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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꽃물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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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Nov 06. 2023

술과 이야기하다

       

                                                  

  내겐 너무 길었다.

  추석 연휴가 며칠 계속되어 밖에 나가지 않으니, 사람이 멍해지고 나태해졌다. 시간이 많을 때 미루어 두었던 책도 읽고 가슴에 담아두었던 글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것도 못 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생각을 실천하지 않고 시간 죽이기만 하는 내가 밥버러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 글 한 편 쓰는 게 나의 원이고 숙제다. 좋은 글은 잘 읽혀야 한다는 생각이다. 글이 단숨에 읽어낼 만큼 마음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 글은 감동을 주거나 재미가 있거나 둘 중 하나 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좋은 글 쓰기가 된비알을 오르기보다 어려운데 여유로운 시간에도 무기력하게 빈둥대는 내가 실망스럽고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감정을 떨쳐내고 활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우선 몸을 움직여야 했다. 그때 김치냉장고가 눈에 띄었다.

  ‘어~ 이 지독한 냄새!’

  김치냉장고 속에 들어있는 오래된 묵은 김치통을 열어보니 군내가 거실에 확 퍼진다. 소중하지도 환영받지도 못할 이 김치가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동 음식쓰레기 통에 통째 들고 가서 버리고 싶었지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양심에 결국 두어 포기만 걷어내서 버리고 밑에 있는 것은 큰 솥에다 기름을 두르고 지졌다. ‘살짝 익혔으니, 김치찜이나 고등어조림을 할 때 사용하면 오래 안 끓이고 좋지.’라며 스스로 칭찬하는 주문을 걸었다. 골마지로 죽어가던 김치를 살려서 다시 김치냉장고 속에 넣고 나니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나절이 걸린 김치와의 씨름은 좀 힘들었지만, 덕분에 밥버러지 같다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움직인 김에 냉장고 이곳저곳을 살피고 정리하다가 냉장고 벽에 얌전히 기대어 있는 하얀 병을 보는 순간 ‘막걸리 한 잔 마셔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젊을 때는 막걸리나 맥주 등은 마시지 않았다. 소주나 양주 등을 선호했다. 공교롭게도 선호한 술들이 도수가 높아서 술이 셀 것 같지만, 젊은 시절에도 나의 주량은 석 잔이었다. 석 잔 정도는 술을 즐겼다기보다는 어울림의 끈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술과 선호하는 술의 차이점이 뭔지를 처음엔 몰랐다. 그냥 향과 목 넘김 이런 것인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흘러 생각해 보니 발효주와 증류주의 차이였다. 중년이 지나니 목과 위에서 거센 저항을 하던 막걸리나 맥주를 마셔도 괜찮았다. 나이 듦에 음식 선호도가 달라질 수 있듯이 아마 술도 내게는 그런 듯하다.

  나에게 술을 알게 해 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명절차례나 제사를 지내고 나면 정종을 반 잔 정도 부어서 먹어보라고 하셨다. 술은 어른들 앞에서 배워야 한다면서, 술을 알게 된 덕분에 살아오면서 가끔 술과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하얀 병을 흔들리지 않게 조심스레 꺼냈다. 병 허리 부분에 “아바이 生 막걸리”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얼마 전 지인과 속초에 가서 아바이 순대 집에서 순대를 사는데 이 주(酒)님이 호기심을 자극해서 데리고 왔다. 나는 술의 힘을 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교류를 해준다. 한 잔을 마시면 마음을 살짝 흔들고 석 잔쯤 마시면 언어 술사가 되게 하지만 아무리 기분 좋아도 다섯 잔 이상을 마시면 술이 나를 깔아뭉갠다. 너무 가까이하기엔 위험한 그대, 주님이다.     

  지져둔 김치와 두부를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았다. 싱크대 깊숙이 들어있던 노란 양은 대접도 꺼냈다.


  양은 대접에 윗물만 따른 맑고 투명한 첫 잔의 술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괜찮아? 명절날 텅 빈 집이 허전하지.” 하며 내 몸속으로 파고들며 말을 걸었다.

 “안 괜찮아. 명절인데 그 많이 오던 택배 하나 안 오고, 전화 한 통 안 오는 적막감이 슬퍼.”


  “에이 거짓말. 택배 상자는 못 봤지만, 자식들이 다녀가고 멀리 있는 손주와 페이스톡도 했잖아. 손주 얼굴 보고 좋아서 딸은 쳐다도 안 보더니… 그리고 수많은 카톡 소리 다 들었어. 필요한 거 있으면 직접 사서 배송시켜.” 두 잔 째 술이 약간 열을 내며 핀잔을 줬다.


  “너무 속이 상해서 그래. 이런 황금시간에 나의 문학적 언어들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여름 장마 속 햇살 같은 문장 하나 빚어내지 못하고, 가슴을 울리는 다른 사람들의 빛나는 문체를 보며 질투도 나고 자괴감도 들고…”

  “너 반성 좀 해라. 이나모리 가즈오의 저서 『카르마 경영』에서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 생각으로 가득 차야 하며 피 대신 생각이 흐르게 해야 한다.’라는 말 아직 기억해? 좋아하는 말이잖아. 그렇게 하고 있어?” 투명성을 잃고 뿌옇게 변한 석 잔째 술이 귓불을 물들이며 따지듯 달려들었다.


  속에서 억누를 수 없는 뜨거움이 슬금슬금 올라와서 얼른 베란다 문을 열었다. 창밖에 있는 느티나무가 반짝이는 가을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으로 색을 빚고 있었다. 열이 난 얼굴을 바람에 맡기고 토닥거리다가 식탁으로 와서 남아있는 걸쭉한 막걸리를 조금 따라서 홀짝 했다. 머릿속이 빙빙 돌면서 생뚱맞게 어느 날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본 청년이 떠올랐다. 그 청년이 팔을 뻗어 천장에 있는 손잡이를 잡고 있는데 팔을 따라간 윗옷이 나풀거리면서 그의 젊은 배꼽과 골반이 반짝였다. 그 모습이 잠깐 나를 설레게 했다.

  왜? 지금 그 생각이,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가슴이 쿵쾅거린다. 넉 잔의 술이 힘을 합해 몰아세운다.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뭘? 가슴이 뛴다는 것은 열정이 있다는 거야. 오해 마. 너랑 그만 놀래.”

  ‘어찌해야 그를 찾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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