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조롱하고 면죄부를 사는 '법꾸라지'와 조력자들
부의 불평등이 법치주의를 와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금과 같이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심화되어 가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더 이상 관념적이고 이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후크 교수가 제기한 '부의 불평등과 법치주의의 충돌'이라는 문제의식은 21세기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가장 어두운 그림자이다. 그는 대표적으로 '페이스북'(Facebook) 사례를 제시한다. 페이스북(지금은 'Meta')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1984-)가 2016년 미국 상원에서 "규제에 반대하지 않는다."라며 '올바른 규제'를 공언한 지 불과 5년도 되지 않아, 페이스북은 호주 정부의 새로운 법안을 철회시키기 위해 뉴스 피드 중단이라는 극단적인 압박을 가했다. 동시에 미국 워싱턴 D.C.의 로비스트들에게는 수백만 달러를 지출하며 사실상 법의 보호막을 돈으로 구입하는 행태를 보였다. 후크 교수는 이러한 거대 기업의 행위가 비록 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법의 지도 역할을 약화시켰다."라는 점에 주목하며, 어느 지점에서 부의 불평등이 법치주의에 위배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의문은 단순히 사회 정의의 문제가 아닌, 법의 공정성이 유지될 수 있는 실질적인 환경에 대한 성찰이다. 법치주의는 일반성과 공공성이라는 형식적 요소를 갖추는 것 외에도, 모든 시민이 정의에 접근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접근성'이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 법원이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다음 끼니나 집세 걱정에 시달리는 빈곤층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물질적, 정신적 자원이 결핍되어 있다. 반면, 거대 자본을 가진 부유층은 최고 수준의 법률 전문가를 동원해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다. 후크 교수는 이러한 법의 적용 방식을 비판하면서, 이러한 법 체계는 더 이상 만인을 위한 정의를 보장하지 못하며, 이는 정치철학적 반대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21세기 초반은 이러한 부의 불평등과 법치주의의 관계를 시험하는 냉혹한 무대이다. 후크 교수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인구의 가장 가난한 절반이 전체 재산의 5% 미만을 소유한 반면, 가장 부유한 10%는 55%를 소유했고, 미국에서는 이 격차가 더욱 커서 가장 가난한 절반의 인구가 보유한 재산은 겨우 2%에 불과한 반면, 상위 10분의 1은 전체 자원의 약 72%를 차지했다. 이러한 부의 집중은 현재까지도 심화하는 추세이다. OECD 통계 등을 종합하면, 대한민국 역시 부의 집중도가 심각하여 상위 10%가 전체 부의 절반을 훌쩍 넘는 수준의 자산을 보유한다. 특히 멕시코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상위 10%가 부의 80%에 육박하는 집중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법치주의가 과연 번성하고 유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부의 격차가 법치주의의 심각한 후퇴로 이어진다는 증거는 다각도로 나타난다. 경제학자 하이에크는 이러한 격차가 필연적이라고 보았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분배 결과에 대해 정의롭다거나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은 개념적 오류라고 주장했다. 시장경제는 어떤 계획이나 목적 없이 개개인의 자생적 활동을 통해 형성되는 질서이며, 시장의 결과에 국가가 재분배를 위해 개입하는 행위는 법이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법에 의한 부의 재분배 노력은 특정 계층에게만 유리한 특수법을 만들게 되므로, 법치주의의 핵심인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규칙의 지배'를 훼손하고 만다.
그러나, 후크 교수의 비판처럼, 심각한 불평등은 법치주의의 기능마저 약화시키게 된다. 자본의 힘은 입법자와 규제기관을 독점기업이 포획하도록 만들 수 있다. 이는 결국 사회적 해악을 초래하고 법이 유지해야 할 자유 시장까지 훼손하게 된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경제적 권력이 법이 집행되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2020년 미국 판사 '제드 라코프'(Jed Rakoff)는 기업 임원들은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한 기소로부터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면책되지만, 법원은 매년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실형이 선고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형사 기소의 현실적, 정치적 어려움 때문에 검찰이 부유층을 피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고 지적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비판과 전관예우 관행, 법을 잘 알면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법꾸라지"의 등장을 통해 더욱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는 문제이다. 법이 적용되는 방식, 특히 미국과 영국처럼 소송 당사자가 증거를 수집하고 선별하는 사법 제도(당사자주의)에서는 소송 결과의 질이 양측이 보유한 상대적 자원에 따라 결정된다. 부유층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최고 수준의 로펌을 고용해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고 복잡한 법률 논리를 펼치지만, 빈곤층은 제대로 된 변론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 이는 법률 시스템이 자금이나 돈 앞에서 무력해지는 세계적인 현상임과 동시에,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법치주의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법이 유지해야 할 절차적, 실질적 권리가 부의 불평등으로 인해 저하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의 불평등으로 인한 법치주의 위기는 경제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후크 교수가 쿠르드족 출신 여성 '마사 아미니'(Mahsa Amini)의 사례를 인용한 것처럼, 성별, 인종적, 종교적 등 사회적 권력의 격차 또한 법치주의를 약화시킨다. '마사 아미니' 사례는 2022년 9월, 22세 이란 여성이 히잡 착용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테헤란의 경찰에 체포된 후 구금 상태에서 사망하여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사건이다. 심하게 벌어진 사회적 권력의 격차는 자의적이고 독재적인 폐해가 만연한 위험에 사회를 노출시킨다. 아미니의 죽음이 촉발한 시위에서 한 시위자가 "그들이 당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외친 것은, 법치주의, 즉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제한하는 법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후크 교수의 생각과 같이, 법치주의는 하이에크가 주장한 것처럼 사소한 불평등은 용인할 수 있더라도, 심각한 불평등에 의해서는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밖에 없다. 부유층이 규제를 피해 처벌을 피하는 모습은 현대법의 도덕적 열망을 조롱하는 대표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결국 법치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만인을 위한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법의 형식적 완벽성을 넘어선 실질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첫째, 공적 법률 지원 시스템의 획기적인 확장이다. 국가가 빈곤층에게도 유능한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제공하여 부유층과 대등한 위치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자원과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 둘째, 규제 포획과 로비스트 활동의 투명성 및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 입법 및 규제 과정에서 기업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금전적 이익을 위한 법률 조작을 방지하는 엄격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셋째, 사법기관 인사의 독립성 확보 및 전관예우의 실질적 근절이다. 고위직 판사나 사법기관 혹은 준사법기관의 공무원이 퇴임 후 관련 업무를 수임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이 기간을 대폭적으로 최대한 늘려야 한다. 이른바 '고문'이라는 직위로 취업하는 우회적 행태를 규제할 방안이 절실하다. 이를 위반할 시 강력한 처벌이 뒤따르도록 하여 법 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법은 돈의 논리나 권력의 그림자에 무력해져서는 안 된다. 법치주의가 만인에게 정의를 보장하고, '법은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다'는 비판을 지워내기 위해서는, 법은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정의'를 담보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