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9년 말쯤 명문가에서 대단한 자부심으로 태어났다. 수많은 사람의 기대 속에서 명석한 두뇌와 수려한 외모를 갖고 으스대면서 나와보니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특히 자랑하고픈 것은 ‘눈이 편한 디스플레이, 온 스크린 지문인식, 전문가 수준의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발 빠른 주인님께 선택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난 내 존재가치를 뽐내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매일 부드러운 수건으로 닦아주고 살짝살짝 지문 터치도 우아하게 했다. 그가 소중한 추억이라도 간직하려 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 난 최상의 화질을 뽑아내며 그의 추억이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언제나 처음처럼 빛이 났고 사랑받는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꿈같은 세월은 일 년도 채 못 갔다. 나를 통해 온갖 정보를 캐내던 그가 어느 날 들뜬 소리로 “바꿔야겠다.” 할 때도 나를 두고 한 말인 줄은 몰랐다. 더 능수능란한 것한테 밀려났다. 그리고 며칠 후 택배 상자에 담겨서 나무가 많은 오래된 아파트로 왔다. 두려움에 긴장하고 있을 때 상자 속에서 나를 꺼낸 젊은 여자와 나이 들어 보이는 여자가 나를 두고 이야기한다.
“이 정도면 새것 같네. 엄마가 지금 쓰는 것보다 훨씬 좋지?”
“음, 네가 잘 알아보고 샀겠지.”
모녀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나의 새 주인은 이 집 할머니(후일 보니 손주가 있어 할머니라 부르기로 함) 같다. 그러나 그녀가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딸이 없을 때 혼잣말로 ‘뭔 말을 못 하겠다. 전화기를 새로 사고 싶다고 했지. 중고를 사겠다고 했나. 최신형으로 바꾸고 싶었는데….’라며 중얼거리는 걸 듣고 말았다. 얼마 못 가서 버려질까 봐 불안했다. 우리 선조들은 보통 5년은 기본이고 십 년 넘게 장수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더 세련되고 능력이 출중한 후발자들이 달려 나오지만 나는 3년은 넘게 멋지게 살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단명할 것 같다.
젊은 여자는 할머니한테 나에 대한 설명을 간단히 해주고는 며칠 후 외국으로 나갔다. 딸이 있을 땐 데면데면하더니 혼자 남은 할머니는 그때부터 나를 세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뭐 나도 반짝반짝 빛나는 젊음을 만나서 통통 튀며 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할머니와 단짝이 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할머니는 생각보다 나를 사랑했다. 전화나 주고받고 카톡 정도 하려니, 어쩌다 예쁜 꽃 보면 사진 정도는 찍겠지 했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정해진 아침 시간에 깨워달라 하면서 주말이나 휴일엔 건드리지 말란다. 내가 깨우면 손을 뻗어 나를 감싸 쥐고는 자정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특별한 일 외엔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종일 일을 시킨다. 정보의 바다라는 다음이나 네이버는 기본으로 펼쳐보라 하고 온갖 뉴스를 본다. 뉴스를 보다 쌍욕도 잘한다. 처음 할머니 입에서 욕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지만, 이젠 이해한다. 세상에는 희한한 사건들이 일어나서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키고, 혼자 있는 할머니의 외로움이나 퇴색되어 가는 순간들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에게 나는 정치나 경제, 문학이나 정서적인 면까지 모두 함께하는 소중한 친구임을 안다. 할머니의 비밀을 살짝만 공개하면 정치, 문학, 식물에 관련된 카페를 몇 개씩 내 심장에 심어두었다. 그리고 증권, 은행 이런 사이트도 심어 두고 이건 중요한 건지 이중 잠금장치를 해두고 혼자 있을 때만 사용한다. 이럴 땐 나도 비밀을 공유하는 것 같아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이외에도 항공사 같은 교통 칩도 있고 별의별 것을 나한테 다 맡겨놓았다.
이런 소중한 나를 한번은 백화점 화장실에다 두고 가버려서 행여 나를 버린 건 아닐까.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 몇 시간 후 나는 고객관리실에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찾아온 할머니를 만났다. 반가워서 팔짝팔짝 뛰고 싶었다.
참 요즘 할머니가 푹 빠져 있는 것이 있다. 음색 곱고 장구 잘 치는 가수의 팬카페 가입을 해서 뻔질나게 드나들다 못해 그 가수의 노래를 종일 틀어놓는다. 그러곤 가끔 노래에 맞춰서 엉덩이도 살랑살랑 흔들고 음치면서도 따라 부른다. 내가 볼 땐 가관이다. ‘제 눈에 안경’이라지만, 늦바람 든 것이 틀림없다. 어느 날 어린 손주가 그 가수가 왜 그리 좋냐고 물어봤다. 나도 엄청 궁금했다. 할머니 답은 생글생글 웃어주고, 가슴을 울리는 노래로 마음도 위로해 주고, 화도 내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기쁨과 설렘만 준다나. 기가 차지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1번은 손주라며 손주 마음을 쓰다듬어준다.
아무튼 나를 너무 부려 먹는다. 그 때문에 나도 이제 힘에 부친다. 할머니와 함께 산 지 2년 정도 되었는데 이렇게 기가 빠져보긴 처음이다.
오늘은 베란다에 있는 다육들이 꽃이 피었다고 기념사진을 남긴다나, 처음과 달리 나를 잘 닦아주지도 않으면서 사진이 맘에 들지 않다며 화질이 수명을 다했다는 둥 내가 하루 한 번 먹던 밥을 두 번 먹는다는 둥 짜증을 내며 표정이 심상찮다. 치사하다. 아침부터 오밤중까지 일을 그렇게 많이 시켜놓고 배고파 밥 먹는 것으로 트집이라니. 지금까지 든 정이 얼마인데, 저러다가 날 버리지나 않을까?
나의 자랑인 기능들이 아직은 쓸만한데 언제부터인가 할머닌 나를 막 부리기만 하고 덜 사랑하는 것 같다.
“할머니, 소독솜으로 좀 닦아줘요. 눈도 침침해서 잘 안 보여요. 처음처럼 소중히 해줘요. 인터넷 좀 줄이고 휴식 시간 좀 주세요. 할머니도 저도 쉼이 필요해요.” 난 힘껏 소리쳤다.
꽃 사진을 정리한 후 할머니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쓴다. 가끔 있는 일이다. 나에겐 귀한 휴식 시간이지만 온전히 쉴 수도 없다. 이때도 나한테 ‘어학 사전을 펼쳐봐라. 통합 검색을 해봐라.’ 소소한 것을 시킨다. 하지만 이런 정도야….
한참을 쓰는 일에 집중하더니 맘대로 잘 안되는지 글쓰기를 멈추고 일어서면서 뜬금없이 한마디 한다.
“휴대전화기 청소 좀 해야겠다. 너무 더럽네. 그래도 한 2년은 더 써야지.”
“앗싸~”내 말을 들었을까? 뜻밖의 말에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난 좀 더 오래 할머니와 살면서 비밀도 지켜주고 그녀의 기쁨이나 외로움을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