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문득 떠난 사람에 대한 시린 그리움이 찾아온다. 남편 기일이라 홀로 제사상을 준비하는데 남편보다 아버지 생각이 더 난다. 생전에는 엄하고 올곧기만 해서 선뜻 품에 안길 수 없었던 아버지였는데 돌아가신 지 10년도 더 지난 요즈음 왜 이토록 아버지가 그리운지, 고되고 어깨가 무거웠을 그 삶에 가슴이 찡하니 아린다.
찬바람이 매섭게 철 대문을 흔든다. 대문 중앙에 있는 동그란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려고 하면 마치 자석에 쇠가 붙듯이 손이 쩍 달라붙는다. 온몸에 한 바퀴 전류가 흐른 듯 부르르 떨린다. 이런 추운 날씨에도 행상하는 아주머니는 우리 집 대문을 제집인 듯 자연스레 밀고 들어온다.
“오늘 물거리 좋은 사발고기가 나와서 이 집에 먼저 왔다 아이가.”
머리에 이고 있는 커다란 대야를 마루에 쿵 하고 내려놓으면서 너스레를 떤다.
농촌에서 땅 한 뙈기 없이 사시사철 행상으로 먹고사는 아주머니는 동네 사람들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입맛도 꿰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내려놓는 대야에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작은 물고기들이 반쯤 얼어서 가득 담겨있고 그 위에 어른 국그릇만 한 사발이 놓여 있다.
“벌써 사발고기가 나왔네. 한 그릇만 주소.”
“아이고 두 그릇 하소. 이게 요즘은 잘 안 나온다카이.”
아버지가 사발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아주머니는 잽싸게 엄마가 내민 양푼에 두 사발을 담아낸다. 비릿한 민물고기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진다.
강원도 함백산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쉼 없이 달려온 낙동강이 종착지인 부산 앞바다를 코앞에 두고 잠시 숨 고르듯 여유를 부리는 곳이 내 고향 양산시 원동면이다. 강물은 여기서 산골짜기를 빠져나온 1급수 지류와 만나면서 수많은 민물고기의 서식처가 된다. 강에서 지류를 따라 이십여 리 떨어져 있는 고향마을 이름은 영포靈浦다. 강이나 내에 조수가 드나드는 곳이란 浦가 붙은 것을 보면 아주 오래전에는 낙동강을 오르내리던 나룻배나 돛단배가 물살을 따라서 오가던 포구였을 것 같다. 마을은 강에서 나는 여러 민물고기를 손쉽게 접할 수 있었다.
사발고기는 민물고기라 해도 1급수에만 사는 금강모치나 버들치, 열목어나 쉬리 같은 것은 아니었다. 보통 2~ 3급수에 사는 붕어 잉어 종류로 참붕어나 떡붕어 토종붕어 새끼 같은 작은 잡어들이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빠르게 비린 것들을 손질하고 엄마는 땅속에 묻어둔 무를 꺼내서 얇고, 납작납작하게 사각으로 썰어서 솥에 깔았다. 그 위에 손질한 사발 고기와 간장, 고춧가루를 넣고 물을 재료가 잠기도록 부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불의 힘으로 푹 졸여낸다. 한솥 가득 졸여두고 먹을 때마다 조금씩 데워먹기도 했다. 사발 고기 조림은 비린 듯 비리지 않고 고소하고 짭조름하며 달착지근했다. 오래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특급 반찬은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맏딸이었던 나는 엄하셨던 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곧잘 따라다녔다. 무더운 어느 여름날 식구들 먹일 백숙을 준비하느라 닭을 잡아서 냇가로 가는 아버지를 졸졸 따라갔다. 그땐 멱도 감고 빨래도 하던 냇가에서 채소도 씻고 고기나 생선도 손질했다. 흐르는 물에 닭을 손질하고 있는 아버지의 손끝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내게 “자 묵어 봐라. 고소하데이.”라고 하시며 간과 모래집을 잘라서 소금과 참기름을 묻혀 내 입에 넣어주셨다. 오돌오돌하면서 부드러웠던 그 식감이 아직도 입안을 맴도는듯하다. 아궁이에서 장작불이 훨훨 춤을 추고 진한 닭고기 냄새가 집안 가득 퍼져 나왔다. 아버지는 검은 무쇠 솥뚜껑을 스르륵 밀어 열고 살코기를 건져서 자식들 그릇에 담아주셨다. 정작 당신은 뜨끈한 국물이 좋다면서 국물만 드셨다.
종손이라 일 년에 12번 지냈던 제사. 늘 엄마와 함께 장을 봐 오고 떡메를 치고 음식 준비를 하셨지만, 고기산적이나 잘 구워진 큰 조기에는 젓가락을 대지 않으셨다. 철없는 자식들의 수저는 맛있는 고기나 생선에 바쁘게 오갔다. 당신은 제사상에 오른 고기나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때는 아버지의 그 말씀이 진심인 줄 알았다. 자식들 한입 더 먹이려고 국물이 좋다고 하시고 흔한 민물고기를 즐기셨던 것을….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다. 가끔 내가 찾아가서 불편한 곳이 없냐고 물어보면 “오래 누워있어서 그런지 등이 사물 사물 하다. 뭐가 있나 한번 봐라.” 하시며 돌아누우셨다. 아버지 등줄기엔 바싹 마른 피부에 불긋불긋한 작은 상처와 검붉은 딱지가 붙어있었다. “아버지 시원해? 괜찮아?”라고 하면서 등줄기를 쓸어내리면 등 비늘이 바스스 따라 일어났다. 근육이 다 말라버린 아버지 등 보다 나의 손이 더 커 보였다. 어느 날 아버지는 “병원 밥은 죽어도 먹기 싫다. 요새 사발 고기 나오나?”하고 물으셨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도 이미 오래전부터 낙동강에서 사발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입맛 떨어진 아버지는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고 차츰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드시고 싶었던 사발고기, 비슷하게라도 해드릴걸. ‘요새 사발고기 나오냐?’ 하시던 그 말씀이 내 명치 끝에 걸려있다. 아마 오래도록 아플 것 같다.
“엄마, 오늘 고생했어요. 망원동에 인생 커피집이 있대요. 차 한잔 마시고 쉬었다 와요.”
퇴근하고 온 딸이 종일 제사 준비를 한 나에게 전하는 그녀만의 사랑 방식이다. 비록 제사음식에 대한 가치는 다르지만 나는 딸의 마음을 알기에 슬며시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