장도 둥둥 거린다.
그런 상황에서 요란한 전광판을 보고 있으면
따위의 꼭 젊음과 자유를 평소에 못 느껴본 사람같이 생각하곤 한다.
나는 춤을 잘 추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새침데기 둥실둥실로 간다.
팔짱을 끼고 전광판만 바라보면서 둥실둥실 흔드는 거다.
발바닥을 바닥에서 떼주고 해야 멋있는 춤이 나오던데 나는 발바닥은 바닥에서 안 떨어지더라.
정확히는 기억 안 나는데 여자들이 8-10시쯤 입장하면 무료테이블을 주거나 무료입장을 시켜줬었다.
그래서 일찍이 들어가는데 나는 그때도 저질체력이었다.
한 번은 대학친구와 단 둘이서 갔는데 나는 어디 구석 테이블에 엎드려서 잤다.
친구는 지하철을 타고 귀가를 해야 하는데 첫차 뜰 때까지 춤을 출 수 있는 대단한 체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클럽에서 아무도 내 수면의 자유를 망치지 않았다.
(남자들이 접근하지 않았다는..)
내 주 활동시간은 밤 10-12시이다.
이렇게 클럽에서 놀다가 또 한 번은 다른 친구와 단둘이 ‘감성주점’이라는 곳을 가보자 마음을 먹고는
‘어글리코요테’를 갔다.
이름도 갬성이 넘친다.
아무튼 감성주점도 웬만해서 여자들끼리 오면 테이블을 무료로 주고 술도 공짜로 주고 하는데..
친구와 내가 10시도 안 된 이른 시간에 입장하려고 했더니 테이블이 5만 원부터라고 한다.
내가 알기론 28000원인데..
아무래도 입뺀(입구뺀치) 돌려 서말 하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쭈굴쭈굴한 친구와 나는 뒤돌아 나왔다.
이 사건은 아직도 회자되곤 하는데 아무래도 우리가 옷을 잘 못 입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두 명이었으니 둘 중 누구 탓인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열심히 여기저기를 뚫고 다녔다.
또 한 번은 사촌오빠야가 서면 클럽 중 한 곳에서 일을 하는데 놀러 오라고 해서 갔다.
그 클럽이 서면 공무원학원 쪽에 있었던 일명 ’ 시소‘라고 불렸던 ’ 시크릿 소사이어티‘!!
시크릿 소사이어티는 당시 나름 쫌 수준 있는 클럽으로 느껴졌다.
마침 그때 친구의 외국인 남자친구도 같이 놀던 때라 매우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렇게 어깨가 이빠이 올라간 상태로 클럽에 들어갔다.
착한 나의 사촌오빠야는 테이블을 잡아주고 샴페인까지 준비해 줬다.
(당시 현장 사진)
나는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샴페인을 두어 잔 원샷 때리고 구토감을 느꼈다.
테이블 밑에 무슨 비닐봉지가 큰 게 여러 개 있었는데 급한 구토감으로 일단 그 비닐봉지에 먹은 것을 다 뱉어냈다.
그러곤 생각했다.
‘나 말고도 클럽에서 토하는 사람들이 꽤 있나 보다..‘
하고 친구들을 두고 이른 귀가를 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비닐은 클럽 냄새(담배, 술냄새 등)가 베지 않도록 가방이나 옷을 넣어두는 용도였다.
사촌오빠야한테 여전히 미안하다.
그러고 한 3년을 사촌오빠야를 피해 다녔다.
이렇게 나는 클럽을 열심히 다녔는데 25살 때 내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 생겼다.
내가 대외활동으로 울릉도(독도)에 가게 됐는데 그때 당시 태풍(짜미)으로 울릉도에 갇혔었다. 계획은 2박 3일이었는데 아마 5일 정도 더 갇혀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이제 동생들과 친해져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클럽 얘기가 나왔다.
그래서 이제 나는 서면이 내 나와바리였다며 허풍을 조금 넣어서 각 클럽의 특징을 쭈욱 나열하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언니는 클럽 안 갈 거 같은데? 사진 없나? 사진 보여줘 “
그때 당시에 잘 꾸미지 않았다.
아무튼 이 말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고 나는 증거사진을 찾기 위해 ‘엔드라이브‘를 뒤지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이 대화가 끊기기 전에 자연스럽게 증거사진을 보여줘야 했다.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하다 화장실에서 찍은 사진 하나를 찾아 그 친구한테 보여줬다.
참.. 그렇게 열심히 찾아서 보여준 그 사실이 왜 더 수치스러운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여자동생한테 농락을 당한 기분이다.
아무튼 이래 봬도 나 좀 놀았던 여자야~~(?)
그리고 이 외에도 그루브, 좀 뒤에 생겼던 제이엔제이슨 등 여러 군데 쏘다녔는데 서면에 지금 클럽은 없어졌다고 한다.
아 참고로 남자들의 접근은 가끔 귓속말로 ‘포카리스웨터 사러 편의점 갈래요?’하는 사람들은 있긴 했으나 겁이 워낙에 많은 나는 친구한테로 도망갔다.
음 근데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는 것도 왜 수치심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