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Begin Again)

by 박정옥



오래전 눈에 익은 연예인들이 외국의 낯선 거리에서 버스킹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악동뮤지선’의 이수현과 음악천재라 불리는 헨리도 보이고, 알엔비 가수 박정현과 내가 잘 모르는 남자들도 보였다. 그들은 연예인답지 않게 수수한 차림새에 필요한 악기 몇 가지와 마이크를 잡고 공연을 시작했다. 음악엔 별 관심이 없어도 내가 호감을 느끼고 있던 이들이라 지켜보았다. 그들은 악기를 조율하고 호흡을 맞추며 노래를 시작하려 했다.

나는 약간 긴장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아닌 외국의 지하철역 앞에서 하는 버스킹이 과연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감성이 제대로 퍼져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박정현이 영국 가수 아델의 ‘섬원 라이크 유((Someone Like You)’를 열창했다. 알엔비 가수답게 그녀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포르투갈 리스본의 바이샤-시아두 지하철역 거리에 안개처럼 퍼져나갔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들 주변은 사람들로 꽉 찼다. 박정현의 노래는 계속되고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낯선 거리의 관객들은 기꺼이 춤꾼으로 변신했다. 수현과 헨리도 함께 여러 곡을 노래하고 연주했다. 그중에 우리 가요도 있었기에 내 마음은 더욱 두근거렸다. 그곳 사람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미소 짓고 손뼉 치고 어깨를 들썩이며 따뜻한 힐링을 하는 듯했다.

박정현의 그 작고 여린 몸 어디에서 그렇게 강렬하고 호소력 짙은 소리가 울려 나와 관객들을 감동케 하는지 짜릿한 전율이 내 가슴에도 깊숙이 박혔다.

마지막 곡이 끝났는데도 사람들은 가지 않고 버티면서 우리 가수들에게 앙코르곡을 신청했다. 나는 ‘비긴 어게인’이라는 이 프로그램을 처음 보았는데 오래 여운이 남았고 거리 공연으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들이 자랑스러웠다.


‘비긴 어게인’ 다시 시작한다는 뜻이다.

미국영화 제목으로 우리에겐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래전 보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영화 내용은 음악을 통해서 가슴 뛰게 하고 희망을 품고 삶을 지속하게 하며 꿈을 되찾는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어떤 일이 잘못되었거나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서 좌절을 겪을 때 용기를 내어 새로 시작하거나 힘듦을 떨쳐내고 새로운 꿈을 가진다는 뜻도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이란 고달프고 가슴 아픈 일이 함께한다. 그 절박한 순간순간에 누군가가 가슴 찡한 노래를 들려줄 수 있고 공감하는 이야기 나누면서 그 순간을 위로할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것이다.

몇 년 전 힘든 일을 겪고 상실감에 빠져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집에만 있던 나를 친구들이 해운대로 데려갔다. 달맞이고개에서 함께 웃으며 식사하고 차 마시고 백사장까지 걸어왔을 때 어디선가 애잔한 선율이 들려왔다. 소리를 쫓아 시선을 돌려보니 초로의 남자가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기타를 치고 있었다. 그때 내 마음 한구석에서 팔딱이는 두근거림이 시작되었다. 연주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낌없는 박수로 감사함을 표했다. 그날은 친구들의 따뜻한 위로와 그 남자의 기타 소리와 해운대 바다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비긴 어게인’ 꼭 음악을 통해서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 한 줄의 글, 한 폭의 그림, 진심 어린 손길 한 번을 통해서도, 마음의 안정을 느끼며 용기를 내게 하는 따뜻함을 전할 수만 있다면.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시 노래를 불러서 희망을 주고 희망을 품을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국수 한 그릇이라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인사하는 손님을 보며 문 닫아야 할 위기에서 다시 용기 내어 장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쩜 죽음밖에 없다고 좌절하던 사람도 약간의 따뜻한 관심을 받고 사랑을, 삶을,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인데 오늘 이웃의 젊은 여자가 아파트 복도에서 뛰어내렸다. 아무도 그녀에게 따뜻한 손을 잡아주지 못한 것 같아 목이 '컥' 메었다.

- 비긴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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