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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옥 Nov 19. 2023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올해는 유난히 가을이 짧은듯하다.

  언제 단풍이 들었나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낙엽이 쌓이고 눈발이 희끗거리고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졌다. 그래도 왠지 아직 은 가을이라고 생각되는 이 마음은 무엇인지.

  시도 때도 없이 아파트 뜰에서 포르르 떼를 지어 다니던 참새는 다 어디로 갔을까? 푸드덕 날갯짓하며 날아와서 먹이를 찾아 종종대던 비둘기도 눈에 띄지 않고 뜰에 터 잡아 살던 고양이들마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가을인 듯한데, 늦가을인 것 같은데……      

  내게는 시동생이 딱 한 사람 있었다.

  순수하고 세상 이치에 밝지 못했지만 그래도 축구, 야구 좋아하고 공부 잘했던 막내였다. 그가 지난 시월 갑자기 이승을 떠났다. 슬픔도 아픔도 느낄 수 없을 만큼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가족들은 황망함 속에서 그를 보냈다. 

  그가 고등학생일 때 처음 형수와 시동생으로 만났다. 남편과 셋이서 단칸방에서 커다란 목화솜이불속에 나란히 발을 넣고 이야기도 나누고 같이 밥을 먹고 친동기親同氣처럼 몇 년을 함께 살기도 했었다. 그의 교복을 빨아주고 어느 날은 리포트 숙제를 해주기도 했다. 형편없는 내 실력에 다음부턴 부탁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함께 세월을 이기며 그는 대학을 졸업했다. 남편보다 먼저 ‘현대자동차’에 취직하던 날 얼마나 기쁘던지, 첫 월급을 탔다며 형수님 것이라고 분홍빛 내의 한 벌을 사 왔을 때 코끝이 찡했다.

  좀 더 잘해줄걸 언제나 지나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좀 더 잘해줄걸. 

  착하고 고운 동서 만나 아들딸 남매 낳고 잘살았는데, 운명의 신은 그를 가만두지 않고 오랫동안 마구 흔들어대더니 홀연히 그를 데리고 가버렸다.

  지난주 그를 보내는 49재 중 마지막 재가 있는 날이었다. 손주를 돌보고 있는 나는 평일이고 멀기도 해서 막 재에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그냥 보내기 너무 안타까워서 그전 일요일 날 혼자 조용히 부산을 다녀왔다.

  오후 햇살 잘 드는 따뜻한 ‘인각사’ 법당에서 그는 말없이 나를 맞아 주었다. 향 피우고 물 한잔 올리고 이제 모든 시름 놓고 잘 가라고, 편히 쉬라고 기도하면서 이승에서 맺었던 인연의 끈을 놓고 왔다.     

  사는 게 별거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사는 게 더없이 존귀하고 대단한 것으로 생각한다. 

  태어난다는 건 얼마나 경이롭고 커다란 축복인가? 한갓 미물일지라도 살아있는 건 다 소중한 생명이다. 하물며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데 순간순간이 기적이고 기다림이다. 봄의 새싹처럼 신의 뜻으로 태어나서 계절처럼 살다 가는 게 인생이 아니던가. 보통으로 사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데, 보통으로 사는 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봄은 봄답게 여름은 여름답게 인생의 계절을 잘 지내면서 사는 것이 아닐까?

  나의 피붙이들이 아니 내가 아는 모든 이들과 내가 모르는 생명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그저 보통으로 잘 살다가 겨울의 끝자락에서 생을 마치고 또 다른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를 염원한다.

  아직 인생의 마지막 계절인 겨울이 하 많이 남았는데 가을인 듯 겨울인 듯 이 쓸쓸한 인생의 계절에 떠나는 그의 삶이 너무도 야속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잣나무 가지 끝에 어젯밤 내린 눈이 앉아있다. 찬바람 한줄기 지나가니 가지 끝의 눈도 소리 없이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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