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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꽃물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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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Sep 20. 2023

채나물

  

                                                     

  탁탁탁 탁!     

  칼날이 박자를 맞추니 도마 위에서 순백의 하얀 동그라미가 수분을 머금은 채 가지런히 몸을 누인다. 엄마의 채나물 맛이 그리워서 무 생채를 만드는 중이다. 

  “있지, 무는 길쭉한 것보다 타원형으로 약간 둥글고 매끈하며 무거운 것이 좋아.”

  무 반찬을 좋아하는 딸이 새겨들었으면 하는 생각에 눈은 칼끝에 두고 딸을 향해 넌지시 맘을 던져본다. 

  무는 값싸고 흔하지만, 맛과 식감에서 대체 불가한 소중한 채소다. 무가 없다면 소고기 뭇국과 무 생선조림, 동치미와 깍두기, 생채나물 등등 이런 반찬들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무로 만든 반찬을 좋아하지만 그중 무 생체를 제일 좋아한다.      

  늦가을 길섶에 애잔하게 피어있던 구절초의 보랏빛이 가슬가슬 말라가면 부모님은 비탈밭에 있는 채소를 거두어들였다. 뿌리가 반쯤 땅 위로 올라와 초록으로 보이는 통통한 무와 노란 속보다 푸른 잎이 훨씬 더 많은 엉성한 배추도 뽑았다. 바지게에 한 짐 가득 채소를 지고 와서 마당 한구석에 쏟아놓는 아버지 얼굴에선 고단함에 맺혀있는 송골송골한 땀방울과 풍족함에서 오는 환한 웃음이 묻어났다. 먼저 김장거리를 다듬고 남은 무와 배추는 땅속 깊이 묻었다. 무청은 시래기를 만들기 위해 빨랫줄에 젖은 옷을 널 듯이 널어 두고 담장이며 나뭇단 위에도 척척 걸쳐 놓았다. 말린 무청은 비가 들치지 않는 뒤꼍의 처마 아래나 광속의 벽에다 주렁주렁 달아 두었다. 이것들은 봄이 올 때까지 부족한 비타민과 섬유질을 보충해주는 밑반찬의 재료로 사용했다.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작고 단단한 알뿌리는 조선무라는 이름표를 달고 무궁무진한 변신술을 부리며 많은 사람이 가난하던 그 시절에도 입맛 돋우며 밥상을 맛깔나게 하는 일등 공신이 분명했다. 


  땡감이 홍시로 변하고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계절이 되면 무가 제일 맛있다.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무생채가 밥상에 올라왔다. 엄마는 낡은 나무 도마 위에 동그랗고 납작 하게 자른 무를 가지런히 모아 놓고 가늘게 썰었다. ‘다다 다다…’ 무쇠 칼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손놀림으로 채 친 무에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과 참기름, 설탕과 깨소금을 넣었다. 매콤하면서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나게 손에 힘을 주어 조물조물 무쳤다. 새콤한 맛을 위해 식초 한 방울 쪼르르 넣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해준 무생채를 그냥 채 나물이라고 했다. 

  무는 가을무가 제일 맛있지만, 채나물은 다음 해 봄까지 수시로 밥상에 올랐다. 별 반찬 없어도 말린 무청으로 끓여낸 된장국과 뻣뻣하고 질긴 듯하지만 잘 익은 배추김치,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발 고기 조림, 그리고 갓 만들어낸 무채 나물이면 충분한 밥상이었다. 큰 양푼에 쌀보다 보리쌀이 많이 섞인 밥을 담고 채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서 동생들과 함께 먹으면 씹을 여유도 없이 목으로 꿀떡했다. 나중엔 남은 국물만 넣고 밥 비벼 먹어도 새콤달콤 입맛 다시는 엄마의 채나물이었다. 


  내가 결혼 후 엄마의 무생채가 그리워서 흉내를 내보았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엄마, 그때 그 반찬 할 때 어떻게 했어요?” 

  엄마 손맛이 그리울 땐 전화를 해서 물어본다. 하지만 전화는 엄마의 손맛까지 전달해 주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내가 해주는 무생채를 딸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딸 말처럼 유전자의 영향일까? 아니면 손맛이 늘었을까? 

  살면서 많은 것을 너무도 당연한 듯 그냥 그러려니 했다. 맛있는 채나물도 가족의 건강과 입맛까지 살피는 사랑에서 나온 맛인 것을 알지 못했다. 본래 그런 맛인 줄 알고 엄마의 정성과 노고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처럼, 소중한 것을 그때는 알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을 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월은 번개처럼 번쩍하며 지나갔다. 

  이제는 ‘엄마 그거 어떻게 해?’ 그런 전화를 할 수조차도 없다. 한평생 몸과 혼이 다 닳도록 자식을 위해 당신을 내어놓으신 엄마는 맛깔나는 채나물 만들기는 고사하고 채나물을 먹을 수도 없는 노쇠해진 몸으로 요양원에 계신다. 며칠 전 요양원에 계신 엄마를 뵙고 왔다. 엄마는 모든 고뇌를 잊은 듯 아기 같은 맑은 눈빛으로 아는 듯 모르는 듯 눈에선 잠깐 물기가 어릴 뿐 한동안 말씀이 없었다. 무쇠 칼을 호령하고 천만 가지 요술을 부리던 그 손은 마디마디 휘어지고 굽어진 그대로였다. 

  면회실 창을 비집고 들어온 오후 햇살이 갈고리 같은 엄마 손을 살포시 쓰다듬었다. 내 눈물 한 방울이 소리 없이 떨어져서 엄마 손등에서 머뭇거리는 햇살을 적시며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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