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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Jan 28. 2024

오세암을 아시나요?



                                                        

  오세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구월 중순 어느 날, 강원도의 용대리를 거쳐 백담사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살짝 지나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모를 첫 길이고 산속의 오후라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백담사에서 3.5km 정도의 비교적 평탄한 산길을 걸어가면 영시암이란 암자가 있다. 이 암자를 지나 거친 오르막길을 조금 걸어가니 봉정암과 오세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산봉우리가 바위 하나로 이루어져 있기도 하고 영실천汌 계곡은 옥빛으로 찰랑거리다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물웅덩이를 만들기도 했다. 여름밤엔 전설 속의 선녀들이 내려올 것같이 아름다웠다. 태곳적부터 이어 내려왔을 깊은 산속 길을 걷노라니 형언할 수 없는 싱그러운 향내가 코끝을 간지럽히면서 빠른 발걸음을 느리게 했다. 언제 나타났는지 눈망울을 또록또록 굴리면서 바라보던 다람쥐 한 마리가 바위틈으로 쏙 들어갔다. 쭉쭉 뻗은 나무 사이로 보이는 높고 푸른 하늘이 시샘할 것 같은 땅의 위대함이다. 계곡물에 손을 씻기도 하고 잘 익은 다래 한 줌 따서 먹기도 하면서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걸었다. 서너 시간 걷다 보니 어느새 산마루에 도착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온 반대쪽을 보니 분지 모양의 산세에 아담한 전각들이 정겹게 앉아있다. 오세암이다. 저녁 노을빛을 받으며 편안하고 따스해 보였다.


  산사에 들어서니 불자佛子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에는 미미한 불심이지만 신심이 저절로 우러나왔다. 기도하는 사람이 많을 땐 앉을자리조차 없어서 밖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봉정암에 비하면 별 다섯 호텔급인 객사客舍를 안내받았다. 공양을 마치고 저녁예불을 위해 법당으로 갔다.

  비구니 스님이 예불 시작 전에 간단한 선문답을 하고선‘이 스님이 여러분을 위해 노래 한 곡 선물하겠습니다.’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오세암으로 갈까요~ 봉정암으로 갈까요? 영시암 삼거리에서~.”

  유명한 대중가요 가사를 개사해서 부르는데 스님의 청아한 목소리와 삶의 간절함이 녹아나는 그 내용이 나의 삶과 너무도 닮았다 싶어 그냥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예불을 마치고 한 곡, 법문을 마치고 또 한 곡, 저녁 기도는 노래 반 법문 반 감동으로 끝났다. 두어 시간 개인 기도를 하고 열 시부터 천일기도를 하는 스님의「천수다라니」 기도를 자정까지 함께 하고 나서야 까무룩 눈을 붙였다.

  잠결에 도량석 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3시가 조금 지났다. 새벽예불을 위해 법당으로 향하는데 수많은 별이 곧 나에게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산사의 새벽하늘이 검푸른 융단에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 황홀했다. 예불을 마치고 돌아보니 절이라곤 3배拜가 다였던 남편이 108배를 시작한다. 무엇이 남편의 신심을 끌어냈을까? 

  조금 후 스님께서 법당 청소를 하러 오셨다. 스님을 도와서 남편은 밀대로 바닥을 밀고 나는 청수를 갈았다. 이 작은 수고로움이 더없이 즐거웠다. 아침 공양을 마치고 여러 전각들을 살펴보고 참배했다.

  암자를 나서는데 스님께서 슬며시 간식 봉지를 건네주면서 만경대萬景臺 경치가 아름다우니 먹으면서 보고 가라고 하셨다.

  만경대에 올라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정말 말 그대로 만경대다. 설악의 만경대는 외설악의 화채봉 능선과 남설악 오색 만경대 그리고 이곳 내설악 오세암 만경대 3곳이라고 한다. 

  예전에 산행했었던 공룡능선과 흑선동 계곡, 나한봉 등 설악산의 절경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9월이지만 산은 벌써 오색단풍으로 자태를 뽐냈다. 설악산의 단풍이야 누구나 감탄하지만, 그 고운 빛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만경대에서 내려다보니 오세암은 하나의 암자가 아니고 그냥 설악산 일부였다. 

  법성게法性偈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일중 일체 다중일 一中 一切 多中一 

  일즉 일체 다즉일 一卽 一切 多卽一 

  (하나 속에 모두가 있고, 모두 속에 하나 있어.) 

  (하나가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이다.)     

  집으로 오면서 오세암에 대한 설화를 떠올려 보았다. 

  오세암은 백담사의 부속 암자로 신라 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해서 관음암이라고 했었다. 그러던 것이 5세 동자의 설화로 인해 오세암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그중 하나를 요약하면 관음암 스님이 부모 잃은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은 월동 준비로 장을 보러 가게 되었다. 아이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면서 “배고프면 이것을 먹고 무서우면 저 어머니(법당의 관세음 보살상)를 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보살펴주신다.” 하고는 빨리 오겠다 약속하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조금씩 흩날리던 눈이 폭설로 변해서 장을 본 스님은 암자로 갈 수가 없었다. 아래 큰 절에서 눈이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눈은 더 많이 내렸고 스님은 병이 났다. 오랜 날이 지나 눈이 그치자 스님은 몸을 추스르고 눈 속을 헤집고 암자로 갔다. 아이가 죽었으리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암자 근처에 가니 목탁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목탁을 두드리며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스님에게 아이는 “날마다 저 어머니가 와서 먹을 것도 주고 안아주고 놀아 주었다.”라고 말하면서 관세음보살상을 가리켰다고 한다. 이후 관음암은 관세음보살이 5세 아이를 살렸다고 해서 오세암五歲庵으로 이름이 바뀌고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영험한 기도 도량으로 알려졌다.      

  관음전을 참배할 때 본 오세암의 관세음보살상은 여느 절의 관음상과는 다르게 백의를 입고 있었다. 인자한 어머니 모습이나 천사 모습을 연상시키기 위함일까? 실화이든 전설이든 5세 동자처럼 순수한 믿음 하나로 마음을 다해 원하면 간절함이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많은 욕심과 거래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험한 인생길에서 가슴속에 나만의 종교 하나쯤 품고 산다면 그 종교가 힘이 되어주는 비단 주머니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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