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옥 Feb 26. 2024

외갓집

  

                                          

  여름의 끝자락, 가을빛을 담은 긴 사각형 햇살 조각이 거실로 얼굴을 들이민다. 의자에 앉아 그 안에 발을 담그고 잘 익은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무니 단물이 주룩 흐른다. 이 여유로움이 참 좋다. 

  그곳엔 지금쯤 끝물 복숭아가 그 향기를 안으로 갈무리하며 다디달게 익어 가겠지.      

  어린 시절 외갓집에 가려면 삼십 리 넘게 걸어야 했다. 우리 집에서 면 소재지가 있는 원동역까지 나가서 기찻길을 따라 걷다 보면 경부선 철길과 낙동강이 나란히 따라오고 가끔 꽤액 꽤애액 하는 기차 불통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나를 덮치고 지나갔다. 난 겁에 질려 한동안 두 귀를 틀어막고 웅크리고 있다가 다시 걷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먼 길을 초등학생이던 내가 어찌 혼자 나설 생각을 했는지, 그곳에 외가가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혼자 가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컸지만 그래도 외갓집 가는 길은 즐거웠다. 걷기 편한 철둑 옆길로 가기 위해서 사공이 없는 작은 나룻배를 동아줄을 당겨가며 샛강을 건넜고 야생화 가득한 숲길 같은 신작로도 걸었다. 외갓집 대문 앞에는 보라색 꽃이 피는 커다란 오동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나는 뽀얗게 먼지를 덮어쓰고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리곤 큰소리로 외쳤다.

  “하라버지이~.”

  “어이쿠! 우리 왜기 왔나.”

  할아버지는 방문을 활짝 열고 대청마루로 나와서 나를 반겨주셨다. 

  한나절은 걸려서 걸어온 내게 식구들은 모두‘옥이’인 내 이름을 할아버지 따라서“왜기 왔나. 우리 왜기 왔냐.”하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할아버지는 온몸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고 손을 잡고 방으로 데려가서 간식거리를 내어주셨다. 

  엄마가 초등 5학년 때까지 외가는 일본 오사카에 있었다고 한다. 해방되고 우리나라에 돌아온 가족은 외할머니 고향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할아버지는 벽에 걸린 액자 속의 짧은 머리에 양복 입은 젊은 날의 사진과는 다르게 언제나 하얀 고의적삼을 입고 있었으며(아마 내가 여름에 자주 갔기에 이렇게 기억이 나는 것 같다.) 하얀 머리를 상투 틀고 허연 수염을 목까지 닿게 기르고 계셨다. 어린 눈에 할아버지가 참 잘 생기고 멋져 보였다. 

  외삼촌은 매미와 잠자리를 잡아주거나 도랑에서 가재나 피라미 같은 물고기를 잡는 재미를 안겨주었다. 밤이 되면 이모와 개울에서 목욕도 하고 유난히 빛나는 별과 강물처럼 보이는 은하수도 보며 너럭바위에 누워 놀았다. 이모가 친구들과 나누는 연애 이야기 듣는 것도 내 귀를 쫑긋하게 했다.

  외할머니는 이야기를 참 잘하셨다. 저녁땐 메케하면서도 풀 내음 가득한 모깃불을 피워놓고 옥수수며 감자를 쪄 주면서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동화책을 접할 수 없던 나의 어린 시절, 내가 아는 이야기는 거의 외할머니께 들은 것이었다. 장화·홍련 전, 심청전, 춘향전, 콩쥐·팥쥐 같은 우리의 옛이야기뿐 아니라 피리 부는 사나이, 백설 공주 등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외가에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가슴을 만지면서 이야기를 들으면 참 좋았다. 미지의 새로운 세계를 꿈꾸고 어젠가 나에게도 백마 탄 왕자님이 찾아올 것 같은 상상도 했다. 

  어느 날 성경을 읽고 있는 할머니께 글을 언제 배웠는지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웃으면서 글을 배운 적이 없다고 하셨다. 

  “근데 어떻게 글을 읽을 수 있어요?”

  나는 배우지 않고도 글을 아는 할머니가 너무 놀라웠다. 

  할머니는 성당에 다니면서 그냥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6.25 전쟁 때 큰 외삼촌이 군에 갔는데 할머니는 그때부터 기차를 타고 먼 곳에 있는 성당에 나가셨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에 성경을 보다가 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자식 사랑과 노력이 지금 생각해도 존경스럽다.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성당에 있는 책에서 본 거라고 하셨다. 

  엄마 가슴보다 더 포근했던 할머니 품속에서 자고 나면 이모와 삼촌들이 기다린다. 햇살이 뜨거워지기 전에 복숭아를 따러 가자고 했다. 산비탈 하나가 다 복숭아밭이었던 과수원에 다가가면 멀리서부터 복숭아 향기가 퍼져 나왔다.

  아침 햇살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복숭아는 이슬로 세수한 듯 말가니 볼을 붉히고 있었다. 잘 익은 복숭아를 따서 한입 크게 ‘아삭’하고 깨물면 그 달콤함이 얼마나 맛있던지 글을 쓰는 지금도 침이 나와서 그때의 단맛과 함께 목으로 넘어간다.

  잠시 철없는 어린 손주가 되어보니 다시 올 수 없는 그때가 그리움으로 사무친다.  

작가의 이전글 배달부와 손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