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싹.
날카롭고 차진 소리가 무거운 공기를 갈랐다. 어떤 사람들은 못본 척 딴청을 피우고, 어떤 사람들은 고소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어떤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눈치를 보았다.
날벼락 같은 따귀를 맞은 몬스는 붉은 손자국이 남은 얼굴을 숙였고, 페르비아는 시녀가 황급히 건네는 손수건으로 흰 손을 닦았다.
“그럭저럭 말귀는 알아먹는 줄 알았는데, 내 판단이 틀렸던 걸까? 어째서 이런 불결한 사태가 일어나는 거야?”
페르비아는 전용 탁자와 의자를 언짢게 내려다보았다.
“죄송합니다, 레이디. 오늘 처음 나타난 눈치 없는 뜨내기 놈 때문에 레이디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렸습니다만, 다 이 몬스의 불찰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면 의자와 탁자를 깨끗이 닦겠습니다.”
“닦을 필요 없어.”
“예?”
“나는 더럽혀진 자리에 앉지 않을 테니까. 다음에 내가 왔을 때는 새 탁자와 새 의자가 놓여 있을 거야. 당연히. 그렇지, 몬스?”
제대로 된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쌀쌀맞게 말하는 페르비아에게 몬스는 황송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굽실댔다.
“예, 예. 그렇고말고요.”
“좋아. 그럼 이제 끌고 와서 내 앞에 꿇려.”
몬스는 예감이 좋지 않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이 단단히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감히 페르비아를 거역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는 몬스를 우락부락한 사내 몇이 뒤따랐다. 산양뿔 주점의 골칫거리들을 해결하는 것으로 밥값을 하는, 몬스의 수하들이었다.
라무스는 고대하던 솔잎 에일 잔을 막 입에 대려던 참이었다. 어린 시절의 라무스는 향이 상큼한 이 에일의 맛이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그런데 어른들 몰래 마셔 보려 할 때마다 어디선가 엘리너가 귀신 같이 알고 나타나 잔을 빼앗아 버리곤 했다.
그래도 결국 맛 볼 기회는 있었다. 토드 경 덕분이었다. 두 사람은 평범한 옷을 입고 여기 산양뿔 주점을 방문했다. 막상 맛을 본 솔잎 에일은 어린 라무스의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너무 쓰고 독한 음료였다.
토드 경은 잘 있을까? 여전히 대장장이 투도로 지내고 있으려나? 라무스는 속으로 토드 경에게 건배를 건넸다.
“끌어내.”
몬스가 명령하자 수하들이 양 옆과 뒤에서 라무스에게 달려들었다. 입에 대고 있던 잔이 흔들렸다. 그 서슬에 넘쳐 버린 에일이 라무스의 턱과 탁자에 뚝뚝 흘렀다.
“뭐 하는 짓들이야! 아까운 내 에일이 쏟아졌잖아!”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라무스는 짧게 고민했다. 이 자들을 치워 버리고 뒷문으로 빠져나갈 것인지, 고분고분 끌려 나가 페르비아 라크리모라는 인물을 탐색해 볼 기회로 삼을 것인지.
“인생 더럽게 꼬이기 싫으면 순순히 레이디 페르비아 앞에 나가서 무릎 꿇고 싹싹 빌어. 나도 내 가게에서 피를 보는 건 내키지 않으니까.”
무게를 잔뜩 잡은 몬스가 나직하게 경고했다. 라무스는 할 수 없지, 하는 얼굴로 에일 잔을 놓았다. 몬스의 수하들이 라무스를 붙잡고 등을 떠밀며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뒤에 있던 사내가 라무스의 양 오금을 발로 차는 바람에 라무스의 무릎이 꺾이면서 바닥에 부딪쳤다.
‘흙바닥이라서 다행이군.’
곧바로 일어서려는 라무스를 양쪽에 서 있던 사내가 붙잡았고 오금에 한 번 더 발길질이 들어왔다. 어깨를 내리누르는 사내들의 완력이 만만찮았다.
“알았으니까 좀 놓지?”
계속 꿇고 있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사내들은 라무스를 놓아 주지 않았다. 라무스는 인상을 구긴 채 먼 산을 보았다.
페르비아가 몬스에게 턱짓하자 몬스가 수하들을 물러서게 했다. 라무스는 어깨를 툭툭 털어내고는 아예 땅에 주저앉아 버렸다. 비웃음을 띤 페르비아가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라무스의 목과 어깨에 화끈한 통증이 내려앉았다. 페르비아가 말채찍을 휘두른 것이었다. 라무스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비뚜름한 웃음을 머금었다.
“제법이네?”
페르비아가 말채찍 끝으로 라무스의 턱을 쳐들었다. 덥수룩한 머리, 지저분한 얼굴. 그러나 반듯한 생김새, 짙푸르게 형형한 눈. 페르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어나 봐.”
라무스는 그녀의 말대로 했다. 그를 한 바퀴 빙 돌며 살핀 페르비아가 말했다.
“그 검, 훔친 거 아냐? 쓸 줄은 알아?”
지켜보던 몬스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상황은 그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고,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꺼림텁텁한 예감은 더욱 짙어졌다.
어째서, 어째서입니까? 왜 지난 번 그놈처럼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시는 거죠? 몬스는 조용히 의문을 삼켰다.
“장식용으로 지니고 다니기에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물건이니까, 뭐 대충 휘두를 줄이야 알지 않겠습니까?”
라무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느물느물 대답했다.
“너, 꽤 재미있는 자로구나?”
얼굴도, 체격도, 말본새도. 페르비아가 의미심장하게 미소했다.
“직접 확인하라는 말인 것 같으니까 그렇게 해야겠군.”
페르비아가 시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시녀가 묵직한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페르비아가 주머니를 번쩍 들어 보였다.
“여기, 은화 서른 닢이야. 이 자와 검을 겨루면 열다섯 닢, 이 자를 이기면 서른 닢 전부에 금화 한 닢이다.”
손님 중에는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검을 쓰는 이가 하나도 없어서는 아니었다. 주점 주인 몬스가 눈짓으로 제지했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지. 너, 네가 해.”
페르비아의 지목을 당한 건 그녀를 호위하던 기사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상대가 안 될 텐데. 결국 저 뜨내기를 죽여 버리겠다는 거였나. 이런 말들이 수군수군 오갔다.
닉티라는 이름의 호위 기사는 묵묵히 명에 따랐다. 재빨리 라무스의 앞으로 와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