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건강상태는 원래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조산아로 태어났으며, 거기에 장애까지 있는 아이로 태어났다. 그걸로도 모자란 탓일까. 면역력도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안 좋은 면역력이 20살 때부터 조금씩 나빠졌다 좋아졌다를 반복하고, 남들과는 다르게 하루하루가 몸의 컨디션이 마치 장마와 같았다. 안 좋을 때는 한 없이 축 늘어져있고, 좋을 때는 못 놀아서 안달이 난 사람 같았다. 그렇다고 평상시에 술을 즐긴다거나 담배는 비흡현자라 거리가 멀-다.
졸업을 하고 나니, 은근한 취업압박에 나를 생각의 닭장에 내가 스스로 들어갔다.
'취업이 되지 못하면 난 여기서 나가지 못한다.'라고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오늘의 변수처럼 루푸스가 나에게 훅- 들어왔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말이다.
적은 스트레스와 평균시간 이상수면, 균형 맞는 식사, 적당량의 운동을 하라고 한다. 그런데 교수마저 내게 '취업'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난 병을 고치진 못하더라도 좀 괜찮아지러 온 거지 더 얻어 갈 생각이 전-혀 없는데 역시 이 교수님 하곤 안 맞는다고 생각 끝에 나는 글로 표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원래는 나도 대학동기들처럼 멋있게 회사명찰 목에 목걸이처럼 달고, 좋아하는 사회복지를 하며 살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딜레마는 어김없이 팩폭을 날리듯이 나를 찾아왔다. 한량처럼 있기도 싫고, 몇몇 사람들이 말하는 <등골브레이커>라는 꼬릿표는 더 나를 불안하게도, 슬퍼하게도 때로는 절망을 끝없이 하기도 하였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의문에 대하여 치열하게 고민하며,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도 '글솜씨'가 있다는 소리는 조금 들은 편이라 정말 대뜸 '작가 해볼래!'라고 생각을 하였다. 물론,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니고, '작가를 해보지 않을래? 브런치스토리라는 플랫폼이 있는데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도 들었었다.
그 뒤로 한글파일을 열고선, 글만 구구장창 써 내려갔었다. 사실상 그렇게 쓴 글이 대학교 재학 중 논문 쓰는 것보다 더 써 내려간 것 같다.
글만 쓰다가 내 인생의 귀인들인 작가님들의 응원과 피드백 덕분에 더 열정적이게 되었다.
그 뒤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달렸다.
'백조'라는 꼬릿표를 떼고 싶었을 뿐인데, 공교롭게도 '작가'가 되어있다.
'작가'가 되었기에 감정요리사가 되었다.
지금도 감정을 요리를 하며, 레시피를 만들어내고 있다.
@write_daseul