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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항녀 May 01. 2024

재판 가는 길

견디기 위해 쓰는 글

이번 주 금요일 작년에 고소했던 스토킹 사건으로 재판이 열린다.


지금 있는 곳은 나름의 도피처이고, 재판은 부산에서 진행된다.


거의 1년을 보지 않았던 가해자를 금요일 보게 될 예정이다.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가해자는 약 한 달간 구치소에 있었다.


그는 내 상사였고, 첫 직장에서 첫 사수였다.


근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했고,


8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나를 괴롭혔다.


사실 내가 전부터 쓰고 싶었던 글이 있는데, 이 상황에서 쓰는 것이 나를 지켜준 사람들에게 힘을 빠지게 만들 것 같아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써야겠다.


오늘 글은 내 감정의 배설이다.


소화를 하지 않고, 배설하지 않고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나는 사람에게 감정의 방향이란 게 있다고 생각한다.


분노, 애정, 슬픔, 동정 같은 여러 감정들이 다양한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감정의 방향이 한 번에 한쪽으로만 향하지 않을 때 정말 고통스럽다.


예를 들면, 지금 나는 가해자에게 분노하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상사로 있었을 때, 그는 나에게 기초적인 업무와 내가 일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내 스물아홉 살 그 사건을 겪게 하면서 내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나에게 끔찍한 감정을 심어주었는데 이걸 분노라고 해야 할까, 원망? 두려움?


어쨌든 이런 식으로 감정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나를 괴롭힌다.


어떻게 가해자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냐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더욱이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던 부분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기에 안타까움도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어쩌면 지인 또는 과거 연인이었던 스토킹 피해자들이 쉽게 신고를 못하고 참아내는 부분들이 이런 감정의 방향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신고를 하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가해자들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피해자를 장악하려고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런 식으로 당했다.


본인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공포심을 주면서 조종을 하는 것이다.


글이 여러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급히 마무리해봐야겠다.


이 글은 맘에 들지 않으니 곧 지워질 듯하다.


부디 그를 마주하고 내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동정이든, 공포든, 불안함이든 감정이 극에 달해 나를 괴롭히지 않기를 소망한다.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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