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꽃물 0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옥 Nov 06. 2023

술과 이야기하다

       

                                                  

  내겐 너무 길었다.

  추석 연휴가 며칠 계속되어 밖에 나가지 않으니, 사람이 멍해지고 나태해졌다. 시간이 많을 때 미루어 두었던 책도 읽고 가슴에 담아두었던 글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못 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생각을 실천하지 않고 시간 죽이기만 하는 내가 밥버러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 글 한 편 쓰는 게 나의 원이고 숙제다. 좋은 글은 잘 읽혀야 한다는 생각이다. 글이 단숨에 읽어낼 만큼 마음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 글은 감동을 주거나 재미가 있거나 둘 중 하나 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좋은 글 쓰기가 된비알을 오르기보다 어려운데 여유로운 시간에도 무기력하게 빈둥대는 내가 실망스럽고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감정을 떨쳐내고 활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때 김치냉장고가 눈에 띄었다.

  ‘어~ 이 지독한 냄새!’

  김치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오래된 묵은 김치통을 열어보니 군내가 거실에 확 퍼진다. 소중하지도 환영받지도 못할 이 김치가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 음식쓰레기 통에 통째 들고 가서 버리고 싶었지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양심에 결국 두어 포기만 걷어내서 버리고 밑에 있는 것은 큰 솥에다 기름을 두르고 지졌다. ‘살짝 익혔으니, 김치찜이나 고등어조림을 할 때 사용하면 오래 안 끓이고 좋지.’라며 스스로 칭찬하는 주문을 걸었다. 골마지로 죽어가던 김치를 살려서 다시 김치냉장고 속에 넣고 나니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나절이 걸린 김치와의 씨름은 좀 힘들었지만, 덕분에 밥버러지 같다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움직인 김에 냉장고 이곳저곳을 살피고 정리하다가 냉장고 벽에 얌전히 기대어 있는 하얀 병을 보는 순간 ‘막걸리 한 잔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을 때는 막걸리나 맥주 등은 마시지 않았다. 소주나 양주 등을 선호했다. 공교롭게도 선호한 술들이 도수가 높아서 술이 셀 것 같지만, 젊은 시절에도 나의 주량은 석 잔이었다. 석 잔 정도는 술을 즐겼다기보다는 어울림의 끈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술과 선호하는 술의 차이점이 뭔지를 처음엔 몰랐다. 그냥 향과 목 넘김 이런 것인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발효주와 증류주의 차이였다. 중년이 지나니 목과 위에서 거센 저항을 하던 막걸리나 맥주를 마셔도 괜찮았다. 나이 듦에 음식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듯이 아마 술도 내게는 그런 듯하다.

  나에게 술을 알게 해 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명절차례나 제사를 지내고 나면 정종을 반 잔 정도 부어서 먹어보라고 하셨다. 술은 어른들 앞에서 배워야 한다면서, 술을 알게 된 덕분에 살아오면서 가끔 술과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하얀 병을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꺼냈다. 병 허리 부분에 “아바이 生 막걸리”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얼마 전 지인과 속초에 가서 아바이 순대 집에서 순대를 사는데 이 주(酒)님이 호기심을 자극해서 데리고 왔다. 나는 술의 힘을 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교류를 해준다. 한 잔을 마시면 마음을 살짝 흔들고 석 잔쯤 마시면 언어 술사가 되게 하지만 아무리 기분 좋아도 다섯 잔 이상을 마시면 술이 나를 깔아뭉갠다. 너무 가까이하기엔 위험한 그대, 주님이다.     

  지져둔 김치와 두부를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았다. 싱크대 깊숙이 들어있던 노란 양은 대접도 꺼냈다.


  양은 대접에 윗물만 따른 맑고 투명한 첫 잔의 술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괜찮아? 명절날 텅 빈 집이 허전하지.” 하며 내 몸속으로 파고들며 말을 걸었다.

 “안 괜찮아. 명절인데 그 많이 오던 택배 하나 안 오고, 전화 한 통 안 오는 적막감이 슬퍼.”


  “에이 거짓말. 택배 상자는 못 봤지만, 자식들이 다녀가고 멀리 있는 손주와 페이스톡도 했잖아. 손주 얼굴 보고 좋아서 딸은 쳐다도 안 보더니… 그리고 수많은 카톡 소리 다 들었어. 필요한 거 있으면 직접 사서 배송시켜.” 두 잔 째 술이 약간 열을 내며 핀잔을 줬다.


  “너무 속이 상해서 그래. 이런 황금시간에 나의 문학적 언어들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여름 장마 속 햇살 같은 문장 하나 빚어내지 못하고, 가슴을 울리는 다른 사람들의 빛나는 문체를 보며 질투도 나고 자괴감도 들고…”

  “너 반성 좀 해라. 이나모리 가즈오의 저서 『카르마 경영』에서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 생각으로 가득 차야 하며 피 대신 생각이 흐르게 해야 한다.’라는 말 아직 기억해? 좋아하는 말이잖아. 그렇게 하고 있어?” 투명성을 잃고 뿌옇게 변한 석 잔째 술이 귓불을 물들이며 따지듯 달려들었다.


  속에서 억누를 수 없는 뜨거움이 슬금슬금 올라와서 얼른 베란다 문을 열었다. 창밖에 있는 느티나무가 반짝이는 가을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으로 색을 빚고 있었다. 열이 난 얼굴을 바람에 맡기고 토닥거리다가 식탁으로 와서 남아있는 걸쭉한 막걸리를 조금 따라서 홀짝 했다. 머릿속이 빙빙 돌면서 생뚱맞게 어느 날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본 청년이 떠올랐다. 그 청년이 팔을 뻗어 천장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팔을 따라간 윗옷이 나풀거리면서 그의 젊은 배꼽과 골반이 반짝였다. 그 모습이 잠깐 나를 설레게 했다.

  왜? 지금 그 생각이,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쿵쾅거린다. 넉 잔의 술이 힘을 합해 몰아세운다.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뭘? 가슴이 뛴다는 것은 열정이 있다는 거야. 오해 마. 너랑 그만 놀래.”

  ‘어찌해야 그를 찾는단 말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