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옆 그 길

by 박정옥

구들목에서 잘 익힌 감을 함지박 가득 담아서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유난히 반짝이는 샛별을 길라잡이 삼아 부모님은 원동역으로 향했다. 깊은 가을날 새벽녘은 온몸이 얼어붙을 듯이 추웠다.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는 양옆으로 아름드리나무들이 많았고 개울물이 흐르는 곳과 돌부리가 불쑥 튀어나온 곳도 많았다. 십 리 정도 걸어가다 보면 경부선을 오가는 기차들의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시계는 없었지만, 기적소리를 듣는 지점에 따라서 타고 갈 기차가 언제쯤 도착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발걸음이 조급하기도 하고 느긋해지기도 했다. 집 나설 때 추워서 떨리던 등줄기엔 어느덧 땀으로 축축해져 있고 금빛으로 반짝이며 총총히 따라오던 수많은 별이 하나둘 뒤처지기 시작하면 역사(驛舍)가 눈앞에 나타난다.

고향은 양산시에서도 첩첩산중인 원동면 영포리다. 산중이지만 20리 정도 걸어 나오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경부선과 경전선이 함께 지나가는 작은 기차역이 있어 외지와의 소통이 편리했다. 역에 도착해서 잠시 허리를 펼 겨를도 없이 기적 소리를 신호 삼아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홍시를 팔고 필요한 것을 샀다. 계절에 따라 기차에 함께 타는 물건은 산에서 채취한 나물이나 버섯류일 때도 있고 논밭에서 키운 농산물 등으로 그때그때 달랐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어떤 연유에서인지 기억에 없지만 나는 딱 한 번 감을 팔러 가는 그 새벽길을 함께 했었다. 무거운 함지박을 이고서 걷는 고통과 기차 발판에 내 발이 닿지 않아 허공에 매달린 듯한 아찔했던 그 느낌은 아직도 두려움으로 남아있다.

엄마의 목이 짧아지고 아버지 장딴지의 푸른 심줄이 더 튀어나오도록 수많은 날을 기적 소리와 함께 걸었던 당신들의 발걸음으로 인해 자식들은 궁색하지 않게 자랄 수 있었다.

도시로 진학했던 중학교 시절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을 물들이던 꽃잎 같은 짝사랑도 그 길을 오가면서 품었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도 역 맞은편 철둑 가에 고목으로 서 있는 벚나무에서 꽃비가 내리면 문득문득 해맑은 얼굴에 교모를 눌러쓴 그 아이가 떠 올랐다. 이십 대 초반엔 열병처럼 숨길 수 없이 앓았던 첫사랑 때문에 많은 날을 밤길 데이트를 하며 그 길을 오갔다. 무모하고 당돌한 일탈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사랑이 전부였던 순수한 날들이었다.

어른이 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완행열차로 다니기도 하고 때로는 승용차로 기찻길 옆 지방도로를 달려서 부산에서 고향까지 오갔다. 주말마다 명절마다 시도 때도 없이 시댁으로 친정으로 숨 가쁘게 넘나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 길은 내 정서의 8할을 차지한 길이다.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엄마 소식을 듣고 맑은 정신의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친정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서 고향 가는 완행열차를 탔다. 부산(부전역)에서 원동역까지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무심히 흐르는 낙동강이나 푸르른 들판, 멀리 보이는 산들은 예전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차 안의 풍경은 달랐다. 늘 출입구까지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로 꽉 차서 아우성치던 예전의 모습은 간데없고 승객들은 좌석표로 정해진 자리에 편히 앉아있었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노트북을 펼치고 열심히 뭔가를 하는 모습들이 대부분이다. 더러는 장(場) 거리를 준비해서 팔고 가는 촌부(村婦)들의 이야기보따리가 속닥속닥 낮게 속삭이고 있었다. 사십여 분이 지나서 기차는 원동역에 닿았다.

역 맞은편 고목으로 버티던 벚나무는 사라지고 매실나무들이 꽃도 열매도 다 털어내고 푸른 잎만 단 채 철길 옆 낙동강에 몸을 씻고 있다. 오후의 붉은 해가 내 몸과 마음에 들어왔다. 무심히 강물을 바라보는데 오래전 어느 날 친구들과 나룻배로 낙동강을 건너면서 깔깔대던 내 청춘의 한 토막이 휙 지나간다.

햇살에 붉게 익어가는 강물 위에는 부지런하고 정직했던 아버지의 검붉은 얼굴과 맑은 눈을 가진 첫사랑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윤슬처럼 아른거린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다시는 이 길을 함께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나도 이 길을 다시는 갈 수 없는 날이 머지않았으리.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햇살 때문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영포리로 가는 버스가 왔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내다보니 물건을 이고 지고 다닐 때 꼭 쉬어서 가던 ‘열두 바위 똥 바위’가 있던 곳은 바위가 보이지 않았다. 길의 바탕은 옛날 그대로인데 겉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녹슨 철 대문을 밀며 힘을 준 밝은 목소리로 불러본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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