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특별한 친구가 있다. 그녀를 떠올리면 구포 장에서 함께 먹었던 냄비 우동 생각이 난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입맛도 없고 나른해서 구포 장에 갔다. 구포 장은 재래시장이면서 오일장이기도 하다. 다른 지역 장사꾼들과 근처 농사짓는 사람들이 장(場)거리를 준비해서 오는 곳이라 장날은 별의별 사람이 다 모여든다.
초봄이라 쌀쌀했지만, 생동감으로 펄떡거리는 장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렸다. 난전에 나온 봄나물을 보고 있는데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니 반가운 친구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길에서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다.
“밥 안 먹었지? ”
친구가 내 손을 꼭 잡고 간 곳은 냄비 우동을 파는 곳이었다. 약간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잘 익은 굵은 면발이 담겨있고 튀김 유부와 어묵 한 조각, 반숙란과 쑥갓이 고명으로 얹혀 있었다. 후후 불며 따끈한 국물을 먼저 먹어보았다. 개운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이 쑥갓 향과 함께 내 몸속에 스며들었다. 국수 면발과는 다르게 쫄깃쫄깃하고 통통한 면이 입안 가득 포만감을 주었다. 반숙란을 조심스레 떠서 흡 하고 입속으로 빨아들이니 달걀노른자의 고소함과 촉촉함이 입안에 퍼졌다. 유부 튀김은 일반 튀김과는 사뭇 달라 고소하고 씹히는 맛이 작은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기분이 좋았다. 사실 냄비 우동을 처음 먹어본지라 그때는 유부 튀김인 줄 몰랐고 맛있는 고명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와 냄비 우동을 먹으면서 여학교 시절 추억들을 꺼내 보았다. 그렇게 고생하며 학교 다녔으면 무슨 ‘장’이나 ‘사’자 붙은 직업을 가져야 하는데…. 하면서 마주 보고 웃었다.
유별난 입덧은 하지 않았지만, 임신으로 잘 챙겨 먹지 못해 나른했는데 우동 한 냄비를 다 먹고 나니 따듯한 기운이 올라와 힘이 나는듯했다.
친구의 한자 이름을 풀이하면 봄꽃이다. 그녀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에 다녔고 중학교도 신설 여중으로 같이 갔다. 그 시절 중학교에 간 친구들이 거의 없었던 산골이라 우리는 선택받은 것 같았지만 고생을 많이 했다. 신축한 지 얼마 안 된 학교라서 운동장을 만드는 일에 수시로 동원되었다. 더 힘든 것은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타지에서 친구와 함께하는 자취생활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가려면 버스와 기차를 타고도 걸어서 20리를 더 가야 했다. 자주 오지 않는 기차를 놓치기라도 하면 철길 따라서 고향 역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굴속으로 들어갈 때는 행여 기차가 올까 봐 선로에 귀를 대보곤 ‘다리야 날 살려라!’ 하며 뛰었다. 돌아올 때는 김치나 장아찌가 대부분인 반찬단지를 쌀을 담은 자루에 함께 넣어서 이고 왔다. 시험 기간이라 한 주 못 가면 쌀이 달랑달랑했고 반찬이 없어 주인집 간장을 얻어먹었다. 밥을 하고 도시락을 싸고 빨래를 하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했다.
방에 불을 지펴주겠다던 주인집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추운 겨울밤이었다. 우리는 달달 떨면서 천장에 매달려 늘어진 전구를 손으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우리 방에서 따듯한 건 이것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도 때론 날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도 했다. 엄마한테 학용품값 속여서 더 받아온 돈은 학교 앞 매점에서 국수 한 그릇 사 먹으면 사라졌다. 국수 국물 남기면 애인 뺏긴다는 낙서가 식탁 위에 적힌 것을 보고 킥킥거리며 국물을 남김없이 먹기도 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인생의 첫 매운맛과 유머를 함께 알아갔던 친구다.
그 후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친구는 숙박과 요식업을 하는 집 아들한테 시집을 갔고 나는 고시 공부에 매달려있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했다. 가끔 고향 가는 길에 친구의 얼굴이라도 보려고 그녀의 시댁에 들르면 서둘러 만든 짜장면이나 군만두를 먹으라고 했다. 짜장면은 호박이나 양파가 제철인 계절이 제일 맛있고 볶음밥은 찬밥을 밥알이 하나하나 떨어질 때까지 볶아줘야 맛있다고 했다. 요즘도 손주가 좋아하는 볶음밥을 만들 땐 오래전 그녀가 알려준 비법을 응용한다.
우린 구포 장에서 만난 후 자주 연락하며 지냈다. 그러다 친구는 내가 사는 부산으로 이사를 왔다. 같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참 좋았다 자주 만나고 어려움과 기쁨을 나누고 비밀도 나누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깊은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녀와의 우정을 음식에 비한다면 냄비 우동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이엔 고급스럽지 않아도 거부감 들지 않는 양은 냄비 같은 편안함과 따뜻한 국물 같은 마음 바탕이 있다. 쫀득쫀득하지만 잘 넘어가는 국수 가락처럼 가끔은 생각이 다를 때도 이해하면서 매끄럽게 넘기기도 한다. 때론 반숙란과 유부 튀김처럼 고명 같은 선물로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달래주기도 하니까. 잊지 않고 하는 안부 전화는 쑥갓 향처럼 우정에 향기를 더해 주는 역할을 할 테지.
친구 남편과 내 남편은 모두 오래전에 먼 길을 떠났다. 우리는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와 아픔을 견뎌내며 서로를 더 소중히 여기면서 살고 있다. 친구는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도와준다.
며칠 전 부산에 갔다가 친구를 만나고 돌아서는데 내 가방 안에 포장된 비닐봉지 하나를 넣어주었다.
“이거 귀한 청어 멸치다. 입맛 없을 때 고추장에 꼭꼭 찍어서 먹어봐라.”
집으로 오는 길, 내 손은 자꾸만 가방을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