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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민 Jan 28. 2024

웃는 표정을 짓습니다


웃음은 스트레스를 줄여 줍니다.

웃음은 혈액 순환을 개선합니다.

웃음은 긴장감을 완화시킵니다.

웃음은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웃음은 모두를 즐겁게 합니다.

웃음은 극복할 능력을 줍니다.

웃음은 자신감을 갖게 합니다.

웃음은 피부를 좋게 합니다.

웃음은 고통을 잊게 합니다.

웃음은 분노를 몰아냅니다.

웃음은 기억력을 높입니다.

웃음은 고민을 줄여줍니다.

웃음은 관계를 개선합니다.

웃음은 면역력을 높입니다.

웃음은 젊어지게 합니다.

웃음은 병을 치료합니다.

웃음은 복을 부릅니다.


자주 웃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자랄수록 웃음이 사라집니다.


어른이 되면서 책임과 스트레스가 늘어갑니다. 생활 속 압박이 입꼬리를 짓누릅니다.

사회적 기대, 업무 압박, 미래에 대한 걱정, 무거운 일상, 복잡한 감정, 관계의 문제, 끊임없는 생각. 세상에서 웃을 거리를 찾는 것은 또 하나의 일이 되었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를 굳이 들어가 보는 것은 즐거움을 얻기 위함입니다. 즐거우면 웃을 수 있습니다.

참기 힘든 허기에 디지털을 뒤집니다. 마치 쓰레기통을 뒤지는 거지 같습니다. 얻은 것은 몇 개의 실소와 도파민에 절여진 정신입니다.

정신 절임은 더 이상 정신으로써 기능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이 다시 웃지 못하게 합니다.






자주 짓는 표정은 얼굴이 되고 맙니다.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는 게 어른이라던데, 거울을 볼 때면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습니다.

거울의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무표정한 내가 날 바라보는 것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어색함에 고개를 숙이고 맙니다.

거울과 얼굴 중 하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웃는 표정을 지어 봅니다. 막상 웃으려 하면 어떻게 웃어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입술 끝을 말아 올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윗볼을 둥글게 뭉치고, 광대에 집중합니다.


웃는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사람들은 무표정의 내가 나인 줄 압니다. 항상 무표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무표정 뒤는 사실 무(無)표정이지 않습니다.

생각과 감정. 웃음과 눈물. 기쁨과 슬픔. 믿음과 의심. 좁은 공간치고 너무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 하나 버릴 수 없기에 공존을 택합니다. 내면은 그대로 소용돌이칩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얼굴 근육은 고장나기 직전의 기계처럼, 움직일 때마다 불안하게 떨립니다.


나의 무표정은 내가 아닙니다. 그것은 거울 속에만 있는 무서운 이웃입니다.






자주 웃으려 합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주 웃는 표정을 지으려 합니다. 더 나은 얼굴을 가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고독과 우울은 소소한 일탈이었지만, 이제는 절제하려 합니다.

웃으며 고독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웃으며 우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소유와 즐거움 뒤에는 필연적으로 상실과 슬픔이 따릅니다.

서글픈 원칙입니다.






거울 속의 나에게 묻습니다.

왜 웃지 않는지.

진정한 웃음은 무엇인지.

그것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꼭 웃으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표정은 말 없이 대답합니다.


...


웃어보려 합니다.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순간들이 삶을 채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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