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빵

by 박정옥


며칠 전 내 손을 잡고 하교하던 손주는 인도에 올라와 있는 트럭 앞에서 머뭇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트럭 지붕처럼 덮은 천막 끝에‘옛날 풀빵’이란 글씨가 쓰인 현수막이 펄럭였다. 오십대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와플과 호떡, 국화빵을 굽는 기계를 짜임새 있게 배열해 놓고 밀가루 반죽을 하고 있었다.

“먹고 싶어?”

내 물음에 손주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자 손주는 그 돈을 남자한테 건네고 남자는 트럭 내벽에 붙은, “국화빵 5개 천 원, 와플 1개 천 원. 호떡 1개 천 원 3개 2천 원.”이라고 적힌 메뉴판을 막대로 쿡쿡 찔렀다. 손주는 와플에서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자는 엷은 미소를 띠며 와플 한 개를 집어서 초코크림을 듬뿍 발라주었다. 난 손주와 달리 국화빵을 선택했다. 내가 어릴 땐 백 원에 열 개였는데…

60년대 우리 집 부엌문은 열 때마다‘삐이걱’ 소리를 내는 쌍여닫이 나무 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돌계단 하나를 내려가야 부엌 바닥에 닿았다. 오른쪽엔 부엌에서 만든 음식을 올려두면 마루에서 꺼낼 수 있는 구조의 찬장이 벽에 붙어있었다. 그 옆에 커다란 무쇠솥과 작은 양은솥이 아궁이 위에 나란히 걸려있고 가끔은 까맣게 그을린 벽면에 엄마가 좋아하는 참꽃이 매달려 있기도 했다. 왼쪽엔 잘 쪼개진 장작이 천장까지 쌓여있고 대나무로 만든 살강이 있었다. 명절이나 제삿날은 부엌에 절구통을 두고 찰떡을 메치고 겨울엔 그곳에서 김장도 했다. 앞문과 마주 보는 뒷문이 있어 뒤꼍으로 드나들 수도 있었다.

쌀쌀한 어느 날 학교 갔다 와보니 부엌에 커다란 드럼통이 있었다. 부뚜막엔 묽은 밀가루 반죽과 삶아서 으깨둔 팥, 새로 싼 주전자 등이 보였다. 드럼통은 아래 한 부분이 사각으로 잘려있고 그곳에는 장작이 타고 있었다.

“엄마, 이게 다 뭐야?”

“풀빵 장사하려고.”

풀빵? 나는 부뚜막에 걸터앉아 엄마를 지켜봤다. 엄마는 드럼통 위에 까만 무쇠 빵틀을 걸고 무명실로 만든 솔에 기름을 묻혀 꽃문양으로 되어있는 안쪽을 반질반질하게 닦았다. 그러고는 희멀건 반죽을 주전자에 담아서 틀에 붓고 팥앙금 한 숟갈을 넣더니 그 위에 다시 찔끔 반죽을 부었다. 뚜껑을 덮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젓가락 같은 막대로 빵틀 가장자리를 눌렀다. 빵틀은 빙글 한 바퀴 돌면서 익지 못한 허연 물줄기를 피식 뱉어내었다. 큰 틀에는 여러 개의 작은 빵틀이 있었는데 모양이 반듯한 빵이 한 개도 없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풀빵이 제 모양과 맛을 갖추었다. 막걸리나 효소를 넣어 발효시키지 않아도 되고 밀가루에 물만 넣고 농도에 맞춰 휘휘 저어 주면 되는 풀빵은 맛도 모양도 떡 하고는 정말 달랐다

곡물로 만든 대부분 간식을 떡이란 이름으로 불렀던 시절, 풀빵은 새로운 이름이었다. 후일 생각해 보니 밀가루 풀의 농도로 반죽해서 만든 빵이란 뜻 같기도 했다. 엄마의 풀빵은 인기가 대단했다. 코 묻은 돈을 들고 오는 아이들부터 보리쌀이나 쌀을 가지고 오는 어른들까지, 우리 부엌에서는 겨우내 풀빵 냄새가 풍겨 나왔다. 농사와는 별개로 장사의 묘미를 알게 된 엄마는 반찬을 넣는 찬장에 과자를 가득 채워서 점방을 열고 여름엔 수박을 팔고 겨울엔 풀빵을 구워냈다.

풀빵은 쌀떡처럼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품위 있게 오를 수는 없었다. 잘 발효시켜서 강낭콩 듬성듬성 섞어 쪄낸 밀떡의 든든함에 비길 수도 없었다. 하지만 얇은 주머니를 구별하지 않고 누구라도 쉽게 주전부리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따듯한 간식임에는 분명했다. 내 유년 시절 또한 엄마의 풀빵 장사로 조금은 더 풍족하고 따스했던 것 같다.

혀에 닿기만 해도 살살 녹는 동서양의 먹거리들이 지천인 요즘에도 풀빵이 떡하니 길을 막고 어른, 아이 구별 없이 발길을 붙잡는 것을 보면 내공이 대단하다. 묽은 밀가루 반죽과 팥앙금만으로 국화빵, 붕어빵, 잉어빵 등 다양한 모양과 이름을 붙여 유혹하니 넘어가지 않는 이가 별로 없다. 팥앙금 대신 크림을 넣어 취향대로 고를 수도 있다. 인기가 많다 보니 별별 풀빵이 다 있다. 백화점엔 ‘프랑스를 다녀온 붕어빵’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저녁 뉴스에서도 황금 붕어빵이라면서 한 마리 삼천 원 하는 귀족 붕어빵을 소개한다. 그래봐야 다 국산 풀빵이 아니던가, 풀빵 맛은 손맛이지. 왠지 길거리에서 사 먹어야 제맛이 날 것 같다.

남자의 트럭은 월요일만 이곳에 온다. 다른 요일엔 또 다른 곳에서 메뉴판을 붙여놓고 열심히 빵을 굽는다. 처음엔 남자에게 언어장애가 있는 줄 몰랐다. 그의 눈빛은 소통의 창이었고 그의 막대는 묻는 말을 대신했다. 손놀림은 답하는 말임을, 빵을 사면서 알게 되었다. 그의 풀빵과 와플, 호떡은 맛이 좋아서 손님이 줄지어 서 있다. 어쩌다 월요일에 그가 보이지 않으면 우리 동네 「사랑방 카페」에 ‘오늘 풀빵 아저씨 왜 안 왔을까요?’ 하며 그를 걱정하고 기다리는 글과 댓글들이 올라온다. 남자의 언어장애는 그가 맛있는 빵을 만드는데 결코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연기가 가장 잘 될 때는 ‘돈이 절실히 필요할 때였다’고 하던 유명한 배우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엄마도, 길거리 트럭의 그 남자도 풀빵을 파는 것이 가족을 위한 절실한 일이기에 맛있는 빵 맛을 찾아냈을 것이다.

오늘도 남자의 트럭이 보이고 풀빵 냄새가 폴폴 흩날린다. 여느 때처럼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손주에게 주었고 남자가 쥔 막대가 메뉴판의‘국화빵’에 닿았을 때 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의 햇살 아래서 따뜻한 빵 봉지를 받아 쥔 손주의 웃음이 감국처럼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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